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저 허수아비의 얼굴에 고깔을 씌워놨나.
그는 고깔을 통해 세상을 보니,
제 앞에 놓인 길 외엔 모든 게 하찮다.
속은 텅텅 빈 그 쭉정이 같은 몸으로
이리저리 치이며
세월에 굽은 할머니의 등처럼 살다가
허수아비의 집으로 돌아와 그제야 기세가 살고,
그제야 하루 종일 느끼지 못한 분노가 치민다.
양 눈에 고깔이 달린 너의 모습이 우습고,
고깔로 앞을 똑바로 보지 못해
네 몸을 채우는 지푸라기를 신경 쓰지 못하는 게 우습고,
그렇게 고깔을 달고 살기로 결정한 네가 가장 우습다.
저 미련한 허수아비는 제 몸의 지푸라기를 뽑으며 걸어간다.
난 그 지푸라기를 먹으며 뱃속부터 썩어간다.
배가 썩고, 목이 썩고, 혀마저 썩어서
당장이라도 허수아비의 등을 때리며
지푸라기 뽑는 그 손을 떼어 버리고 싶지만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인지,
목소리를 내지 않기로 결정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원치 않는 침묵으로 쌓인 분노가
날 갈가리 찢어 놓는다.
저 미련하고 아둔한 허수아비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날 갈가리 찢어 놓는다.
네가 미물인가,
아니면 네 눈에 바치는 내가 미물인가?
너의 고깔로 인해 마지막까지 고통받는 건 너일까, 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