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하지 맙시다 : 오싱

6월의 테마 : 세계 아동노동 반대의 날

by 유진


오싱 (Oshin, 2013)











일곱 살짜리 아이가 남의 집 식모살이를 간다. 대가는 쌀 한 가마니. 아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 집과 가게의 바닥을 닦고, 빨래를 하고, 아이를 업고 달랜다. 하루 종일 허드렛일을 해도 먹을 수 있는 건 다른 사람들이 먹고 남긴, 한 그릇도 안 되는 무밥뿐.

아동 노동 착취의 종합판으로 보이는 이 이야기는 영화 [오싱]의 한 단락이다. 하시다 스가코의 소설이 원작으로, 1983년부터 NHK 아침 드라마로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는 오싱의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전반을 다루고 있다. 영화 [오싱]은 그중 오싱의 첫 더부살이부터 카가야에서의 생활까지를 다룬다.

[오싱]은 농경사회에서 산업화된 근대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아동의 노동이 착취당하는 과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지주의 착취로 제대로 먹고살 수 없게 된 소작인들은 자식들을 실 만드는 공장이나, 남의 집의 하녀로 보냈다. 영화 [오싱]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드라마에서는 오싱의 언니인 하루가 실 공장에서 폐병을 얻어 죽는 과정이 그려지기도 한다.

근대로 넘어오기 전 에도 시대, 하녀살이는 도제 시스템의 일종으로 편입되어 있었다. 보통 나이는 열두 살 이상으로 규정되었고, 하녀로 간 아이는 15세가 되어 성인식을 치른 후에는 주인집의 도움으로 결혼을 하여 더부살이를 나가거나 혹은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일본뿐만이 아닌 중세시대 대부분 국가에서 도제 시스템은 ‘미래 보장’을 담보로 한 아동의 노동력 착취였다. 그것이,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미래 보장’ 마저 흔들리게 되었다. 스승이 되어야 할 주인 쪽은 더욱 싼 가격으로 사람을 부리기를 바라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이 밀려 들어오는 때였다. 지식 기술자들의 몸값이 높아지는 만큼, 단순 노동에서 인건비를 줄여야 했다. 제자라는 명목으로 일꾼을 죽을 때까지 끌어안고 돌보아 주는 것은 비합리적인 일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결국 미래 보장은 쏙 빠지고, 혹독해진 노동만이 고스란히 아동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 물론 그중에는 제자를 독립시켜 주고 싶어도, 근대의 자본에 밀려 그럴 수 없게 된 케이스도 존재했다. 에밀 졸라의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의 부라 씨처럼 말이다.

영화 [오싱]에서 섬뜩한 점은, 이러한 노동을 ‘숭고한 어머니의 희생정신’으로 포장한다는 점이다. ‘세상의 어머니들은 모두 자식을 위해 계속 일한다.’는 내레이션과 함께, 어린 오싱의 눈에 너무나 숭고하게 비추어지는 어머니. 그런 엄마를 보며, 또다시 다른 집으로 더부살이를 나서는 오싱. 오싱 역시 그러한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고 영화가 떠미는 듯하다. 오싱의 노동을 주인공에게 주어진 시련일 뿐이며, 시련을 극복했을 때 오싱은 성장할 것이라고.

그래. 오싱은 성장할 것이다. 그 노동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 깨닫지 못한 채 어른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부당함을, 미화할 것이다. 인내와 희생이란 이름으로.

그렇게 쳇바퀴가 돈다면, 그 쳇바퀴는 부서져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그 이야기가 보는 이의 눈물을 자아낸다 하더라도 말이다. 적어도, 근사한 말로 포장하지는 말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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