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gho Kim Nov 12. 2016

일본 금융의 神風

2013.7.15

1. 전조(前兆)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의 높은 저축률과 근면함으로 절치부심하여

1980년대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해내었다.


일본이 미국을 뛰어넘는 것은 시간문제로 여겨졌으며 세계 10대 기업 중 8개가 일본 기업이었다.

시가총액 1등인 NTT는 2위 IBM과의 격차가 무려 3배 이상 날 정도로 압도적이었고

일본의 모든 자산 가격이 상승해 도쿄 땅값이 미국 전체의 땅값보다 높을 것이란 이야기까지 나왔다.


한편 미국은 오일쇼크로 촉발된 스태그플레이션을 맞고 있었고

쌍둥이 적자(twin deficit)가 심화되면서 단기간에 자력으로 경제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미국 정부는 달러를 약세로 바꾸어서 비용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는 대응책을 구상하였다.


1985년, 결국 일본과 독일이 정치적인 압력에 눌려 자국 통화가치 상승을 유도하기로 플라자 합의(Plaza Agreement)를 맺었다.

엔/달러 환율은 이후 3년 동안 240에서 120까지 폭락하였다.

이것은 일본 경제 수출경쟁력에 타격을 주기 시작했지만

일본 정부가 올바른 대응책을 찾지 못하면서 주식, 채권, 부동산 전반의 거품이 붕괴되고 이후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맞게 되었다.


이 시기 일본 정부는 만성적인 경제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확대하였는데,

일본인의 높은 저축률에 기인한 낮은 한계소비성향(MPC)으로 정부지출의 효과가 미미하였다.

이런 문제에 일본 정부는 국채를 훨씬 더 많이 발행하여 양적인 대응하였다.

일본인들의 높은 저축률로 인해 0%대의 초저금리에도 국채 발행이 무난히 성공해왔기 때문에

정부부채가 큰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한편 일본의 대표 산업들은 한국과 중국에게 잠식되어가고 있었다.

80년대에 전 세계를 호령했던 일본의 전자산업은 2012년 일본의 모든 전자회사 순이익을 합쳐도 삼성전자 하나의 발 끝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아니, 삼성전자는커녕 회사가 존속이 가능할 만큼의 이익을 내는 기업이 별로 많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2013년, 일본의 정부부채가 GDP 대비 240%를 넘었고

세입은 GDP 대비 약 10%, 세출은 약 GDP 대비 약 20%로 예산이 짜였다.

이것은 일본의 정부부채가 GDP 대비 250%를 곧 넘을 것이라는 뜻이다.


2011년 유럽 재정위기 때에 문제가 되었던 국가들의 정부부채는 GDP 대비 90%~130% 정도였고

현재 대부분의 국가가 100% 내외임에 비추어 볼 때 일본의 250% 정부부채는 어마어마한 수치임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유지가 가능한 것은 저축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계속해서 채권을 계속 사들이기 때문에 매도세력이 없어서였다.

이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정부가 더 많은 채권 발행을 발행하는 데 일조하였다.


2. 신조 아베, 출사표를 던지다

2012년 12월, 자민당이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신조 아베가 총리로 취임하게 되었다.

아베는 고질적인 일본 경제의 정체성을 타개하기 위하여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아베노믹스를 실행하였다.


다음 세 가지 방법을 골자로 하는 '세 가지 화살'을 발표하였다.

대규모 양적완화를 통한 엔저 유도로 수출 경쟁력 확보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내수 수요 증가

산업 구조 개편을 통한 장기적 경제성장


2012년 말에 80 내외였던 엔/달러 환율은 아베노믹스에 힘입어 단숨에 90을 돌파하였고 100에 이르렀다.

엔화가 달러 대비 20%가 넘게 급락하면서 일본의 수출기업들은 대환영한 반면

순식간에 일본에게 무역 주도권을 빼앗기게 된 주변국들은 불만을 표출하였다.

2013년 1분기에는 세계 각국이 자국 통화를 절하하면서 '통화 전쟁'이 유발될 것이라는 긴장감 있는 뉴스도 나왔으나

아베 내각과 구로다 총재는 이에 전혀 개의치 않고

"아직 엔화가 싼 게 아니다. 엔/달러 환율이 적어도 110은 되어야 한다." 

라고 강경한 태도를 취하였다.

이 발언으로 엔화는 더욱 급락하였는데 여기에서 일본은행이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앞으로도 엔화 가격이 내릴 것이라는 전망(expectation)은

엔화를 팔아 해외 자산을 매입하는 엔캐리 트레이드를 더욱 유발하면서 일본을 빠져나가는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일본 국채를 매각하면서 국채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하였다.


2013년 5월, 0.3% 초반이었던 10년 물 금리가 짧은 시간만에 1%를 넘게 되었다.

1%인 국채 금리는 단순히 계산해봐도, 일본 정부가 GDP 대비 250%를 빚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에 GDP의 2.5%를 이자로 매 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세입이 10%, 세출이 20% 정도인 상황에서 무려 2.5%를 이자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은 굉장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몇몇 헤지펀드로부터 일본의 경제가 침몰할 것이라는 주장이 터져 나왔다. 헤지펀드는 딱 한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절대로 뉴스를 스스로 만들지 않는다. 그 한 가지 예외는, 전투 준비가 다 된 이후에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다.


3. Bank of Japan vs. Hedge Funds

일본 국채 금리가 1%를 넘은 지 2~3시간 즈음 지났을 때에 니케이가 무섭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몇몇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엔/달러 환율이 150, 200에 달할 것이라는 말을 하였는데 이것은 '일본의 경제는 침몰할 것이다'는 의미였다.


치밀하게 준비된 헤지펀드들의 공격에 일본은행(BOJ)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단 하루만에 니케이가 7% 넘게 폭락하였다. 엄청난 공격이었다.


일본은행 구로다 총재는 지금까지 아베 내각이 강경한 태도를 언론에 내비치며 시장을 통제한 것과 마찬가지로,

"주가는 원래 올랐다 내렸다 하는 것이니 큰 문제가 없다"는 발언을 하였다.

하지만 정부에게는 "국채 이자율이 급등할 줄 몰랐다"라고 변명하였다.

이는 7월에 참의원 선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 자민당과, 아베의 입장에서 목숨을 걸고 막아내야 하면서 동시에 인정할 수 없는 위기인 것이었다.


일본은행은 비상체제를 시작하면서 국채를 매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한직이었던 국채 매수 담당 부서가 핫이슈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다음날부터 일본은행은 그동안 달러를 매입해온 돈으로 달러 대신 국채를 매입해 엔화가치 하락을 막으면서 헤지펀드와 전쟁을 시작하였다.

일본은행이 보유할 수 있는 국채 제한이 진작 사라진 것을 고려하면, 일본 은행의 국채 보유량이 은행 중 가장 많을 수도 있을 정도의 규모을 것이다.

예전부터 일본에 비상한 관심을 가졌던 헤지펀드들이 뉴스를 간간히 내면서 일본의 자산을 매각하며 대응했다.


니케이는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높은 주식과 우량주들을 필두로 하여 급락하였고

외국인 투자비율을 근거로 한 long-short 펀드(같은 산업군에서 매수와 공매도를 이용해 beta를 0에 가깝게 줄이고 alpha만을 추구하는 펀드)들은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


일본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 국채 가격이 급락한다는 것으로써, 이미 보유하고 있던 대형은행들과 보험, 연금 등의 기관투자자들에게 커다란 손해를 입힌다.

기관투자자들은 항상 보유하고 있는 자산의 위험성을 Value at Risk(VaR) 방법으로 측정한다.

VaR은 변동성을 기초로 하여 위기가 터졌을 때 어느 정도의 피해가 생길지를 계산하는 것이다.

여기에 사용되는 변동성은 풋옵션에서의 내재변동성(implied volatility)인데 풋옵션은 쉽게 이야기하면 보험금이다.


사람들이 위기를 느끼면 보험료는 늘어나고, 보험료가 늘어나면 위험이 크게 계산되고, 위험이 커지면 보험수요가 다시 늘어나는 악순환의 고리가 생긴다.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은 는 이를 막기 위해, 일본 국채와 풋옵션 가격을 함께 관리하겠다는 언급을 하였다.

대형은행들에게 국채를 매도는커녕 매입하라는 압력을 행사하면서 저리에 자금을 빌려주었다. 동시에 어떤 방법(?)으로 풋옵션 가격을 낮춰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일본의 기관투자자들은 위험해진 국채를 풋옵션으로 헤징을 하면서 해외자산을 매각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뉴스에도 나왔던 것이고, 당연히 풋옵션 가격의 상승을 야기하는 것이 당연하다.


일본은행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풋옵션 가격을 관리하였을까?

설마 정부가 비대칭 파생상품의 포지션을 가져간 것은 아니겠지?


4. Kamikaze

일본은행이 달러 매수를 멈추면서 외환시장에서 엔화를 매도하며 달러를 매수하는 큰 손이 사라졌고

이는 즉시 시장에 엔화 약세가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냈다.

실질적으로 아베노믹스의 가장 강력한 화살, 엔저 정책이 철회되었다는 뜻이었다.


환차익을 노리고 이뤄졌던 대규모의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다시 환차익이나 유동성 확보를 노리고 청산되었다.

104에 달했던 엔/달러 환율은 순식간에 94까지 떨어졌다. 엄청난 엔고의 바람이 불었다.


결국 엄청난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유입되면서 국채금리는 0.8% 대로 하락하였으며

일본은 다시 안정을 찾았다.

엔화 약세에 베팅하였던 헤지펀드들은 환차손으로만 8%에 이르는 손해를 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 가지 전략이나 레버리지를 감안하면 사라진 펀드들도 꽤 있을 것 같다.


공격을 감행한 헤지펀드들은 일본은행을 이길 자신이 있었겠지만

엄청난 규모의 엔캐리 트레이드 앞에서, 헤지펀드는 고작 미미한 규모일 병정개미 들일뿐이었다.

재미있는 건 공격에 합류하지 않은 유명 헤지펀드들은 이미 이렇게 엔캐리 트레이드에 밟혀 죽게 될 결과를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일본에 생기는 금융위기는 일본 기관투자자들의 유동성 확보로 이어져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을 야기하고

이는 다시 엔고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을 뿐이다.

일본은행이 어마어마한 양의 엔화를 찍어서 국채를 사더라도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으로 충분히 해결이 될 수 있는 일본 특유의 경제시스템이 아직 견고함을 증명해 낸 것이다.


5. 다시 원점

일본의 고질적인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부가가치세(VAT) 인상이다.

부가가치세를 인상하려고 한 내각이 엄청난 국민의 반대에 부딪혀 선거에서 참패했던 기록들로 인해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일본에게는 적인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다.

참의원 선거가 끝나고 나서 아베 내각이 어떤 정책을 펼지도 궁금하지만 그것보다 더 궁금한 건

엔캐리 트레이드는 언제까지고 일본 정부의 파산을 막는 방향으로 불어줄까?


헤지펀드와 함께 세계의 금융을 교란시키는 주범으로 꼽히는 엔캐리 트레이드는

일본이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상 늘어나는 통화량에 비례해 점점 규모가 커질 것이고

다른 나라보다도 일본 실물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 규모가 커질수록 일본 스스로의 경제를 교란하는 힘이 더 커질 것이고

변동성이 장기적으로 계속 증가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일본에 재정위기가 온다면, 외부에서의 공격이 아니라

스스로가 만들어낸 거대한 방어체계에 의해서가 아닐까?


한편 버냉키는 양적완화 종료를 시사하였으며 중국의 리커창도 금리를 올리고 있어

현재 2.5% 정도인 미국 10년 국채금리가 2016년에 4%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세계적으로 금리가 상승추세가 지속된다면 일본 금리도 계속 상승 압력을 받을 것이다.


2013년 7월 15일에 작성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금융 기사 읽기 세 번째:파생상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