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gho Kim Oct 09. 2016

몸으로 배우는 체험 작업환경

불쌍한 나의 컴퓨터 이야기

학부 초반에는 컴퓨터가 필요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간은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읽었다. 가끔 교양 수업에서 PPT라도 하게 되면 학교 공용 컴퓨터를 이용했다. 두 시간에 한 번씩 자리를 옮기는 궁상을 떨었다. 학교엔 다양한 종류의 바이러스들이 창궐했다. USB가 자주 감염되었다. 다행히 파일을 공격하진 않았다. 그냥 학교 컴퓨터에서 학교 컴퓨터로 그들을 옮겨줄 뿐이었다. 혹시나 해서 인터넷은 해킹당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계정만 썼다. 착한 바이러스들에 익숙해져 갔다. 쓰고 보니 기가 막히네.


바나나로 세계 정복! 출처: Gratisography.


기업재무(Corporate Finance)를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엑셀을 거의 매일 쓰게 되었다. 노트북이 필요했다. 학교 커뮤니티에서 중고로 30만 원에 샀다. 판매자는 고시생이었는데 인강을 듣는 용도로만 사용했단다. 출시된 지 십 년 된 윈도 XP도 힘들어하는 가여운 친구였다. 부팅을 할 때마다 거친 숨을 내뱉었다. 괘념치 않고 각종 단축키와 가벼운 함수로 커버하려 했다. 뗏목도 안 되는 통나무로 망망대해를 건너려는 시도가 재밌었다.


아무리 그래도 기본적인 하드웨어 지식은 있어야 했다. 노트북은 성능, 무게, 가격 세 개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나는 성능을 포기한 것이었다. 싸고 가벼운 노트북은 발열이 상당하다. 하필이면 굉장히 춥던 겨울이었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엑셀 계산을 할 때마다 따듯해지는 노트북이 무척 예뻐 보였다. 온기를 무료로 얻은 부가기능이라며 기뻐했고 추운 겨울을 노트북과 함께 나려고 했다. 이건 뭐 거지도 아니고. 가방 속에 꼭꼭 넣고 계산을 돌리면서 수업을 들었다. 하루는 계산이 반나절을 넘었다. 단열에 탁월했던 가방을 열자 나오는 열기가 기분 좋게 따뜻했다. 십 여 분이 지났을까. 노트북이 푸슉,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서 팟 꺼져버렸다. 매캐한 연기가 키보드 사이로 느릿느릿 올라왔다. 아, 힘들었구나. 계속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거구나.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했어. 편히 쉬렴. 하지만 친절한 HP는 오래된 노트북도 무상으로 메인보드를 교체해 주었고, 나는 죽은 노트북을 살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원래 있는 기능일까, 뭔가 잘못 쓰고 있는 걸까. 이상한 느낌이 들면 물어보아야 한다. 출처: Gratisography.


증권사에서 일하면서 금융권의 작업환경을 익혔다. 사무용 PC에 더해 블룸버그가 따로 있어 컴퓨터는 두 대씩 이었다. 모니터는 각각의 컴퓨터에 서너 대씩 복층으로 있었다. 모니터는 다다익선이었다. 좋지 않은 자세로 여러 모니터를 쓰면서 주당 100시간씩 일을 했다. 금세 거북목 초기증세가 왔다. 1층 모니터를 주로 쓰다 보니 목을 숙여서 그렇다고 생각해서 2층 모니터를 주로 사용했다. 일주일 뒤에 자체 진단 거북목 말기 환자가 되었다.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 훨씬 하중이 큰 것이었다. 아니 왜 멍청한 짓을 해봐야만 아는 걸까.


대학원에선 Matlab으로 연구를 했다. 가볍고 좋은 노트북을 샀다. 1.13kg에 i5였다. 역시 중고였음에도 백만 원을 우습게 넘었다. 괜찮은 노트북을 써서 아낄 수 있는 시간에 최저시급을 곱하면 노트북 가격보다 훨씬 큰 금액일 것이었다. 경제학 석사과정쯤 되었으면 이제 기회비용은 계산할 줄 알아야겠지. 내 몸값으로 최저시급을 곱한 계산법은 여전히 거지 같지만. 운영체제는 윈도였다. 여러 컴퓨터를 전전하면서 호환성이나 표준화를 중요하게 여기게 된 습관, 엑셀이 필수적인 모자란 실력 때문이었다. 맥(Mac)은 평생 쓸 일이 없을 거라고 쉽게 단정했다. 모니터는 한 개만 더 두었다. 이 정도 환경도 꽤 만족스러웠다. 참, 쿨링팬도 따로 마련했다. 계산량이 많은 날엔 노트북을 뒤집어서 차가운 바람이 나오는 에어컨이나 창가 아래에 두었다. 연구실 밖으로 나갈 일이 생기면 두 손으로 꼭 안고 다녔다. 두 번 태워먹을 정도로 미련하진 않았다.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면서는 쓰던 노트북을 썼다. 만 원 짜리지만 키보드며 마우스며 손에 익은 것을 쓰는 게 편했다.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SQL을 익히게 되니 노트북으로 계산할 일이 없어졌다. 엄청난 신세계였다. 계산은 서버가 했고, 노트북은 출력만 했다.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적으로도 달랐다. 개발팀에서 query를 관리하면서 계산도 최적화를 해나간다고 한다. 그야말로 상전벽해였다. 01410에서 ADSL로 넘어간 정도의 감동이었다.


내가 맥을 쓰게 되었다. 엑셀 안녕. 출처: Pexels.


공부를 더 해보니 복잡한 계산을 할 일이 생기면서 SQL로 안 되는 부분이 나타났다. 개발 환경을 맞출 필요가 생겼다. 회사에서 맥북에어를 받았다. 처음 맥을 부팅하자 터치패드에서 마우스 오른쪽 클릭도 할 수가 없었다. 나라에서 여는 컴퓨터 강좌를 수강해야 할 것만 같은 엄청난 컴맹이 되었다. 그래도 맥에서의 프로그램들이 디테일에 훨씬 강한 느낌이다.


석환님이 VARIDESK PRO PLUS 36을 좋은 가격에 하사해주셨다. 서기도 하고 앉기도 할 수 있는 작업환경이 구축되었다. 석환님은 하루 종일 서서 일했다고 하셔서 도전해보았는데, 단 세 시간만에 자아가 분열되기 시작했다. 체력이 많이 부족하구나, 싶어서 VARIDESK 홍보자료를 찾아보았더니 하루 세 시간씩 서서 일하면 1년 동안 마라톤을 열 번 뛴 운동량과 맞먹는다는 내용이 있었다. 내가 약한 게 아니었어! 일하면서 마라톤을 뛸 수 있게 되었다.


졸업식 때 받은 꽃과 키우는 식물 때문에 식물원이라고 불린다. 식물은 현재 내 정신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 건강해 보인다.


Active X 때문에 윈도도 필요하고 맥도 동시에 필요하게 되었다. 급한 대로 두 대의 노트북에 한 대씩 모니터를 붙여서 쓰고 있다. 책상이 협소해지고 병렬적인 연결이다. 깊은 고민 없이 붙여놓기만 해서 공간 효율과 기기 효율이 상당히 떨어지는 느낌이다. 작업환경도 목적을 확실히 정립하고 시너지를 고려해 설계할 필요성이 있는 것 같은데, 현재 내 상태가 정리보다 학습이 더 빠른 시기인 것 같다. 엉망인 상태에서 계속 배워나가고 있다. 늘 그렇듯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