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신 Apr 08. 2016

홈리스 친구에게 배운 것

토요일 아침은 늘 정신이 없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식사를 만들기 때문이다. 


80인분의 커피를 타고, 팬케이크와 소시지를 구웠다. 

바나나, 오렌지, 사과 등 과일까지 보기 좋게 접시에 담아 테이블에 올리면 준비가 끝난다. 


따뜻한 한 끼를 먹기 위해 지역의 홈리스들은 토요일 일찍부터 교회 문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린다. 교회 문이 열리면, 채식, 글루텐 프리 등 식성을 고려해 음식을 서빙하고, 옆에 앉아 함께 밥을 먹는다.




처음에 목사님이 쉘터에서 일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을 때, 난 흔쾌히 "예스"라 답했다. 


드디어 내가 꿈꾸던 사회정의 운동을 시작할 수 있겠단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경제적 정의, 빈곤퇴치,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 책으로 가슴 뜨겁게 읽어왔던 것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며 토요일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내가 쉘터에서 맡은 일들은 기대와는 많이 달랐다. 


난 마틴 루터 킹의 "가난한 이들의 연대" 같은 것을 상상했다. 

운동을 조직하고, 거악과 싸우고, 좋은 정책들을 만들어내는 일들을 기대했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임무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 이었다.


팬케이크가 타지 않도록 적당하게 구워내는 일, 접시에 예쁘게 과일을 담는 일, 함께 앉아 밥을 먹는 일, 함께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고 떠드는 일. 내가 2년 동안 쉘터에서 해온 일들이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요? 혹시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나요?

내 이야기를 좀 들어주세요. 그리고 날 위해 기도해주세요.



난 항상 사회구조를 바꾸는 일에 집중했다. 


그러나 구조 속에서 고통당하는 개개인이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지,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묻거나 들으려 하지 않았다. 


교회에 찾아온 홈리스들은 가난 보다도 외로움과 고독함에 힘들어했다. 그들은 배고픔만큼이나 무관심에 지쳐있었고, 따뜻한 한 끼 식사만큼이나 따뜻한 마음을 공유할 친구를 원했다. 

난 홈리스들과 친구를 맺으며, 매주 토요일 이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60대 지긋한 친구에게 듣는 이야기엔 기쁨과 고통, 슬픔, 사랑 등 문학과 역사, 철학과 신학 그 모든 것들이 녹아있었다.


나는 내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한국에서 있었던 일들, 미국에 와서 언어장벽으로 겪는 어려움들과 오해들.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서로를 위해 기도했다. 


처음에 목회 실습을 시작하며 목사님에게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쉘터에서의 2년간 생활을 마무리하며 목사님은 그동안 어땠냐고 물어보셨다.


세상이 바뀐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바뀐 거 같다고 말씀드렸다. 

책이 아니라 홈리스 친구들에게 배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보수교회가 성범죄에 취약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