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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냥 Oct 08. 2017

순간의 모임

5월의 목요일 : 기억



05.04.


오랫동안 살던 집을 떠날 예정이다. 오늘은 오랜 기억을 담고 있는 '추억의 상자'를 정리하기로 했다. 소곤소곤 알콩달콩 마음이 오고 간 편지들을 다시 펼쳐본다. 정리의 목적은 버리기 위함이었는데, 하나하나 펼쳐보고 있노라니 쓰레기통으로 버려지는 종이는 별로 없었다. 대신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라는 의문이 드는 관계의 흔적들은 방바닥을 가득 채웠고, 방 안의 공기는 밍밍한 맛이었다. 그날의 기억은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되어 여기에 있는데, 그 날 마음을 주었던 너와 그 마음을 받았던 나는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미 끝난 관계라 불리는 우리를 나는 끝내 부르고 말았다.


잘 지내냐고, 별일 없냐고.




05.11.


일상적인 시간 속 특별한 순간들의 모임.




05.18.


누군가를 좋아하면 시간은 둘로 나뉜다. 함께 있는 시간과 그리고 함께 있던 시간을 떠올리는 시간.

- 은희경, '소년을 위로해줘' 中


떠올리려 할수록, 너와 같이 있던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 분명 너와 같이 있었는데.




05.23.


1.

지난 시간 우리가 함께 있던 평범한 기억이 무던히 당신들을 좋아할 수 있게 했어요. 겉으론 무뚝뚝해도 마음은 따뜻한 당신들의 마음이 보였고, 믿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안녕을 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덤덤히 마주하고 있었지만, 나는 아쉬운 마음에 손을 한 번 더 흔들고 한 번 더 불러보았어요.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나와 비슷한 감성을 가진 동생을 만났어요. 울컥하는 마음을 애써 덤덤히 이야기했어요. 그 마음을 보았는지 동생은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좋았던 날들과 기쁘게 안녕할 수 있는 것, 좋았던 기억들로만 남겨 둘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 아니냐고. 언제든 웃으며 꺼내볼 수 있는 기억을 갖게 된 것을 든든히 여기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아쉽고 슬퍼서 늘어지기만 했던 나의 '우리의 끝'은 그제야 마침표를 찍는 것 같았어요. 참 좋은 날들이었어요, 우리가 함께 할 수 있어서.


2.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
아직까지 잠들지 못했나요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
아직 나는 잘 모르겠어요

- 브로콜리너마저,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 가사 中


기억이 기대를 만든다.



월간 4X5 <다섯 개의 단어, 스무 번의 시>는 한 달 동안 다섯 개의 단어, 각 단어 당 네 번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동일한 대상에 대한 짧고 주기적인 생각, 무질서한 개인의 감정과 사유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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