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처럼 느려지는 세월이 되기를...
사계절이 있어서 참 좋은 나라라고 배웠다.
초등학교 다닐 적에 우리나라는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배우고
물 맑고 산천경개가 아름다운 것이라 배웠다.
삼천리 금수강산... 이 말은 내 또래의 모든 동무들은 익숙한 말일 것이다.
요즘
바깥 세상 풍경이 그립다.
매일 집안에만 머물거나 출퇴근길에 보이는 풍경은 풍경이 아니다.
그냥 가로수가 보이고 하늘이 보이고 지나가는 이들의 옷차림만 보인다.
그 속에서 빈약하게 계절을 읽을 수 밖에 없는데
느닷없이 구월이 오고 난 후에는 거리로 나서고 싶어진다.
햇빛 속에 든 가을향이 느껴지고
문득 고추잠자리가 어디선가 날아 올 것만 같아서... 가을이구나.. 혼잣말을 한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다던 시인과
가을 이별 앞에서 잎새따라 인연을 어루만지던 사람과
내 기억 속에서 아릿한 슬픔이 빗겨나간 잃어버린 사랑과
내 손바닥보다 커다란 플라터너스 잎새 떨어지던 어느 거리에서 서성이던 그날들이
구월처럼 다가 와서 시월처럼 흔들린다.
내 나이의 시계는 구월이나 시월쯤 되었으리라.
하루가 지나가는 어느 지점에 서면 어둠처럼 설핏한 석양 아래서
집집마다 굴뚝에 피어오르던 어느 저녁 돌아가 다리 뻗을 내 집을 생각한다.
그리움 묻어나는 기억 속에는 하얀 박꽃이 끝없이 피고 지고
감나무 위로 매달린 하늘이 더욱 익어가듯이
나의 세월도 단단한 과육껍질을 지나 단맛 더해지는 속살처럼
부드럽고 감미롭게 깊이를 더해갔으면 좋겠다.
9월의 첫 토요일 오후에 퇴근하지 못하고 책상머리를 지키면서
자꾸만 달아나는 오랜 기억들을 붙잡으려 숨바꼭질을 한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옷자락이 보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