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를 정제하는 것
너는 무슨 일을 하니? 타인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일을 합니다.
저는 제 일을 이렇게 짤막하게 표현하곤 합니다. 저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업무를 해오고 있습니다. 흔히들 아시는 언론홍보부터 사실 공중과의 관계와 소통이 필요한 모든 업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 목적은 우리회사와 구성원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좋은 스토리와 시행착오, 실패를 다루고 진정성을 기록하면서 저희 회사를 브랜딩 하고 있어요.
저는 이 업을 하면서 ‘나’를 이야기한 적이 없었어요. 어디에 나가도, 무슨 글을 써도 항상 제가 몸 담고 있는 회사와 오너, 회사의 일과 가치만을 이야기해왔습니다. 이렇게 동일시해야 하는 삶을 살다 보니,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했고, 타인의 시선을 느껴야 했고, 타인의 생각에 공감해야 했고, 타인의 의중을 파악해야 했습니다. 노력하면서 조직에 생존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제’라는 덕목을 체득할 수 있었습니다. 공감하고 배려하고자 노력하면서 내뱉는 말을 정제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평소 장난도 많이 치고 욕도 많이 합니다. 아슬아슬한 이야기는 더 많이 하고요. 다만, 저는 남는 ‘글’과 남는 ‘의견’에 대해서는 최대한 정제를 합니다. 습관이 되다 보니, 저를 보는 사람들은 제가 말을 어렵게 포장하고, 수식하고, ‘척’하는 것처럼 느끼기도 해요.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 학습하며 살아와서 애석할 때도 많습니다.
저는 지금보다 좀 더 ‘정제’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일을 배웠던 것 같아요. 메신저 혹은 슬랙과 같은 상호작용 툴의 사용 빈도가 지금처럼 높지 않았습니다. 오직 ‘이메일’이 주요 채널이었어요. 이메일의 단점은 수신과 참조, 숨은 참조에 수많은 조직원과 결정권자, 이해관계자들이 들어있어서 ‘보내기’ 버튼을 누르기가 너무 망설여지는 것이었어요. 일단 ‘이메일’은 한번 발송하면 주워담을 수가 없고요. 잘못된 내용을 전달했다면 후에 다시 메일을 보내서 잘못을 정중히 바로잡던가, 아니면 그냥 잘못되는 수 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감정적으로 무엇인가를 표출했다면 누군가 이메일을 지우기 전까지 계속 후회로 남는다는 거였어요. 그렇게 이메일로 소통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주로 기자들과 많은 이메일, 전화를 나누었기에, 항상 응대 서비스의 마인드를 가지고 무진장 정중하게 이야기를 적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제가 형식을 배우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배운 것은 공감-배려를 위해 노력하는 소통 방식을 배운 것이었어요. 그 결과물이 ‘정제하는 습관’이 된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슬랙을 싫어합니다.
지금은 정제하기 너무나 어려운 환경인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슬랙’이라는 툴을 활용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슬랙이 좋다, 나쁘다, 편리하다, 불편하다의 관점이 아니고요. 기본적으로 슬랙에서는 ‘정제’할 필요와 이유가 반감되는 것은 확실한 것 같아요. 먼저, 슬랙은 자신이 보낸 메시지를 “(Edited)” 할 수 있어요. 자기가 했던 말을 수정하는 것인데요. 그러다 보니 적어 놓고 감정에 따라 수정하는 경우가 다반사에요. 오타를 수정하는게 아니라 감정을 주워담는 경우가 더 많아요. 이것 때문에 많이 반성하고 지냅니다.
그리고, 슬랙은 “회람하고 회신한다”는 갖춰진 느낌이 들지 않아요. 마치 댓글을 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다 보니 조금은 더 깊이 있는 고민을 하지 않고요. 표면적인 내용을 그저 남기는데 급급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남는 것보다는 지나쳐가는 느낌이 강해요. 물론 슬랙방이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이메일의 쓰레드만큼 중요한 포인트들이 농축되기보다는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혼재될 공산이 큰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난독증’을 양산하는 것 같아요. 최소한 상대방이 남긴 모든 메시지를 읽은 후에 피드백을 펼쳐야 하고, 모든 히스토리를 최대한 이해한 후 의견을 남겨야 하는데, 슬랙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상대방의 이야기를 다 읽지 않아요. 다 읽지 않으니 공감할 수 없고요. 금새 잊어버립니다. 이건 개인의 자세 문제일 수도 있고요. 이메일도 마찬가지일 수 있지만, 한가지 다른 점은 이메일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다 읽지 않고는 회신하기 어렵다는 것이에요. 두고두고 실수로 남을 수 있고, 여러 수신-참조자에게 번거로움을 줄 수도 있어요. 적어도 슬랙보다는 회신할 때 더 무게감을 느낍니다. 항상 정중해야 하고요.
다만, 슬랙은 장점이 더 많습니다. 빠르게 소통할 수 있고요. 속도감 있게 여러 사람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고요. 열린 공간이고 빠른 공간임은 확실합니다. 더 투명하고 솔직한 공간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큰 채널입니다.
더 정제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가끔 막말하고 경솔하게 내뱉는 것이 ‘극단적 솔직함 & 투명함’으로 격상되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어느새 슬랙에서의 무례함은 날카로움으로, 경솔한 의견은 솔직함과 순수함으로 변질되는 것 같아요. 극단적 솔직함과 예의가 없는 것은 절대 같지 않아요.
의견을 정제하지 않는 것은 꾸밈없이 솔직한 것이 아니라,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것이고 공감하고자 노력하지 않는 것이에요. 말과 다르게 글은 표정이 없고, 볼륨이 없어요. 무조건 건조하기 때문에 본의와 다르게 오해를 불러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예를 들어, “무슨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하네요?”라는 문장은 진짜 궁금해서 일수도 있지만, 제 눈에는 싸우자는 것으로 보여요. 사실 무엇인가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며 살짝 나무라는 톤의 문장이겠지요. “향후 방향도 조금 더 상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는 어떨까요.
무엇인가를 비판하고자 마음 먹더라도 ‘정제’할 수 있습니다. 최대한 상대방의 의견을 수렴했다는 표시만 하더라도 정제의 반은 성공이지요. 실제, 상대방의 의견을 듣는 것이 배려의 시작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지금부터 더 ‘정제’하려고 합니다. 깊이 고민한 흔적을 남기고, 최대한 진정성과 겸손함을 남기고, 상대방의 의견을 끝까지 읽고 모두 경청했다는 증거를 남기려고 합니다. 속도가 중요하고 효율이 중요한 시점인만큼, 따로 만나서 설명하거나 해명하는데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될만큼! 더욱 공감하고 배려하고자 합니다.
즉, 더 ‘정제’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