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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Feb 18. 2024

0212-0218 편지 주기(週記)


지난주의 나에게.


매일 저녁 정해진 시간이 되면 단지 내에 두부를 파는 트럭 아저씨가 옵니다. 두부와 콩나물, 뻥튀기 등을 싣고 다니면서 종을 울리지요. 두부와 달걀은 늘 이 아저씨가 파는 것을 사고 있습니다. 두부가 정말 맛있거든요. 어쨌든 두부와 달걀과 간장만 있으면 일주일은 버틸 수 있는 법입니다.


이 아저씨는 무척이나 성실하신 분입니다. 이곳에서 지낸 동안 종소리가 정해진 시간에 울리지 않은 때가 없습니다. 폭우가 쏟아지거나 폭설이 내린 다음 날에도 여김 없이 정해진 시간이 되면 나타납니다. 트럭을 멈춰 세우고 단지를 한 바퀴 빙 돌며 손에 든 종을 흔들어 자신이 왔음을 알리고, 손님이 올 때까지 트럭에 기대어 책을 읽습니다. 어쩌다 아저씨가 책 읽는 모습을 본 후로, 나는 일상을 흘려보내는 것과 흐르게 하는 것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주에는 금요일에 종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두부를 사기 위해 바쁘게 걸어 집에 도착했는데도, 트럭이 늘 있던 자리에 보이지 않더군요. 조금 늦게 오시는가 싶어 십여분을 기다렸습니다. 아마도 나와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서너 명, 제자리를 서성거리는 풍경이 펼쳐졌지요. 하지만 15분이 지나도록 트럭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흩어졌고, 나도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전에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에서, 단골손님이 계속 오지 않자 수상하게 여긴 미용실 주인이 실종 신고를 해서 그가 범죄에 휘말린 것을 알게 되었다란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미용실 주인이 참 오지랖이 넓거나 손님하고 진짜 친했나 보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깨달았죠.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라도, 매일 성실하게 모습을 보인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는 건 꽤 동요를 불러일으키는 일이구나 하고 말입니다. 트럭 아저씨가 어딘가 아픈 건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되더라고요. 이상한 일이지요.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은 적도 많지 않은데 말입니다. 누군가를 걱정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그 누군가가 자신의 일상에 스며들었기 때문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트럭은 그다음 날에, 아무 일 없다는 듯 나타났습니다. 두부를 사면서 물어보니 그날 이상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되어서 단지에 도착하기 전에 물건이 모두 동났다고 합니다. 20년 넘게 장사를 하면서 처음 있는 일이라 놀랐다고 말하는 표정이 기쁜 듯해서, 마음이 좋았습니다.


두부는 물론 맛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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