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용의 콜 앤 리스폰스 1화
<콜 앤 리스폰스>는 재즈에서 연주자들이 서로의 프레이즈에 반응하며 연주를 주고받는 ‘콜 앤 리스폰스’라는 개념에서 출발한 연재입니다. 재즈를 중심에 두고, 각자의 방식으로 공간을 운영하거나 삶을 꾸리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품고 있는 재즈에 대한 생각을 듣습니다. 공간과 삶 안에 재즈가 어떤 결로 스며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재즈를 보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즐길 수 있을지 탐색합니다. 이 주고받음이 같은 시대에 재즈를 듣는 이들과 공명할 수 있는 하나의 프레이즈가 되길 바랍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홍대입구역 인근에 위치한 카페 ‘콩트’의 주인장인 윤현길 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재즈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시기를 기다렸다가 자연스럽게 듣길 바란다는 그의 마음처럼, 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재즈 역시 언제든 사람들에게 다가갈 준비가 되어있는 좋은 음악들이었습니다.
콩트라는 공간의 이름은 어떻게 정하게 되셨고, 이 공간은 처음에 어떤 구상으로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가게 이름은 2021년 즈음 방영됐던 일본 드라마 <콩트가 시작된다>에서 가져왔어요. 그 드라마를 보고 개인적으로 울림이 있어서 고민 끝에 그렇게 정하게 됐습니다. 공간 자체는, 제가 그전에 연남동에서 자취를 했었는데 그 자취방의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진 느낌이에요. 그때 쓰던 가구나 오디오, 음반, 벽에 걸려 있던 포스터까지 모아 두었던 것들을 그대로 옮겨왔거든요. 그래서인지 손님들이 위화감이 없고 인위적이지 않다, 자연스럽다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요즘 와서 참 잘 선택했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요즘 카페라고 하면 자본이 많이 들어가고 굉장히 잘 짜인 공간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콩트라는 공간은 돈을 많이 들였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느낌이 더 큰 것 같아요. 아까 말씀해 주신 자취방의 물건들이 이 공간을 해치지 않고 오히려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느낌이랄까요. 그런데 이걸 개인 공간이 아니라 상업 공간으로까지 가져오는 건 또 다른 결심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커피 일을 올해로 거의 10년째 하고 있는데요, 계속 제 가게를 하는 걸 꿈꿔왔어요. 다만 시기를 계속 보고 있었죠. 전에 일하던 ‘커피가게 동경’에서도 매일 “언제쯤 내 가게를 할 수 있을까” 그 고민을 하면서 일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시기도 맞고, 기회도 오고 해서 부랴부랴 준비를 하게 됐고 지금 이렇게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에 일하시던 공간도 음악의 감도가 높은 곳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곳에서 받은 영향이나 함께 일하시던 분들과의 상호작용이 지금의 ‘콩트’를 구상하는 데 어떤 식으로 작용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원래 음악 듣는 걸 좋아하긴 했어요. 밴드 음악을 주로 들었고요. 사실 그때만 해도 재즈는 문외한이었는데 4년 정도 일을 하면서 계속 보고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디오도 사고 음반도 모으게 되고, 정말 스며들듯이 빠져든 것 같아요.
커피와 음악은 정말 떼려야 뗄 수 없는 요소죠. 그걸 남들과 똑같이 쓰느냐, 아니면 자기 취향으로 풀어내느냐는 완전히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제가 느끼기엔 이 공간의 취향도 완성형이라기보다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느낌이거든요. 요즘은 어떤 음악을 주로 듣고 어떤 음반들을 모으고 있나요.
뮤지션 중심으로 디깅하는 경우도 많고요. 특히 블루노트에서 루디 반 겔더가 녹음한 음반들을 많이 모읍니다. 개인적으로 듣기 편했고, 원래 밴드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겹치는 지점도 있었던 것 같아요. 최근에는 허비 행콕 초기 앨범, 재키 맥린, 존 콜트레인, 특히 호레이스 실버를 가장 좋아합니다.
아까 인터뷰 전에도 허비 행콕의 [Maiden Voyage]를 함께 들었죠. 블루노트는 한국이나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많은 애호가를 가진 레이블이고, 루디 반 겔더 역시 재즈 레코딩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죠. 그 매력을 느낀 결정적인 지점이 있다면요.
호레이스 실버의 [Doin' The Thing] 중 B 사이드 두 번째 트랙 ‘The Gringo'의 도입부를 듣고 밴드 음악의 요소가 많이 들어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재즈에 귀가 열렸고 본격적으로 디깅을 시작하게 됐죠. 루디 반 겔더의 녹음은 따뜻하다기보다는 금속적인 질감이 살아 있고, 드럼 타격감이나 베이스 줄 튕기는 소리를 굉장히 또렷하게 살려줘요. 그런 부분이 제게 와닿았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역시...
호레이스 실버입니다. 처음 산 음반도 그분의 음반이었고, 지금도 계속 모으고 있어요. 작업물을 전부 모아보는 게 제 목표이기도 합니다.
콩트가 오픈한 지 1년 정도 됐죠. 처음 기대했던 건 어떤 모습이었고, 또 지금 이 공간이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보시나요.
사실 처음에는 조금 더 넓은 공간을 원했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맞는 자리를 찾다 보니 이렇게 작은 공간에서 시작하게 됐죠. 그래서 계획도 많이 수정됐고요. 결과적으로는 자취방을 옮겨 놓은 듯한 아늑한 공간, 그리고 제 개인 작업실처럼 쓸 수 있는 공간을 목표로 하게 됐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그냥 다 가져다 놓고, 손님들과 그걸 나누는 공간. 책, 음반, 소품을 보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되게 사적인 취향을 공유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기대했던 대로 그런 부분에서 공감을 느끼시는 분들이 찾아와 주시기도 하고요. 앞으로도 지금이랑 비슷하게 천천히 가지만 좀 더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으면 좋겠고, 알아봐 주셨으면 합니다.
잔이나 집기 같은 디테일에서도 감각이 느껴져요. 비싼 물건보다 감각이 묻어나는 것들은 금액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얘기하곤 하죠.
전에 일하던 ’커피 가게 동경‘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그곳도 오디오로 음악을 틀고, 빈티지 찻잔에 커피를 내주던 곳이었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잔에도 관심이 생겼고, 집에서도 하나둘 모으다 보니 지금처럼 됐습니다. 노리다케 같은 가성비 좋은 브랜드를 주로 당근마켓에서 구입하고, 정말 가지고 싶은 건 직구로 사기도 하고요.
만약 좋아하는 앨범이 있고, 사고 싶은 찻잔이 있어요. 하나만 고른다면요.
...진짜 어려운데요. 그래도 음반을 고를 것 같아요. (웃음)
카페에서 재즈를 트는 문화도 요즘 많이 바뀌고 있죠. 그 흐름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시나요.
굉장히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들어 많은 카페에서 음악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고요. 또 재즈라는 음악이 아닌 문화가 어느 정도 대중화가 되고 있잖아요. 이 부근에도 재즈를 다루는 공간들이 많이 생기기도 했고요. 그래서 그런 자연스러운 선택과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게 아닌가 생각을 해요. 또 카페라는 공간은 누군가에게는 쉬는 곳이고,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잖아요. 보컬이 있는 음악은 대화와 섞이면서 오히려 불편해질 때도 있어서 저는 자연스럽게 연주곡 위주의 음악을 틀게 됐습니다.
공간을 운영하면서 음악을 트는 게 진정한 의미의 DJ가 아닌가 싶어요. 고려해야 할 많은 것들이 있죠.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재생하는 음악들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요즘같이 겨울이거나 눈, 비가 오면 피아노 위주의 잔잔한 선율의 곡을 주로 틀고, 해가 떠 있을 때에는 하드밥같이 빠르고 경쾌한 음악을 많이 재생하고요. 뭔가를 계획하거나 셋 리스트를 미리 짜는 건 아니고요. 지금 나오고 있는 음악의 BPM에 맞게 다음 음악을 고려하기는 해요.
커피를 10년 정도 해 오셨는데 커피에 대한 생각도 시기에 따라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그냥 파트타임으로 시작했고, 프랜차이즈에서도 일을 하곤 했었는데 그때는 정말 일로서만 받아들였어요. 빨리 퇴근하고 싶고요. (웃음)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좀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변에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됐고 그런 게 하나둘 계기가 되었고요. 그렇게 커피에 몰두하던 시기도 있었는데, 그런 시기가 지나고 나니까 커피와 손님을 함께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커피는 커피일 뿐이고 손님이 없으면 사실 아무 의미가 없는 거거든요. 그래서 결국 누군가가 찾아주고 알아줘야 빛이 나는 요소들이라서 손님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죠.
최근 아이가 태어나면서 생각도 많이 바뀌셨다고 들었어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만 쫓아가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면서 우선순위가 바뀌었고, 커피를 넘어서 가게 운영 전체를 다시 보게 됐어요. 아이 덕분에 조금 더 성숙해졌고, 제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색소포니스트 진푸름 님의 앨범 [The Real Blue] 사인 CD도 인상적이에요.
사실 국내 아티스트를 많이 알진 못하지만 진푸름 님은 예외였어요. 음반이 국내에서 다 품절이라 우연히 SNS에서 아티스트가 직접 판매하시는 걸 보고 DM으로 연락해 구매했고, 그때 사인도 함께 받게 됐습니다. ’콩트가 시작된다!‘라는 문구를 적어달라고 요청했어요. (웃음)
콩트의 주력 메뉴가 있다면요.
통계상으로는 싱글 드립 커피가 가장 많이 나가고 있고요. 그 외에는 오레그랏세라는 메뉴가 있어요. 일본의 킷사텐에서 많이 판매하는, 연유를 넣은 우유 위에 진한 드립 커피를 올려드리는 메뉴예요. 어떻게 바이럴이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걸 많이 찾아주시더라고요. 요즘 같은 계절에 방문하신다면 따뜻한 크림이 올라간 아인슈페너와 술을 좋아하신다면 아이리시 커피를 추천드리고 있어요. 커피를 못 드시거나 이미 드시고 오신 분들이 계시다면 그런 분들을 위해 애플 시나몬 티도 따뜻하게 제공해 드리고 있습니다.
올해의 테마곡을 꼽는다면.
존 콜트레인의 [A Love Supreme]입니다. 이 앨범을 선물로 받은 다음 날 아이가 태어났거든요. 그래서 저에게는 정말 특별한 음반이 됐습니다.
오디오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죠.
스피커는 JBL 4312의 상위 모델인 4412를 사용하고 있어요. 미국에서 마지막으로 생산된 JBL 스튜디오 모니터라고 알고 있습니다. 앰프는 산수이 리시버 4000번, 턴테이블은 테크닉스 SL-1200 MK2입니다. 예전에 일하던 가게 사장님께 양도받은 기계예요.
마지막으로 재즈를 듣는 문화가 앞으로 한국에서 어떤 모습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음악이라는 게 시간 예술이잖아요? 그걸 듣는 동안 다른 걸 누리는 게 어려운 예술인데, 억지로 듣기보다는 뭔가 울림을 느꼈을 때 자연스럽게 선택하셔서 즐겨주셨으면 좋겠어요. “누가 재즈를 듣네? 나도 들어야지”가 아니라 자기에게 오는 시기를 기다렸다가 자연스럽게 누렸으면 합니다. 그건 재즈뿐만 아니라 다른 음악이나 커피, 영화와 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