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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욘스 Oct 09. 2022

10년 넘게 마음만 먹었던
국토대장정

욘스 국토대장정 이야기 01



국토대장정을 꿈꾸는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나에게도 국토대장정은 로망이었다. 



중학생 때쯤이었나, 뜨거운 태양 아래 구슬땀을 흘려가며 무리 지어 도로 위를 걷는 청춘들의 모습을 티브이로 보며 국토대장정을 알게 되었고 "와! 나도 나중에 대학생이 되면 꼭 해야지! 멋있다!"라고 생각했었다.

육체적 한계와 수많은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인내와 끈기를 놓지 않으며, 동료들과 함께 서로 어깨를 기대며 우리나라 국토를 직접 두 발로 완주하는 기쁨을 맛보는 것- 이 얼마나 청춘 청춘 하며 열정 열정 한 행사인가... 라며 중학생이던 나는 국토대장정에 대한 환상을 가졌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정작 대학생이 되고 나니 

“국토대장정은 무슨… 군대 가면 많이 걸을 건데…ㅎㅎ” 라며 기회를 흘려 넘겼다. 


실제로 군대에 가서 육체적 한계와 수많은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인내와 끈기를 놓지 않으며, 동료들과 함께 서로 어깨를 기대며 군부대를 직접 두 발로 기어 나와 전역하는 기쁨을 맛보고야 말았으니... 청춘 청춘 하며 열정 열정 한 행사(장르는 다르지만)를 치르긴 했던 것이다.

전역 후에도 국토대장정을 해볼까 싶어 찾아봤더니 참가하려면 무려 5~60만 원의 비용 지불해야 한다는 걸 보고 ‘완전 강도네!!’라고 생각했던 나는, 또 그렇다고 혼자 도전할 의지는 없었기에 그 후로 몇 년 간 국토대장정은 찾아보지 않았다. 내 의지는 딱 그 정도였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한 후 사회생활을 하다 이십 대의 끝자락에 섰던 어느 봄날. 봄 볕이, 봄바람이 내 코를 간지럽혔다. 평소에도 슬렁슬렁 산책하는 걸 좋아하던 나는 날씨가 좋은데 회사에 콕 박혀 있자니 너무 답답했고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걷고 싶었다.


'회사를 탈출하고 싶어! 퇴사하고 국토대장정 하고 싶어!'


수년 만에 내 입에서 다시 튀어나온 국토대장정이었다. 퇴사 욕구가 강하게 들던 때였으나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있었기에 퇴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아쉬운 대로 퇴근 후에 회사에서 집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국토대장정이면 이 정도는 하겠지 생각하고 걸어본 20km는 너무 힘들어서 "와 이것도 이렇게 힘든데 국토대장정은 대체 어떻게 하는 거지?"란 생각이 들었고 거기에 더해 단체 국토대장정 유 경험자인 애인 님께서 가라사대 하루에 30km 이상 걷는 날도 있었다고 했기에, 그대로 국토 뽐은 고이고이 꿀잠에 들게 한 후 당해의 봄을 넘길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시 해가 넘어가고 봄이 왔다. 나는 앞자리 수가 바뀌어 삼십 대에 진입하게 되었고 스트레스성 위염을 앓았다. 한의원에서는 맥이 거의 안 잡힌다고, 너무  약하다고 했다.

"
으윽 빌어먹을, 이건 다 회사 때문일 거야…. 

회사만 그만둘 수 있다면 하루 종일이라도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일 년간 봉인해 두었던 국토 뽐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하루에 25km를 걷더라도 나는 가야겠어, 이 봄과 함께 나는 반드시 떠날 거야…!"

이 글을 읽는 독자라면 아 이 놈 이렇게 떠났구나 생각하겠지만 난 결국 떠나지 못했다. 이렇게 뒤도 없이 일을 그만두기에는 이제 나이가 많아졌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딱 일 년만... 일 년만 더 하고 떠나기로 했다. 그렇게 다시 봄이 저물어갔다.


내가 회사에 노동시간을 바치는 동안 누군가는 또 국토대장정을 떠났고, 그들을 응원했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노동을 계속 바치고 있을 동안 그들은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왔다. 그들의 여정은 불과 보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부러웠다. 그들의 반짝임이 부러웠다. 그들의 성취가 부러웠다. 내 인생을 돈 나오는 화로에 땔깜으로 처넣는 것 이외에 다른 의미 있는 활동, 진취적인 인생을 살고 있긴 한 건가 싶었다. 자존감이 밑바닥까지 하염없이 떨어졌다. 커리어도 통장 잔고도 취미도 능력도,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가지려는 의지도 없는 사람이었다.


곧 해가 또 지났다. 금방 괜찮아지겠지 생각했던 몸은 계속 안 좋았고 체중은 자꾸 불어났으며 피부도 뒤집혀 이런 난리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머리까지 가을철 낙엽, 데친 부추 마냥 힘없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최악이었다. 


이렇게 내 청춘은 다 끝났다는 생각이 나를 휘감았다. 컨디션도 그렇지만 이 업을 계속할 것인가, 이 회사를 계속 다닐 것인가 등 커리어에 대한 고민과 인생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결국 봄이 오기 전에, 퇴사를 했다. 


"회사라는 게 그런 것 같다. 

사람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지내는.

딱히 그 사람이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닌. 

있을 땐 잘 지낸다. 사라져도 잠시뿐, 곧 마치 원래 없던 듯 잘 지낸다.

내가 그래 왔고, 다른 이들 또한 내가 없다 한들 그러할 것이다.

그렇다면 회사에서 나의 존재와 시간은,

돈을 번다는 것 외에 무슨 의미가 있던 것이었을까.”


-퇴사 전 메모-



나는 이제야, 아니 이제라도 국토대장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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