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대학교 졸업을 했다. 주변 사람들과 비슷한 방식의 취직 준비, 예컨대 자격증, 영어 공부 등을 하지 않으니 솔직히 시간이 많이 빈다. 대신에 읽고 싶던 책 실컷 읽고, 쓰고 싶은 글 실컷 쓰자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막상 또 잘 안 한다. 이 방식이 맞는 지를 계속 의심하게 된다. 믿음이 부족하니 계속 뒤를 돌아보고, 멈추고, 머뭇거리는 나날을 반복한다.
그렇다면 텅 빈 시간에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나? 그건 또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이 해야 하는 일로 바뀌는 순간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해 저항이 생긴다. 하기 싫다는 저항감과 해야 한다는 강박감 사이에서 버티는 데에 진이 빠져 가장 쉽게 시간을 때우는 선택을 하고 만다.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끊임없이 새로고침 하고 보고 또 보고. 재미라도 느끼면 모를까, 단지 가장 시간 때우기 쉬운 무언가가 텅 빈 시간의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올 뿐이다. 시간을 채우긴 했지만 텅 빈 것보다 못한 이 어정쩡한 하루를 끝은 뒷맛이 찝찝하기 그지없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후반부에서 차라투스트라는 보다 지체 높은 인간들 여럿을 자신의 동굴로 초대한다. 신이 만들어놓은 세상의 역겨움을 피해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온 그들은 그곳에서 축제를 벌인다. 그들 나름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차라투스트라는 흡족함을 느낀다.
나그네이면서 그림자이기도 한 자의 노래가 끝나자 동굴 안은 갑자기 떠들어대는 소리와 웃어대는 소리로 가득 찼다. 이렇듯, 거기 모여 있던 손님들 모두가 한꺼번에 말을 해대고, 그런 들뜬 분위기에서 나귀조차 더 이상 잠자코 있지를 못하자, 손님들에 대한 얼마간의 혐오감과 함께 저들을 비웃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차라투스트라를 덮쳤다. 즐거워하는 저들의 모습에 흡족해하면서도 말이다.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 건강을 되찾고 있다는 조짐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조용히 밖으로 빠져나와 그의 짐승들에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책세상 / 509쪽 중)
축제의 웃음소리는 갑자기 멈춘다. 놀란 차라투스트라가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들 모두가 향을 피우고 무릎을 꿇은 채 나귀를 향해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것 아닌가. 나귀를 새로운 신으로 모시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다 못한 차라투스트라가 한 명씩 붙잡고 나무라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은 새로운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차라투스트라는 다시 경건해져 버린 그들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그들은 새로운 신을 직접 선택했으며, 지상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나약함에서 벗어나 건강을 되찾은 사람들만이 떠올릴 수 있는 것이기에 차라투스트라는 이를 좋은 징조로서 받아들인다.
"보다 지체 높은 인간들이여, 이 밤과 이 나귀의 축제를 잊지 말라! 그것을 그대들 내 곁에서 생각해냈거니와 나 그것을 좋은 징조로 받아들이겠다 건강을 되찾은 자만이 그와 같은 것을 생각해낼 수 있으니 말이다!"
(같은 책 / 520쪽)
텅 빈 시간을 그대로 두는 건 어렵다. 모두가 바삐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 나 혼자 우두커니 서있는 시간은 불안하다. 또 단지 남들보다 뒤처지는 게 불안을 야기하는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인간은 원래 멈춰있으면 불안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돌지 않으면 쓰러져버리는 팽이처럼.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져버리는 자전거처럼.
그래서 모두 나름의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맹목적인 믿음은 위험하지만, 어떤 믿음도 없다면 어딘가로 발걸음을 내딛는 행위 자체가 공포로 다가올 테다. 나아가기 위해선 최소한의 믿음이 필요하고, 이는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이 가장 좋다. 달리 말해 그 선택이 자신의 것이 확실하다면 믿고 나아가면 된다.
선 채로 불안을 버티며 나아갈 방향을 정했으면 다시 페달을 돌려야 한다. 어정쩡하게 선 채로 이 길이 맞는지 틀린 지 고민하는 것보다는 내가 선택한 방향을 믿고 나아가는 편이 낫다.
#차라투스트라는이렇게말했다 #책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