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방황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우 Feb 09. 2020

자책과 반성문

오늘은 오후 네 시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애매해 토스트로 끼니를 때웠다. 5일 내내 간절히 기다리던 주말의 마지막 날을 침대에서 헛되이 보내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다. 해가 저물고 다가오는 월요일이 느껴질 시간이 되면 으레 그랬듯 후회하고 자책한다. 그렇게 기다린 소중한 주말을 뭘 봤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유튜브 영상에 소비한 스스로를 나무란다. 머리에 물을 끼얹고 저녁의 서늘한 바람을 밖에 나와 온몸으로 맞았다. 그제야 헛되이 지난 열몇 시간을 메꿔야 한다는 조급함에 부랴부랴 스마트폰을 켜 지금 이렇게 반성문을 쓰고 있다.


어젯밤에는 새벽 4시쯤 잠에 들었다. 낮에는 즐거운 작당모의 하나를 열 띄게 이야기했고, 저녁에는 다른 모임에 가 서로의 버티는 삶에 위로와 격려를 건넸다. 징징거리는 사람이 평소에 제일 싫다고 하던 나였고, 저녁의 모임은 대부분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사람이 많아 가기 싫어했던 나였는데, 사실 가장 불평불만을 속에 담고 있었던 건 나라는 걸 조금 깨달았다. 나아지려는 노력이 가장 부족한 것도 나라는 생각 또한 들었다. 속으로 같잖게 깔보던 타인의 면면들이 사실은 마주 보지 못했던 내 모습이라는 것까지도.


어제 밤늦게까지 봤던 영상은 몇 년 전 방영했던 예능 프로그램 '굿피플'이었다. 변호사 인턴 8명을 뽑아 서바이벌을 벌이는 내용이다. 클립 영상에 감동적인 부분이 많아 본방을 보지 않았지만 기억에 남아 있었는데, 유튜브 알고리즘에 휩쓸려 또 이것저것 골라봤다.


새삼 대단한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전부 로스쿨 학생에 서울대 수석, 연세대 수석, 스타트업 프로젝트도 해 보고, 악기도 잘 다룬다. 방영 시기에서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때 그들의 나이는 대부분 나보다 젊기까지 했다. 자기소개에 빼곡히 적힌 그들의 약력을 보며 솟구치는 초라함에 잠들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들은 방송 내내 진정성과 노력까지 진하게 보여줬다. 원래 머리가 좋다, 운이 좋거나 환경이 좋았을 것이다, 이런 상투적인 합리화로 나를 지킬 수도 없었다.


그들처럼 진심을 다해 어떤 일에 노력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찾지 못했는데, 앞으로 과연 찾을 수 있을까. 찾기만 하면 되는 건가. 만약 이미 찾았었는데 내가 적당한 노력치도 들이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 건 아닐까. 수많은 의문에 휩싸인 채 새벽이 가까워질 때 즈음 간신히 잠에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답게 산다는 게 무엇이길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