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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을 내기로 했다

정규 앨범을 향한 여정

by 이병민


며칠 전 알틴비(나의 예명이다)의 앨범 발매일이 정해졌다. 더 이상 앨범 제작을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 유통사인 포크라노스에 연락을 취했다. 담당 매니저께서는 기다리셨다는 듯 신속하게 일정을 조율해 주셨고 덕분에 내가 원하는 날짜에 발매일이 확정될 수 있었다. 날짜는 2025년 7월 23일과 9월 1일. 7월에는 싱글, 9월에는 정규 앨범을 발매하기로 확정했다. 나에게 이번 소식은 단순한 날짜 조율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정규 앨범은 내가 오랜 시간 고민해 온 일이다. 내가 사운드클라우드에서 처음 음악을 올렸을 때가 2011년도라는 걸 계산해 보면 1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인터넷에 음악을 게시해왔다는 것. 적지 않은 수의 곡들이었지만 정식으로 발매된 음원은 소수에 그친다. 그마저도 소극적으로 제작했던 싱글 단위의 곡들이다. 나는 스스로 역량이 갖추어지면 긴 앨범을 만드리라 다짐해 왔는데, 이제는 때가 온 것 같다. 돌려 말해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다. 발매일을 확정하고 나니 시곗바늘이 다르게 움직이는 것만 같다. 이후 며칠간 스스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관찰해 보았다.


우선 동기부여가 되었다. 결승선이 정확히 보이는 레일 위에 올라선 것이다. 이전까지는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도, 어디로 뛰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달리는 상태였다면 지금은 분명하게 가야 할 목적지가 보이는 상황이기에 이전보다 훨씬 능동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얼마 전 '마감의 중요성'에 대해 농담하는 배우 구교환님의 인터뷰를 보았다. 자신은 보기와 다르게 자주 놀러 다니지만, 작품에 대한 기한만큼은 반드시 지킨다는 이야기였다. 이와 비슷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다. 비단 예술가 뿐만 아니라 납기를 맞춰야 하는 모든 산업 군(혹은 학생 또한)에서 마감은 절대적인 성과의 지표가 된다. 나는 지난 2년간 의도적으로 마감을 만들지 않았다. 2019년도에 나는 발매 주기를 3개월로 잡아 늘 마감에 쫓기는 기분이 들었고 결과적으로 스스로 성장할 시간을 깊게 갖지 못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는 어떠한 마감도 없이 오롯이 순수한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은 충분히 만끽했다. 이제부터는 반짝이는 눈으로 결승선을 향해 힘차게 달려나가고 싶다.


둘째, 분기별 목표를 계획하게 되었다. 사실 음악을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음악은 그저 좋아서 하는 취미 같은 일이기 때문에 굳이 목표 따위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한편으로 나는 계획 위에서 움직일 때 더 창의적이고 능동적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이번 발매 일정이 꽤나 반갑다. 오늘은 2021년도 10월부터 작업해놓은 모든 자작곡들을 한 군데 추려 모았다. 오늘 2025년 1월 8일을 기준으로 총 242곡을 한 폴더에 취합했다. 이는 약 40개월간 작업해온 결과물인 셈이다. 이번 주에는 곡들을 모두 한 번씩 차례로 듣고 어떤 곡을 앨범에 수록할지를 가려볼 셈이다. 어떤 음악은 듣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 신기하게도 모든 곡에 작업 당시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음악이 재생되자마자 옛 기억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여러모로 앞으로의 시간이 기대되는 만큼 작업의 분기별 체크리스트를 점검하여 일정에 어긋나지 않게 무사히 여정을 완주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체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며칠 전 201번 곡(나는 나의 모든 곡을 특정 숫자로 부른다)을 믹싱하면서 4시간을 쉬지 않고 내리 작업한 적이 있는데, 작업을 중단하고 일어나자 급격히 힘이 빠지며 기진맥진해졌다. 머리가 멍해지고 눈꺼풀이 무게추처럼 무거워졌다. 작업한 음악을 다시 들어보니 쓰레기처럼 들렸다. 자신감은 곤두박질쳤고 슬픈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다음 날 멀쩡한 정신으로 돌아보니 최근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더욱이 패스트푸드를 많이 먹었다는 걸 상기하게 되었다. 컨디션에 있어서 식단도 식단이지만 운동만큼은 정말이지 결코 무시할 수가 없는 주요 요인이다. 내게 정규 앨범 발매라는 목표가 생긴 만큼 나름대로 강한 의지를 갖고 스스로의 체력을 관리해야 한다. 결승선에 도달하는 순간까지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운동은 필수다.


본질은 음악이라는 걸 잊지 않고 싶다.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여놓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음악 그 자체다. 그리고 좋은 음악(특히 앨범)이라는 건 진심과 열정이 담긴 한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빚어진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음악은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다. 나의 여리고 순수한 감정부터 그 반대의 마음 상태까지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유일한 언어이자, 나의 일부다. 한편으로 이는 음악이 내게 결코 일이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내 마음을 혹여나 잃어버리지 않고 스스로를 믿으며 즐겁게 앨범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언젠가는 빛을 발할 수 있기를. 그리고 언제나 진솔하고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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