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종혁 Dec 12. 2018

당신이 만약 "참여"하는 대학생이라면

난!!!!하나도!!!!안슬프다!!!!

처음 학내 언론 기자가 되었을 때, 저는 나름 행복했었습니다. 기대가 컸거든요. 아 이제 열심히 해서 학교를 바꿔야지. 학생들의 편에 서서 잘못들 대량생산하는 학교를 조져야지. 하지만 현실은 미치게 어려운데 세이브도 안 되는 게임 같았습니다. 엄청 고민을 하고 낸 기사가 사실은 엄청난 실수였던 적도 있었고, 학생한테서든 학교한테서든 욕을 하도 많이 먹어서 인류의 염원씩이나 되는 생명 연장의 꿈을 차차 이뤄가는 듯 했습니다.

생명+1+1+1+1

그중에서도 역시, 무력감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아무리 죽어라 취재해도 바뀌는 것 보단 안 바뀌는게 훨씬 많았거든요. 네, 뭐 잘 바뀌진 않겠죠. 냉혹한 현실 같은거 잘 알겠는데, 주변 사람들 반응은 왜 이렇게 냉담한지. 네가 돌 던져봤자 세상이 바뀌겠냐며, 되는 것도 없는데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며 저에게 우려를 표하거나, 충고를 하거나, 특이한 사람으로 보는 사람들, 너무 많았습니다.


이 글은 제가 학생사회의 안팎에서 겪은 무기력의 기록입니다. 한번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학생회를 하거나, 학내 언론 기자거나, 학내 안팎의 이슈에 관련된 운동을 진행한다면, 여러분은 이런 말을 듣게 될지 모릅니다.


1. 가족


그래도 이러시진 않아서 감사합니다...


"찌라시 만드는 거랑 똑같네. 그러다가 군대 끌려가는거 아니냐"

외할아버지에게 제가 학교에서 언론을 한다고 설명했을 때 들은 말입니다. 그 말의 결에는 깊은 걱정이 있습니다. 1980년 광주 도청 광장에 쌓여있는 시체들을 봤던 당신이기에, 서슬 퍼런 세상에서 거대한 무언가에 저항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계시니까요. 학교 무사히 졸업하고 직장도 얻어야 할 텐데 저에게 실질적인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집단과 부닥치는 것은 전혀 도움이 안 돼 보이죠. 


제가 알아서 잘 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요즘엔 군대 그렇게 강제로 못 보네요. 이야기를 했지만 조금 빈말이었습니다. 부닥쳐야 할 때도 있었으니까요. 학생처장을 만났을 때 이런 취재 자체가 징계감이라며 협박을 당했습니다. 제 기사에 이익이 걸려있는 사람들이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정말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 싶을 때, 많았습니다. 


결국 부모님과 가족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철없는 아들이 된 것 같았죠. 가족들의 입에서 다른 말이 나오길 바랐습니다.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라. 떳떳하게 살아라. 제게 가장 소중한 분들인 만큼 저를 응원해주길 바랬고, 그렇지 않아 사실 무수하게 실망했습니다.


결국 어느 정도 거짓말을 했습니다.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서요. 이제 학교랑 싸우는 기사 안 쓴다고, 맛집 기사 쓴다고. 책 소개 한다고. 그런 말을 하면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 왜 이렇게 비밀스러운 것이 되는지 의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이게 떳떳한 것인지요. 가족들한테도 잘 못 말하겠는데 대체 누구한테 말할까 싶었습니다.


그렇게 가족들의 위로와 지지를 잃었어요. 그냥 이야기를 안 하게 되더라고요. 이제 진짜 무슨 일이라도 나면, 아무리 사랑과 관심으로 보살펴주신다 하더라도 “내 그럴줄 알았다. 좀 살살 하지” 같은 말쯤은 듣기 딱 좋겠죠. 


2 . 학교


*아닙니다.


“편집장님 비판할 거 비판 하시고, 저희는 저희 할거 해야죠.”

말해 뭐 하겠습니까. 기사 백날 써봐도 학교 잘 안 바뀝니다. 총장실 점거가 있었을 때, 본관에 붙은 대자보를 클린 캠퍼스 만든다는 명목으로 다 떼버린 학생팀에 취재를 갔습니다. 팀장이란 사람이 저런 말을 하더라고요. 저는 저 말이 “너네 시끄럽게 짖어봤자 하나도 안 먹힌다.” 쯤으로 들렸습니다. 제가 하는 일들을 하등 쓸데없는 것처럼 만들더군요.


짓밟힌 느낌이었습니다. 동시에 정말 제 힘이란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느꼈어요. 학생들이 기사에 호응해주고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바래도, 우리보다 훨씬 큰 어떤 권력은 그 말을 듣지 않아도 됩니다. 저런 태도로 잠잠해질 때까지 일관하면 되는 거죠. 학생팀 사무실을 빠져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내가 무얼 해야 저 뻔뻔한 얼굴들과 싸울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요.


물론 상처는 별로 안 받습니다. 결국 저랑 싸워야 될 사람들이 저런 말을 하는 거니까. 예상한 반응이죠. 학교가 원래부터 학생 말을 그렇게 잘 들었다면 애초에 제가 시간과 학점을 갈아 넣으면서 이 짓을 하지도 않을테니 말입니다. 더 열심히해서 최강의 빌런으로 돌아오겠다고 다짐했죠.


문제가 되는게 있다면, 학생 신분인 우리에게 학교가 가할 수 있는 권력의 철퇴겠죠. 아무리 징계가 두렵지 않고, 학생사회에 투신한 학내 정치범으로서의 훈장이라고 생각한대도 백프로 부담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저는 태생부터 쫄보라 모종의 위협들을 쿨하게 넘기는게 어려웠습니다. 결국 투사가 못 된다는게 저한테는 가장 큰 콤플렉스였던 것 같아요. 학생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신념과 배짱과 능력이 부족한 저 사이에 놓은 노답 가시밭길에서 해매며 많이 찔리고 다쳤습니다. 어디 하소연할 때도 없어 겉으로는 괜찮은 척 했지만요.  


3. 친구 


합리화 시전...
“너가 하는 거 이해 해보려고 했는데, 싫어지는게 어쩔 수가 없나봐.”

친구였던 학생회 관계자의 말이었습니다. 과 총회의 절차적인 문제를 지적한 기사가 문제였죠. 알죠. 싫은 소리 듣기 싫다는 거. 그렇지만 제가 하는 비판들에는 항상 확신이 있으니까, 당연히 미안하거나 그러진 않았습니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건 제가 싫다는 겁니다. 그것도 불가피하게요.


외로움. 이거는 그래도 제가 하는 일에서 발생하는 불편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옳고 합리적인 말 한다 해도, 저 자체가 불편해지는 걸 제가 어떻게 막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점점 외로워지더라고요. 점점 학내 다른 사람들에게, 친한 친구들에게 불편한 사람이 되는게 몸으로 느껴졌습니다. 대학 판이 진짜 좁아서, 친구를 취재 당사자로 만나는 일이 은근히 허다한데 불편한 말이라도 써내면 온갖 것들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너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제가 써낸 글 때문에 제 인간성을 의심받는 말도 들었습니다. 다른 학내 활동도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결국 아무리 친해도 까고 까이는 위치에 놓인다면 미친 듯이 잃어나가는 건 친구뿐이겠죠. 뭐.


기사 당사자들뿐이겠습니까. 그냥 다른 친구들에게도 환영 못 받을 때도 있습니다. 주로 불편하다는 이유 때문이죠. 친구들과 학교에 관해 이야기할 때, 남들보다 문제와 병폐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합니다(직업병이죠..) 그런 이야기 할 때면 가끔 1. 그런거 해서 뭐가 바뀌겠냐거나, 2. 학교 까면 뭐하냐고 넌 참 애교심이 없다거나, 3. 그냥 너랑은 불편해서(!) 이야기 듣기 싫다는 반응들과도 마주합니다. 짠. 삼종 세트 완성이죠. 이렇게 불편한 사람이 됐으니 자연히 사람들이 떠나가죠. 


사실 아쉽습니다. 그들이 저를 불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학교에서 수많은 벽에 부딪히니까요. 그들도 참여하고 관심을 가진다면 옳지 못한 일들을 더 잘 바꿀 수 있을 테니까요.


물론 학내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고 저를 응원해주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근데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들어요. 이렇게 여러모로 “불편한” 나랑 잘 지내주다니 정말 고맙다. 수많은 거절의 경험들로 말미암아 저는 이미 무기력의 한 가운데에 들어와 있는거죠. 자존감 참 부족하지만, 제가 그러더라고요.


부모가 허락한 힙합이 없듯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아마 아셨겠지만, 전 멘탈이 튼튼한 편이 아닙니다. 소심하기도 하고요. 남 눈치도 얼마나 많이 보는지... 삽시간에 제 미래가 망해버리면 어쩌나 걱정도 많이 합니다. 


하지만 학생과 시민으로써의 떳떳한 삶, 학생사회에 도움이 되는 삶에 대한 관심들이 저를 이런 “불편한” 삶으로 끌어왔습니다. 대학생활이 참 어메이징 해졌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노력하는 일 모두 잘 되고, 좋은 공동체를 단 한번에 만들 수는 없어도 제 노력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노력이 끊기면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바꿔낼 수 마음없을 테니까요.


학생사회 안에서 공동체를 바꾸기 위해 무언가를 외치고 있으시다면 무기력이라는 빌런과 지리한 싸움을 벌여야 합니다. 모두가 걱정하고, 의심하고, 심지어는 망쳐버리기까지 하는 유사지옥의 한 가운데서요. 하지만 허락 같은 거, 인정 같은 거 받을 필요 없어요. 제가 좋아하는 웹툰 <마음의 소리>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부모가 허락한 힙합은 없다" 맞아요. 엄빠 허락 없더라도, 우리의 선택은 가치가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부디. 덜 지치시고 조금은 더 행복하시길. 어제 밤에 붙인 대자보가 오늘 아침에도 잘 붙어 있길. 취재 잘 되고 글도 아주 잘 쓰셔서 죽음의 마감을 무사히 넘기시길. 대표자 선거 투표율도 잘 넘기고 학생총회에선 마이크를 통해 나오는 목소리가 더 많아지길. 기도하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