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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신 Feb 14. 2018

예수도 괴로울 명절

예수가 한국서 설을 지낸다면? 우선 그는 대학을 나오지 못했고, 번듯한 직장도 없다. 결혼도 하지 않았으며, 아이도 없다. "대학은? 취업은? 결혼은? 아이는?" 질문 공격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것이다. 후에 정치범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처형된 걸 보면 애국심이 투철한 어르신들께 종북좌파 빨갱이 소리 들으며 손가락질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명절 전후로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은 죽는소리로 도배가 된다. 집단 디스토피아 체험이라도 하는 것 같다. 20대부터 40대까지 그 누구도 명절을 행복하게 기다리는 이는 없다. "이 또한 지나가리" "이번에는 어떻게 버티지" 고민한다. 누군가에겐 명절이 행복한 날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명절은 많은 이들을 불행하게 한다.  


명절엔 가족의 가치가 강조된다. 가족이 도란도란 모여 조상을 기리고 밥을 먹으며 친분을 나눈다. 이 자체로 나쁘진 않다. 문제는 이 모든 과정이 철저한 위계와 착취 구조하에서 벌어진다는 것이다. 남성이 밥하고 설거지하느라 허리가 휘고, 청년들이 노인학대 수준으로 무례한 질문을 던져 고통에 빠뜨리거나, 제사와 예배에서 남자들이 배제되어 소외감을 느꼈단 얘긴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정확히 그 반대의 상황이 매년 펼쳐진다.


오늘날 소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혈연과 이성애 중심, 가부장제 등을 "정상"으로 상정하고 그 외의 가족 형태나 구성원들의 모습은 "비정상"으로 낙인찍고 배제한다. 앞서 말했듯이 나이와 성별에 따라 착취가 일어나는데 더해, 성소수자, 외국인에 대한 차별도 빈번하다. 젠더, 인종이 다르지 않더라도 "정상"으로 규정되는 삶의 양식에서 벗어나려 하는 이들에겐 가차 없는 린치가 가해진다. "왜 애를 안 낳아!" "그렇게 해서 뭐 먹고살라고!" "남들 다가는 대학은 가야지!"


미국도 명절이 있다. 땡스기빙과 크리스마스가 되면 학교 도시들은 썰렁해진다. 저마다 고향에 내려가 가족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학교 혹은 근처 교회에서 명절을 지낸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나와 같은 유학생이거나 LGBT, 다인종 부부 등이었다. 그들은 "비정상"으로 자신들을 존중하지 않는 가족들 대신 학교, 교회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곳이 내 가족이 있는 곳"이라고.


이와 관련하여 예수는 아주 재미있는 말을 한다. 누군가 예수에게 와서 밖에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있다고 말하니 예수는 이런 대답을 한다. "누가 내 어머니며 내 동생들이냐" 그러면서 제자들을 가리키며 "나의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즉 예수는 여기서 핏줄이 아니라 꿈과 가치를 공유하는 이들이 나의 가족이라고 선언한다. 


명절마다 너무 고통스럽다는 얘길 들을 때면 예수의 이 한마디가 떠오른다. "누가 내 어머니며 내 동생들이냐" 그리고 우리에게 가족은 누구인지 되묻게 된다. 종종 이런 상상을 한다. 명절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것이 꼭 피를 나눈 사람들일 필요는 없다. 오랜 동네 친구 일수도 있고, 동호회 회원들 일수도 있고, 그 밖에 다른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일 수도 있다. 정상가족이 우릴 불행하게 한다면 좀 더 급진적인 상상력으로 새롭게 가족을 재구성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아니면 좋아하는 걸 하며 그냥 푹 쉬는것도 좋을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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