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종혁 Mar 10. 2022

좌파스러움에 대해

나의 알량한 정치적 소명

스무살 초반에 학생사회에서 일하면서, 협동조합 조합원을 하면서, 독립언론을 하면서, 집회에 따라가면서, 총장실 앞에 뻗치기하고, 노조 조합원 분들을 만나고, 정보공개청구를 주마다 하면서 느꼈던 단 한가지 생각은, “나는 좌파는 못되는 사람이다.” 라는 거였다.


나에게 좌파인 사람은 자신을 갈아내며 요지부동한 권력 혹은 혐오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다. (이런 기준으로 민주당, 문재인 정권은 “좌파 정권”이 아닌 것이다.) 집회에 나가면 트럭 위에 올라가 확성기를 들고 부르짖는 사람이 있었다. 스스로의 시간과 경력을 소모하면서 자신보다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의 면전에 대고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을 곁에서 보았다. 나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없고, 겁이 많고 능력이 달린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선두보다는 중간쯤 대오에서 찌라시 만드는데 힘썼다.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뒤집어 엎고, 세상 모든 차별  철폐하고, 분배의 불평등 해결하는게  정치적 목표는 아니었다. 그런게 목표였던 , 누나들은 너무 커다란 이야기만 해서 진짜 그런 세상이   같지 않았다. 그들은 연대,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험담도 많이 했었는데 그것 역시 견디기 쉽지 않은 지점이었다. 욕하는건 쉽지만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연대를 말하지만 연대를 만드는데 기여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내 현실적인 정치적 목표는 공동체의 사회적 안전망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거였다. 차별과 혐오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여러번 목격했다. 자신의 정체성 혹은 처지 때문에 위험에 빠지거나 자살한 친구들과 친구들의 친구들을 봤다. 국가와 사회가 약자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니,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안전망이 되어 누군가를 살리는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에서 글을 써왔고, 여러가지 관련된 의제들에 동조했다.


좌파는 항상 소수였기 때문에 박살급 변화를 일으키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살아남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 생각이고, 영광과 보상의 순간을 바라고 움직이는 사람도 있어야 운동도 되고 낙관도 되겠지만 적어도 나는 정치 권력에 대한 야망은 없는 사람이었다. 그저, 약자들이 죽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전역하고 복학하고 구직까지 하면서 탈정치에 가까운 수순을 밟았고, 내 처지는 좌파하면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것들과 멀어졌다. 오히려 사회가 볼 때는 정상성을 가진 청년에 가까워졌다. 남자이고, 서울 4년제 대졸자에다, 요즘 대우가 부쩍 좋아진 개발자라는 직업을 가진, 살만한 연봉을 받고 투자해서 집 살 궁리하는 그런 사람 쯤이겠지 싶다. 사실 정치 성향도 다 따지고보면 짬뽕이 되었을지 모른다. 나는 능력주의와 시장논리를 받아들이고, 스타트업 재직자로서는 기업의 역할과 혁신을 믿는다.


하지만 내 정치적 “소명”은 바뀌지 않았다. 예전처럼 거리로 나서고, 피켓을 들지는 않아도 내가 있는 곳에서 이것저것 해보고 있다. 계속해서 소수자 의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언쟁을 무릅쓰고 주변 사람들에게 내 정치적 의사를 밝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무엇일지 생각해보려고 노력한다.


모든 사람은 절대 소수자가 되지 않는가? 어떤 이는 완전무결해서 누군가를 쉽게 혐오해도 되는가? 당연히 아니고 누구든 소수자가 될 수 있다.


시위하고 싸우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크지 않다. 정상성의 범주 속의 사람도 거리에 나올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난리 난리 생난리를 쳐야 겨우 세상이 바뀐다. 굴종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생존할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 당연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싸우는 이들이 바꿔낸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나는 사람들을 지켜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에 동조하고, 그들을 같이 지킬 것이다. 빡센 상황에서 이민 가겠다 탈조선하겠다 툴툴대기보다는 계속 해왔던 것처럼 그저 이 땅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이게 지금 내 마음에 남은 최소한의 좌파스러움인 것 같다. 스무살 초반 때처럼 자주 여기저기 다니고 누군가와 같이 있어주지는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때 만났던 형누나들은 니가 무슨 그거 하나가지고 좌파라고 하고 다니냐며 한소리 들을지도 모르겠다.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싸웠던 우리 이웃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으로서는 더 영향력 있고 돈 많은 사람이 되어 내 정치적 소명을 실현하는 활동들을 지원하고 싶다. 선거에서는 싸워온 자들에게 투표하며 그 빚들을 갚아나가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의 표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