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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경 Sep 03. 2016

구월의 향기는 햇빛 속에서

그리움처럼 느려지는 세월이 되기를...

사계절이 있어서 참 좋은 나라라고 배웠다.

초등학교 다닐 적에 우리나라는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배우고

물 맑고 산천경개가 아름다운 것이라 배웠다.

삼천리 금수강산... 이 말은 내 또래의 모든 동무들은 익숙한 말일 것이다.


요즘

바깥 세상 풍경이 그립다.

매일 집안에만 머물거나 출퇴근길에 보이는 풍경은 풍경이 아니다.

그냥 가로수가 보이고 하늘이 보이고 지나가는 이들의 옷차림만 보인다.

그 속에서 빈약하게 계절을 읽을 수 밖에 없는데

느닷없이 구월이 오고 난 후에는 거리로 나서고 싶어진다.

햇빛 속에 든 가을향이 느껴지고

문득 고추잠자리가 어디선가 날아 올 것만 같아서... 가을이구나.. 혼잣말을 한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다던 시인과

가을 이별 앞에서 잎새따라 인연을 어루만지던 사람과

내 기억 속에서 아릿한 슬픔이 빗겨나간 잃어버린 사랑과

내 손바닥보다 커다란 플라터너스 잎새 떨어지던 어느 거리에서 서성이던 그날들이

구월처럼 다가 와서 시월처럼 흔들린다.


내 나이의 시계는 구월이나 시월쯤 되었으리라.

하루가 지나가는 어느 지점에 서면 어둠처럼 설핏한 석양 아래서

집집마다 굴뚝에 피어오르던 어느 저녁 돌아가 다리 뻗을 내 집을 생각한다.

그리움 묻어나는 기억 속에는 하얀 박꽃이 끝없이 피고 지고

감나무 위로 매달린 하늘이 더욱 익어가듯이

나의 세월도 단단한 과육껍질을 지나 단맛 더해지는 속살처럼

부드럽고 감미롭게 깊이를 더해갔으면 좋겠다.


9월의 첫 토요일 오후에 퇴근하지 못하고 책상머리를 지키면서

자꾸만 달아나는 오랜 기억들을 붙잡으려 숨바꼭질을 한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옷자락이 보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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