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종혁 Mar 15. 2019

지구멸망은 두렵지 않다

내가 뭘 할 수 있겠나

길거리의 역설


초딩 때, 지구가 망할까봐 무서웠다. 내가 사는 곳이 폭삭 망해버리면 나는 죽으니까 그게 너무 싫어서, 갑자기 야밤에 집을 뛰쳐나와 하늘을 보며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아마 초등 저학년 학생들이 읽을 수 있을 법한 지구온난화에 대한 책을 읽고는, 지구가 정말 곧 망해버릴 것 같았나 보다. 플라스틱이 몇 천년을 땅에 묻어도 썩지 않으니 지구는 플라스틱 천지가 될 것 같았고, 해수면이 미친듯이 상승해서 투발루든 맨하탄이든 우리 집이든 다 집어 삼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밤하늘을 보면서 걱정한 것은 지구의 안위가 아니었다. 그냥 내 안위. 내 조그만 생명이었다. 그냥 나도 아닌 지구가 망해버리면 나까지 그렇게 얻어걸려서 죽어버린다는 사실이 뭔가 억울했던 듯 싶다. 그럼 내가 뭘 할 수가 있어야 될텐데, 지구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 작은 나라의 초딩이 할 수 있는 일은 당연하지만 없었다. 결국 나는 망해서 아마 아수라장이 될 곳에서 살아가는 조그만 닝겐이라는 사실을, 그 당시에는 뭔가 소화하기가 힘들어서 하늘 보며 울었던 것 같다. 


사람 한 명 한 명이 아주 큰 세상의 조그만 먼지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아주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소중해지고픈,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한 소망을 접어야 하니까. 초딩 종혁이는 그게 눈물이 나올만큼 생각하기 싫은 상황이었던거지. 하지만 지금은 웃기게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다. 나의 작은 존재의 안팎에 대해. 과정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냥 먹어가는 나이와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보여줬다. 너도 잘난 건 없다고. 우린 다 같이 작다고.




난 이제 밤하늘을 보며 울지 않는다. 지구의 안위를 걱정하지도 않는다. 그래봤자 무엇을 바꿀수 있겠나. 지금 내 작은 삶 건사하기도 벅찬데, 지구의 아픔까지 내 걱정의 풀로 끌어들여야 하는가. 지구 멸망은 두렵지 않다. 어짜피 내가 뭘 한다고 해서 망할 지구가 안 망하지는 않을 터. 그래서 난 오늘도 플라스틱을 쓰고, 집 곳곳의 전기 콘센트를 모두 뽑고 잠에 들거나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오지랖이 넓었던 유년시절의 나를, 생각해보고 싶은 날은 가끔 찾아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떻게 먹고 살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