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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일기

매일 딱 한 줄만 일기를 쓴다면

by 이병민

몇 년 전부터 일기를 꾸준히 써왔다. 그러나 딱 한 줄. 더도 덜도 아닌 한 줄만 쓰기로 마음먹고 자칭 '한 줄 일기'라 부르는 행위를 실천해왔다. 나는 보통 자기 전에 딱 한 줄을 적었다. 일기를 한 줄로 요약하려고 하면 자연스레 하루를 전반적으로 돌아보게 되었고, 나중에 읽을 때에도 군더더기가 없이 핵심만 잘 읽혀 좋았다.


그러나 올해에는 조금 방식을 바꾸어 한 줄 이상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몇 년간 쓰다 보니 글을 써내는 근육이 전보다는 붙은 듯하여 몇 줄 더 쓰는 게 힘들지 않을 것 같았다. 실제로 약 2주간 실천해 보니 충분히 할 만하고 나름 재미도 있다. 예전에는 한 줄만 쓰다 보니 지나치게 추상적인 느낌이 있었는데—작년 일기는 거의 명언 모음집이다—문장 수에 제한을 두지 않으니 일기에 감정이 훨씬 크게 담기는 것 같다.


일기는 하루를 두 번 살게 한다. 나는 기록하지 않으면 금방 잊어먹는 편이라 일기의 효능을 더욱 톡톡히 누리고 있다. 나는 내가 배우는 거의 모든 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끄적이거나, 도식화하거나, 체계적으로 정리한다. 그렇게 해야만 기억에 잘 각인이 된다. 그런 관점에서 일기 쓰기는 내가 하루를 제대로 곱씹어 소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일기를 쓰고 나면 하루에 대한 나의 행동을 점검할 수 있고 나아가 오늘 못 했더라도 내일은 더 나아질 수 있을 무언가를 떠올리게 된다. 아무리 힘들었던 날이라도 '오늘이 내 마지막 날은 아니니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지난 한 주간의 일기를 읽어보았다. 피곤했다는 얘기가 대부분이다. 스스로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앞으로 훨씬 수고해야겠지만. 다음 한 주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운동도 하고 명상도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



2025년 1월 8일 (수)

몰스킨에 하루 일과를 시간 단위로 적어보았다. 하루의 길이 보이는 듯하여 집중도가 올라갔다. 2회차 수필을 썼다. 업로드하기 떨렸지만 집중하는 시간은 행복했다. 영화 음악을 만드는 일이 점점 재미있다. 운동은 꾸준히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2025년 1월 9일 (목)

낮부터 작업실을 정리하고 독서를 하고 친구를 만나고 작업을 했다. 매우 피곤했지만 많은 것을 이뤄 뿌듯했다.


2025년 1월 10일 (금)

매일매일 새로운 기록을 경신하고 성장해나가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대견하다. 잠에 들기 전 눈꺼풀은 항상 쓰러지듯 무겁지만 마음은 언제나 뿌듯하고 벅차다. 이 열정이 식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계획을 완수할 수 있기를.


2025년 1월 11일 (토)

깔끔하게 머리를 정돈하고 혼자만의 시간과 친구와의 작업까지 모두 훌륭하게 해냈다. 쓰러질 듯 피곤하지만 오늘의 어떤 선택도 후회하지 않는다.


2025년 1월 12일 (일)

아침에 애매하게 누워있지 말고 몸을 일으켜야 한다. 오랜만에 무게를 올려 하체 운동을 하고 좋아하는 버거와 커피를 마셨다. 작업 중인 미디어 프로젝트들을 모두 차곡차곡 정리하고 베이컨을 사 카르보나라를 했다. 영화 마션이 떠오른다. 이상할 만큼 피로감이 커서 열 시경 잠을 청해본다.


2025년 1월 13일 (월)

제주도에 대한 스크립트를 쓰고 내레이션을 녹음했다. 제주도 영상을 편집하면서 지난 여행을 돌아보게 되었다. 앞으로가 더 기대가 되는 혼자만의 여정이다. 스스로 참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피곤함이 매우 크고,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2025년 1월 14일 (화)

오늘도, 정말 쓰러질 듯 피곤하지만 후회가 없다. 매일매일 하루를 두 배로 사는 듯하다. 출근과 출근이 이어진다. 눈꺼풀이 계속 감기는 걸 번쩍 뜨이게 하는 친구들과, 작업물들이 눈앞에 있다. 00:06. 이제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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