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카페 운영기 3편
무인매장을 운영해볼까?
하는 사람들의 기저에는 '오토로 매달 ㅇㅇㅇ만원 따박따박'에 대한 환상이 숨어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단호하게 말해줄 수 있다. 그런건 없다고.
사람이 직접 운영하는 유인매장의 경우보다는 무인매장이 여러모로 손이 가지 않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매장에 대한 관리포인트는 유인매장 못지 않다. 대부분의 무인카페나 무인매장을 책임져야 하는 사림이 한명인 경우가 많으니 모든 책임과 관리는 그 한명에게 몰린다. 그리고 대부분 그 한명은 나다.
1. 밤 시간 관리
오픈 초기 무인카페를 관리하는데 가장 신경서야 하는 시간대는 밤이다. 내가 오픈했던 지역은 경기도 북부의 한 소도시에 있는 구시가지의 아파트 상가였다. 다행인 점은 대단지 아파트이고 주변에 다른 유해시설이 없다보니 대체로 밤 시간에도 큰 소동(?)이 있을 가능성은 낮았다. 하지만 밤이 되면 다른 얘기가 된다. 밤이 되면 동네 사람들이 오는 것이 아니라 오갈데 없는, 또는 아지트를 찾는 친구들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본사에서도 초반 한달은 밤에 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 당부했었다. 실제로 그랬다. 밤이 되자 어디선가 오토바이를 끌고 와서는 새로 생긴 무인 카페를 탐색하는 친구들이 생겨났다. 10대 초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 친구들은 남녀가 뒤섞여 있었다. 그 친구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오든 자전거를 타고 오든 내 알 바는 아니지만 매장에 들어와서 커피 한잔 시키지 않고 밤을 지새우는 건 매우 알 바였다.
그럴 때면 매장에 연결된 CCTV에 있는 마이크 기능으로 '음료를 주문하고 이용하라', '1인 1음료 주문하라'같은 멘트들을 방송해야 한다. 방송이 나오면 대체로 깜작 놀란다. 자기들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을거라 생각하지 못해서인지 대부분 음료를 주문하거나 나가거나 둘중 하나의 반응을 보인다. 음료를 주문하면 감사한 고객님이 되는거고 나가도 고마운 일이다.
말이 쉽지 처음에는 아니 사실 나중에도 방송을 하는건 떨리는 일이었다. 내 스마트폰으로 CCTV를 보다가 이슈가 생기면 조용한 곳으로 간다. CCTV 앱에 있는 마이크 버튼을 누르고 준비된 멘트를 날린다. 혹시나 음질이 안좋거나 사람들이 떠드는 새에 못들을까 싶어 낮은 목소리와 정확한 발음으로 차분하게. 9월에 오픈해서 한달 정도 방송을 하니 아지트 삼으려고 찾아오던 아이들의 발길이 잦아들었고 밤 시간에 신경을 쓸 일도 줄었다.
2. 기계 관리
밤 시간이 안정화되었다고 낮 시간이 만만한건 아니다. 과일을 깎아와서 드시는 어르신들, 음료는 시키지 않고 각자 한테이블씩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핸드폰 게임에 빠진 초등학생들. 여러명이 와서 음료는 1~2잔만 시키는 그룹까지. 뭐 사실 이 정도면 힘든 고객(a.k.a 진상)을 만났다고 할 정도는 아니긴 하다. 가게를 넘기기 한달쯤 전엔가 다짜고자 전화해 자신이 음료 주문을 잘못 해놓고는 버럭 소리를 지르던 사람 한명을 빼놓고는 2년간 다 이해가능한 손님들을 만나긴 했다.
매장 운영에 손님의 문제만 있는건 아니다. 무인 매장이 무인으로 운영될 수 있는 건 자판기 덕분이다. 그런데 이 자판기에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내가 운영하던 매장의 자판기는 크게 3종류로 구분되어 있었다. 주문을 하고 음료가 제조되는 메인 머신, 제빙기, 컵 배출기. 가끔 컵 배출기는 컵이 걸려서 안나오기도 하고, 컵이 나와서 음료를 받았는데 컵이 찢어져 있는 경우, 제빙기에서 얼음이 너무 많이 나오는 경우, 얼음이 너무 적게 나오는 경우, 음료를 받으려는데 음료가 안나오는 경우 등. 대체로 큰 문제는 아니다. 컵이 불량이라면 환불해주거나 음료를 다시 뽑아주면 된다. 이런 일들도 다 원격으로 가능하다. 그런데 음료가 안나오는 경우는 사람이 직접 가서 확인해야 한다. 기계 내부에 호스가 빠져 있는 경우, 잘못 껴져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3. 알바
이 때 역할을 해주는 것이 알바다. 매장을 운영하는 내내 알바를 썼는데 거쳐간 알바가 5~6명쯤 되는 것 같다. 누구는 6개월을 일해주었고 누구는 1달만에 그만두기도 했다. 알바를 뽑는 일도 꽤 시간이 든다. 대단지에 위치한 무인카페이다 보니 일할 사람들, 즉 잠재적 알바 구직자들이 꽤 많았다. 당근에 구인공고를 올리면 30~40명씩 지원자가 들어오니 구인난도 없었다. 다만 좋은 사람을 뽑기 위해 10명씩 면접을 보곤 했는데 면접 보고 사람을 뽑는 일도 1주일은 걸리곤 했다. 사람만 조금 덜 자주 뽑아도 내 시간이 꽤나 세이브 되는 것이었다.
운영 초반엔 알바가 하루에 두번, 아침과 저녁에 한번씩 방문해서 매장을 관리했다. 알바가 하는 일 중에 난이도가 높은 일은 없었지만 가짓수가 워낙 많았다. 소소하게 따지자면 100가지는 해야 했던 것 같다. 어떤 일은 매일 하고 어떤 일은 이틀에 한번, 어떤 일은 1주일에 한번 하는 일이었다. 이 일들을 구글 스프레드 시트에 매뉴얼화해서 전달해주고 그대로만 해달라고 했다.
실제로 면접을 볼 때는 50~60대 분들도 많이 오셨는데 대부분 '큰 돈 버는 것도 아니고'라며 말문을 여셨다. 그러다보니 신뢰가 가지 않았다. 큰 돈을 벌지 않는 것은 맞지만 이런 마음을 전제로 두는 분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실 수 있을지, 그리고 내가 요구하는 사항들에 맞춰 매장 관리를 해주실 수 있을지. 결과적으로 함께 일했던 알바분들의 연령대는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했지만 그 이상의 나이대 분들을 뽑아본 적은 없었다.
4. 청결
매장을 운영하며 알바분들께 강조한건 딱 하나였다. 그게 마케팅은 아니었다. 마케팅이나 다른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동네 매장이고 무인카페이다보니 누군가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의 손님이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매장 준비를 할 때도 앞선 세입자가 이용하던 빈 매장을 철거하는 며칠 사이에 '여기에 카페가 생긴다'는 말이 순식간에 동네에 퍼졌다. 인테리어를 준비하던 본사 직원 분들에게 아침에 '여기 뭐해요?'라고 물어보던 주민들이 저녁에는 '여기 무인카페 들어온다면서요?'라고 말했다고 하니 말 다했지. 매장 오픈을 며칠 앞둔 시점 그리고 오픈 하고 1년이 지나 이벤트를 하던 시점 딱 두번 동네에 전단지 배포를 한게 다였다.
오히려 중요한 건 청결이었다. 커피 머신의 레시피는 본사가 관리하고 있었고 어차피 동네 손님만 상대할 거라면 마케팅보다 중요한건 신뢰였다. F&B 매장의 신뢰는 청결함이 준다. 매장 자체의 외형적 청결 그리고 커피와 음료를 제조하는 메인 머신 내부의 청결. 이때도 생각한 청결의 정도는 'good enough'였다. 매장이 청결해야 하는 것은 고객이 이용하는데 불쾌감을 주지 않는 선이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매장에 몇개의 화분이 있었는데 관리가 어려워 그 중 한두개가 죽었다. 어떤 손님은 매장의 인테리어 소품을 파손했다고 연락을 해오기도 했다. 그런건 그냥 버리고 새로 사지 않았다. 쓸고 닦는 청소는 매일 하지만 구석구석 먼지 한톨 없이 관리하는건 가능하지도 않았고 필요하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대신 머신 내부 청결도는 최대한으로 유지했다. 에스프레소를 만들어 내는 브로맥도 이틀에 한번 청소하고 잘보이지 않는 곳도 칫솔로 깨끗하게 유지했다.
갑자기 오후에 특정 재료만 소진되어 부랴부랴 매장으로 달려가기도 하고 생각보다 빨리 재료 재고가 소진되어 주변 다른 매장에 연락해 빌려오기도 했다. 매장 정수기에서 물이 새서 밤늦게 달려가는 일도 있었고 화장실이 난장판이 되서 직접 청소하는 일도 잦았다.
업종, 아이템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무인 매장이라고 무인이 아니라고 생각해선 절대 안된다. 무인 매장 뒤엔 늘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