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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somei Jul 12. 2021

#5

휴직일기; 80%와 20% 사이의 경계에 가보고 싶을 뿐


두 달을 쉬고 결과적으로, 생산적인 무언가 남은 것은 없었다. 내 두 손에는 점점 비어 버린 통장 잔고와 같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런 느낌이 싫다. 무력감, 공허함. 그래도 편안함이 생겼다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나는 여전히 내가 예민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에 자신이 매우 예민한 사람인지 평가해보는 항목이 나온다. 나는 총 28항목 중 16개에 해당하였다. 예전 같으면 20개는 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16개 정도면 나름 괜찮은 수치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중에 언젠가는 나에게 해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한 가지 분명한 항목이 있다. 다른 항목들은 그럴 때도 있고 안 그럴 때도 있는데, 이 항목은 유독 오래도록 나를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    문단속, 가스 불, 지갑이 제대로 있는지 여부를 여러 번 확인한다


겪어본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똑같지는 않겠지만 이건 습관처럼 자리 잡아 사람을 너무도 피곤하게 만든다. 집 현관을 나와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가 오는 동안에 다시 문이 잘 닫혔는지 확인한다. 엘리베이터가 오면 어쩔 수 없이 타는 느낌이다. 집을 나온 목적이 있는데도 어쩔 수 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려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올라가서 확인한 적도 부지 부수다. 그리고 가방 속에 지갑은 넣었는지 핸드폰은 넣었는지 또 확인하고 확인한다. 그나마 우리 집은 가스레인지가 아니라 전기를 사용하는 인덕션이라 불을 껐는지 확인하지 않아도 되었다. 가스 불까지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아마 나는 밖에서 종일 안절부절못했을 것 같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불안정한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분명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고, 친구들도 제법 많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사실 무엇 때문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정확히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알 수 없는 이유들이 있는 것 같다.

 

예민하다는 것은 외부 자극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기질이나 성격을 말합니다. 이를테면 조그만 소리에도 잠 못 들거나 상대방의 말이 약간이라도 거슬리면 화를 내는 것이죠. 앞서 이야기했듯이, 에런 박사는 ‘매우 예민한 사람Highly Sensitive Person’이라는 개념을 정립했고 인구의 15~20퍼센트가 이런 기질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p.76)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 것은 피곤한 일입니다. 그러나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은 더욱더 피곤한 일입니다. (p.222)


인구의 20%나 나 같은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생각보다 높은 수치에 놀랍고 생각만 해도 피곤해진다. 그들의 피곤함을 알기 때문에 80%의 평온함보다 20%의 예민함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그래도 알베르 카뮈의 말처럼 20%에 속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지는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 80%와 20% 사이의 경계에 가보고 싶다.


* 전홍진 지음,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 글항아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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