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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윤맘 Jul 25. 2022

모기기피제를 냉장고 위에 올려뒀다


조용하다. 14개월 아들이 조용하다는 건, 불길한 징조이기도 하다. 하던 설거지를 내려놓고

 "또똥아 뭐하니"라며 둘를 찾으러 다녔다. 요놈 여기있었네 하는 순간, 눈에 들어온 모기기피제.


뚜껑은 열려있고 모기약 냄새가 진동을 한다.

"어머! 야! 너 이거 먹었어? 어머 어떡해!"라며 아이가 들고 있던 모기기피제를 빼앗고, 아이를 안았다.


아이 입에서 나는 모기약 냄새. 어머어머 어떡해. 먹었나봐라며 아이를 데리고 주방으로 가서 입을 씻겼다. 아이는 영문도 모른채 엄마가 급하게 입을 닦자 울고 불고 난리. 그런 후 바로 물을 줬다. 물을 조금 먹고 말길래 아이가 좋아하는 쥬스와 우유를 연달아 일단 먹였다.


이제야 눈에 들어온 모기약. 이걸 정말 먹은건지, 먹었다면 얼마나 먹은건지. 아니 이걸 먹어도 되는건지 등등 갑자기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제품에 쓰여진 문구를 보니, 먹었을 경우 곧바로 의사에게 진료를 받으십시오. 지체없이 아이를 데리고 근처 소아과로 갔다. 가는내내 뿌리는 형태이니 많이 먹진 않았을거야 뭐 뿌리는 부분만 좀 빨아먹은거겠지 라고 안심이 되다가도.. 이건 해충을 죽이는 액체인데 어쩌지. 소량이라도 문제가 되는건 아닐까 위세척을 해야하는걸까 같은 걱정이 걱정이 함박눈이 오는 날 굴리는 눈덩이처럼 자꾸만 불어났다.


아이는 이유도 모른채 엄마가 계속 채근하고, 집에서 입던 나시티에 바지만 입혀서 신발도 신기지 않은 채로 차에 태우고 어디론가 향하는 게 싫었는지 징징거리며 울기만 했다.


병원에 도착해서는 계속 인터넷을 검색했다. 모기약 먹은 경우, 뿌리는모기약을 먹은 것 같아요 등등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던 엄마들의 글이 몇개 보였고 많이 먹은 게 아니라면 괜찮을거라는 댓글과 당장 병원에 가보라는 댓글이 보였다.


이윽고 "000님 들어오세요"라는 말에 아이를 안고 긴장된 마음으로 진료실로 들어갔다. 나는 의사에게 아이가 먹은 모기기피제를 보여주고, 이걸 14개월 아기가 방금 먹었다며 얼마나 먹은지는 모르겠지만 입안에서 모기약 냄새가 났고 모기기피제 주변으로 액체가 묻어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의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일단 모기기피제에 쓰여진 성분을 유심히 보았다. 청진기로 아이의 숨소리를 듣고 입안을 보았다. 불안한 나는 "괜찮을까요?"라고 물었다.


 의사는 "흐음. 이게 뿌리는 형태이니 많이 먹지는 않았을테고 조금 먹었을 거 같긴한데 많이 먹었다면 큰병원가서 피 검사하고 위세척을 해야하지요. 그러지 않고 조금 먹으면 이 성분이 입안으로 들어가서 기관지 등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으니 기침을 할 수도 있겠네요"라고 말했다.


나도 많이 먹지는 않았을거라 생각했지만 의사의 말로 들으니 그 부분에서 일단 안심이 됐다. 기관지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말에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긴장된 마음이 놓였다.

그런 후에야 우리 둘째 얼굴이 보였다. 아이는 졸린 표정으로 나를 물끄럼히 보고 있었다. 모기기피제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본 순간부터 "그걸 왜 먹었어! 아니 그 뚜껑을 어떻게 연거야! 왜 맨날 이렇게 사고를 치는거니"라며 지금까지 아이를 혼내기만 했던 내 모습이 아이의 눈동자를 통해 보였다.


"엄마가 미안해, 이런 거 가 못 만지게 잘 뒀어야 하는데 엄마 잘못이야. 엄마가 잘 챙겼어야 하는데., 엄마가 미안해 아프지마 진짜 엄마가 미안해"라고 말하는데 눈물이 났다.


정말 모든 건 내 잘못이다. 한참 호기심 많고 모든 것이 입으로 들어가는 14개월 아이를 혼자 놀게 하고, 아이가 만질 수 있는 곳에 모기기피제를 두고, 모기기피제가 거기 있는 걸 알면서도 치우지 못한 내 잘못이다. 그런데도 나는 아이를 혼내고 아이를 책망했다. 왜 이리 사고를 치는거냐며 아이의 호기심 많은 성향에 책임을 전가했다.


사실 그동안 둘째가 가진 엄청난 활동력과 에너지 등으로 많이 지쳐 있었다. 아들이라 그런건지, 그렇게 태어난건지 매일 매일 다치고 부딪치고 넘어지는 아이를 보며 학을 떼기도 하고 이해를 하지 못하기도 하고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기도 했다.


생각해보며 아이가 커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인데 첫째 딸과 다르다는 이유로, 주변에서 모두 인정하는 장난꾸러기라는 이유로, 우리 둘째의 성향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국엔 내가,

엄마인 내가,

보호자이자 양육자인 내가,

세심하지 못했고

살피지 못했고

주의하지 못해서


아이가 다치고 넘어지고 부딪힌건데..


집으로 가는 차안에서도

집에 도착해서도

첫째를 데릴러 가는 도중에도


마음이 불편하고 미안하고 속상하고

부끄러웠다. 다행히 우리 아이는 기침도 하지 않고 토를 하거나 평소와 다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다행인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동시에 반성했다.


아이 손이 닿을 거리, 위치, 장소에 위험한 물건은 모두모두 치운다. 아이는 잘못이 없다. 다 모두 엄마의 잘못이다.


그러면서 병원에 가지고 가느라 가방에 들어있던 문제의 그 모기기피제를 냉장고 위로 올려버렸다. 우리집에서 가장 높이 있는 곳에.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22. 7. 21

그나저나 아이 구강기는 언제 끝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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