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이피는섬 Jul 26. 2023

중요한 건 춤추고 싶은 마음

에세이가 아닌 그냥 일기

춤을 잘 춘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TV에 나오는 댄서들이나 아이돌 가수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슬프게도 나는 평생 한 번도 신체로부터 자유로운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심지어 몸이 내 생각대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요가나 필라테스, 걷기, 달리기 같은 근성을 요하는 운동은 그래도 어떻게든 하지만

자전거 타기, 수영, 테니스처럼 조금이라도 운동신경이 필요한 운동은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시도는 해봤지만 잘 되지 않았다.


춤도 마찬가지다.

한때 라틴댄스 열풍이 분적이 있었다. 강남, 홍대 어디에나 학원도 많았고 동호회들도 많았다.

30대 초반에 나도 큰맘 먹고 가봤다. 나랑 성향이 비슷한 회사 선배랑 함께였다.


둘 다 엄청난 용기를 낸 거였다.

동호회 형태의 모임이었는데 위로 먼저 배운 선배들이 있고, 그 선배들이 신입 회원들을 가르쳐주는 시스템이었다. 꽤 규모가 큰 동호회였는지 당시 신입이 50명 정도 됐다.


'처음부터 잘하진 못해도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 순진한 생각으로 첫날, 처음 알려주는 살사 스텝을 밟았다.


그런데,

'어, 그냥 스텝 하난데 왜 안 되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에이 설마, 기본 스텝 하난데.

바닥만 보며 집중하려고 하는데도 내 발끝은 갈 곳을 모르고 버벅거렸다. 이건 정말 심각한데.

내가 이 정도였다고?

순간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는데 그 스텝이 안 되는 사람은 50명 중에 나랑 선배 언니 둘 뿐이었다.

그리고 그걸 동호회 선배들도 순식간에 알아채고 바로 선배와 내 옆에 1대 1로 붙었다.

당혹스러움과 창피함과 무력감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기분.

더 울고 싶었던 건 그 스텝 하나를 40분 동안 하는데 40분 내내 버벅거렸다는 것이다.

나를 도와주려고 옆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분에게 너무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미안해요, 많이 놀랐죠? 나도 내가 이 정도까지 인 줄은 몰랐어요. 모르니까 여기까지 온 거예요.'


살사 동호회 첫 번째 수업, 기본 스텝이 끝나고 사람들이 서로서로 어울려 맥주를 마시러 갈 때 나랑 선배는 조용히 가방을 싸들고 연습실을 나왔다. 아마 우리 둘의 뒷모습은 아주 지치고 한없이 우울해 보였을 것이다.


그 뒤로 춤을 배우겠다거나 춤을 춰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그건 나와는 아주 먼 다른 세계의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가 생각한 대로 몸이 움직이고, 중력을 벗어나 가벼워진다는 것에 대한 동경은 계속 남아 있다. 단순한 몸의 움직임 너머에 무한한 자유로움이라는 세계가 있을 것 같다는 상상.

그래 본 적도 없으면서 그런 상상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나도 모르겠다.


가끔씩 춤에 대한 그런 동경과 상상이 깨어날 때면 혹독했던 내 첫 번째 춤 수업의 괴로운 기억도 같이 떠오른다. 웬만한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던데, 이 기억은 어찌나 강력한지 잘 잊히지도 않는다.

또다시 '춤을 배워볼까?', '열심히 하면 그래도 되지 않을까?' 하는 허황된 생각이 올라오면 그때의 기억이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려준다.


그래서 춤이라는 것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았는데 마흔이 넘은 요즘 어쩌다 보니 춤을 춘다.  


춤이 아닌 율동이라고 해야 하나?

바로 교회에서 아이들과 하는 찬양 율동이다.

심지어 종종 율동을 잘한다는 칭찬을 듣기도 한다.

물론 진짜 잘하는 건 아니다. 타고난 몸치에 박자감도 없고, 몸으로 하는 일들은 왜 그런지 순서도 잘 못 외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내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됐다. 더 이상 괴롭지 않다.

'그래, 난 잘 못해. 하지만 잘 못한다고 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춤을 못 춰도 추고 싶으면 추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니 잘해야겠다는 욕심도, 나 자신에 대한 기대도 없이 그저 즐겁게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참 즐거워 보이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나에 대한 모든 기대를 내려놓고 그저 즐겁게, 신나게 움직인다.

박자를 놓쳐도 동작을 틀려도 상관없이.


생각해 보니 애초에 춤의 기원이 그런 것 아니었을까.

정해진 스텝이 아니라 즐겁고 기쁜 마음이 먼저였을 것이다.


춤을 통해서 '잘하지 못해도 즐거워하는 마음'을 배우고 있는 것 같다.


그리 여유로운 삶이 아니어서였는지 나는 잘해야만 계속했고,

잘하지 못하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했다.

그러다 보니 결국 남은 건 내가 만든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수많은 금지선들 뿐이다.


못한다고 왜 하지 말아야 해?

아주아주 못해도 심지어 즐겁게 할 수도 있지!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들이 즐거운 이유도 알 것 같다.

게다가 못해도 즐거운 사람은 멈추지도 않는다.

그건 그것대로 멋진 어른이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살다 보면 손절도 당하는 거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