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여 안녕
슬픔이여 잘 가
슬픔이여 안녕
천장 줄 속에서도 너는 새겨져 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슬픔을 생각해 보았다.
사랑하는 내 동생의 병상에 앉아
그가 이 세상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을 함께 하면서
편한 숨을 내쉬는 내가 미안하고 민망했다.
숨 쉬는 일이 그리 고단하고 힘겨운 일이 될 수도 있음을 보며
나는 그의 힘겨운 숨결마다 내 숨이 옭죄어 오는 듯 했었다.
그렇게 마지막 밤을 보내고 그는 떠났다.
그는 고맙다며 떠났다.
그냥... 세상의 모든 빛깔이 쇠하여지고
귓가에는 윙윙 소리만 들리는 듯 했다.
새롭게 태어난 모든 생명이 귀하고 귀해서 우리는 무한축하를 하지만
그 귀한 목숨이 떠나간 자리에서는 할 말이 없다.
그는 내게 너무 너무 소중한 사람이었다.
이은상의 '무상'이 생각났다.
아니디아... 아니디아...
울먹울먹 가슴 속에서 꽃처럼 피어나던 무상함...
잊고 있었던 무수한 귀절들이 문득문득 꽃잎처럼 수면위로 떠 올랐다.
'아니디아!' 어허 천지가 무상하구나.
과연 무엇이 무상인고.
아침 새 창 머리에 와서 노래하는가 하면
석양이 마당에 비껴 저녁 그늘을 누이니 이것이 무상인가.
뜰 앞에 심은 복숭아 나뭇가지에 향기로운 꽃송이 피어나는 것을 보고 돌아서서
그 나무 아래 어지러이 날리는 낙엽 소리를 들으니 이것이 무상인가.
.
.
산도 헐어지고
물길도 돌아나고
고목은 굽어 썩어지고
새솔 나 자라나고,
이라형 왕국도 변하고 역사도 바뀌고 천지도 옮기나니 이것이 무상인가.
그렇다. 염념찰나에 나고 머무르고 달라지고 없어지지 않는 것이 어디 있던가.
우주가 통히 그대로 무상밖에 다시 또 무엇이랴.
'아니디아!' 자정이 넘어 깊은 밤.
소리도 없이 오시는 눈이 어깨랑 가슴 위에 내려 쌓이는 밤.
구트나 슬픈 기억을 한 아름 안고 뚜벅뚜벅 무거운 걸음으로 집을 찾아 돌아왔다.
희미한 등불 아래 앉았으나 멀고 멀다!
아득한 마음을 감아 거둘 길 없다.
이은상 '무상' 중에서....
너무 아픈 슬픔은 슬픔이 아닌걸까....
그를 뒤에 두고 나는 자꾸만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괜찮아. 그곳은 더 좋을지도 몰라.
이젠 아프지 않게 지낼수도 있을거야.
길게 길게 오래 오래 장수한다는 것만이 축복이 아닐거야.
사랑하는 내 동생아... 엄마도 만나고 할매도 만나서 행복해라.
사랑하는 내 동생아... 성모님 품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안식이 너와 함께 하겠구나.
내 동생 프란치스코야..... 영원한 복락을 너는 누리겠구나....
그래서... 슬픔이여 안녕.. 슬픔이여 안녕...
무수한 안녕을 되풀이 하면서
내 눈에 보이는 모든 세상에서 함께 하는 너를 본다.
나는 가장 커다란 아픔과 깊은 슬픔이 이런 것임을
귀가 순해진다는 이 나이에 겨우 깨닫는다.
슬픔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