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우 Apr 10. 2019

평범한 사람들의 글쓰기

『어쩌면 잘 쓰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윤영

소소한 사람들이 모여 매일 글을 쓰는 온라인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덕분에 오랜만에 남에게 읽히는 글을 쓰고 있다. 절반은 공개적인 글을 쓰다 보니 의식하지 않아도 글에 책임감을 지니게 된다. 글 쓴 의도와 다르게 읽은 댓글을 보면 저절로 더 쉽고 명료한 표현과 문장을 찾아 다듬는 나를 발견한다.


시작한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는 모임이라 글이 굉장히 많이 쌓였다. 이 글들을 모아 책을 만드는 프로젝트가 있어 팀원으로 합류했다. 아직 어떤 책을 낼지 구체적인 구상이 전혀 없는 상태라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무작정 서점을 찾았다. 글쓰기 매대의 살펴본 뒤 쟁쟁한 책들을 제쳐 두고 이 책을 골라 돌아왔다. 저자가 추천하는 글쓰기와 모임 사람들이 쓰는 글이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어려워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글쓰기는 원래 어려운 것이라며 이들을 위로한다. 이 책의 저자는 다르게 말한다. 글쓰기는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 중 가장 쉽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글쓰기는 거창하지 않다. 하루 단 한 줄도 글쓰기다. 하루 단 한 줄이면 정말 쉬워 보인다. 시작의 한 줄이 두 줄이 되고, 한 문단이 되고, 그렇게 자기 생각을 적어가다 보면 자기만의 글을 완성할 수 있다.


갓난아이가 일어서서 걷기 위해서는 수천 번을 넘어져야 한다. 기타로 곡 하나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코드를 하나하나 잡으며 손가락 끝에 굳은살부터 박아야 한다. 모든 성공의 시작은 사소할 수밖에 없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글쓰기도 악기나 운동처럼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우고 익혀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대부분 인식하지 못한다. 그런 채로 이미 수많은 퇴고와 편집을 거쳐 세상에 나온 글들을 읽으니 글쓰기가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글을 써 보지 않는 사람은 무조건 못난 글을 쓰면서 성장하는 수밖에 없는가? 여기서 '잘한다'는 말은 기술적 완성도를 의미한다. 노래로 따지면 음정이 정확하고, 고음이 잘 올라가고, 발성이 좋다는 말과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이 기술적 완성도가 노래의 전부는 아니다. 노래의 본질은 목소리고, 목소리에 담긴 이야기와 감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수가 아닌 사랑하는 연인, 아이의 노래에도 종종 감동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솔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몇 년 전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이 유행할 때, 모든 심사위원들이 하나같이 강조했던 바가 있다. '자기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라.' 잘 부르는 가수를 따라 한다고 해도 그보다 더 기술이 좋기는 어렵고, 남을 따라 하면 자기만의 이야기와 감정을 담을 수 없으니 듣는 이에게 감동을 주기 어렵다. 


글도 마찬가지다. 어휘의 풍부함, 명확한 문장 구조 등 글을 '잘' 쓰기 위한 기술은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 기술은 내가 그 글에 담아 전하고자 하는 생각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한 여러 수단일 뿐이다. 더 잘 쓴 글을 보고 무작정 따라 하다가 자기만의 생각과 감정을 글에 담지 못한다면 아무리 '잘' 쓴 글일지라도 읽는 이에게 울림을 주기 어려울 것이다. 자기만의 이야기를 담지 못한다면 결코 좋은 글을 쓸 수 없고, 그것을 담은 글이 바로 좋은 글이다.


글을 조금 잘 쓴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 더 일찍 조금 더 자주 조금 더 많이 생각하고 그것을 기록했다는 것뿐이다.

-『어쩌면 잘 쓰게 될지도 모릅니다』




모임에 참여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글로 공감을 주고받는다. 실체가 없음에도 참 따뜻하다. 모두가 솔직하게 자신을 풀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기술적으로 좋은 글이 아닐지라도 이곳에서는 큰 상관이 없다. 그보다 온전히 자기를 말해주는 글, 그래서 모두가 진심 어린 댓글을 달게 만드는 글이 이 울타리 안에서는 가장 좋은 글이다. 요즘 서점에도 점점 이런 글들을 엮은 책이 많이 눈에 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글로써 서로 소통할 수 있다면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저자는 꾸준히 글을 조금씩 써서 자기만의 콘텐츠를 만들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반드시 콘텐츠를 만들려는 목적으로 글을 쓸 필요는 없다. 그보다 자기를 알고 나아가 서로가 조심스러우면서 따뜻한 소통을 이어가기 위해 글을 쓴다면, 그리고 그 글들이 꾸준히 쌓인다면 자연스레 콘텐츠의 꼴이 갖춰질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너무 드러낼까 봐 걱정할 필요 없다. 만약 어떤 글을 썼는데 그 글을 공개하기가 부끄럽다면, 그것이 바로 진짜 좋은 글일 테니까.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자면,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마 실패를 많이 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시나 소설, 드라마처럼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야 하는 장르를 제외하고는 생각과 느낌을 정리하는 글은 부족하고, 단점 많고, 상처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더 잘 쓸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도 잘 쓴다. 

- 같은 책





매거진의 이전글 나름의 믿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