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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불 Dec 28. 2020

마일스 데이비스 : 쿨의 탄생

거인의 어깨 위에서 재즈를 바라보기

재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넘어야 하는 몇 개의 산이 있다.  우선 이리저리로 미끄러지고 내 귀에서 흘러내리는 리듬과 화성을 붙잡아야 하고, 이 낯선 구조에 적응한 다음에는 똑같은 스탠더드 넘버를 연주한 무수히 많은 음악가들의 제각기 다른 연주를 들으며 이 산이 목적지인지 저 산이 목적지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여기까지 한 고비 잘 넘었다 싶으면 우리는 더욱 큰 산을 넘어야 한다. 바로 음악가 마일스 데이비스이다.


마일스 데이비스를 생각하면, 나는 머리가 조금 복잡해진다. 확실히 마일스의 연주는 내 취향이 아니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낸 여러 앨범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그 음악을 떠올리게 되고, 다 듣고 돌아서면 또 듣고 싶어 지는 이상한 매력이 있다. 단순히 연주 하나만을 두고 보자면 동시대에는 더 잘하는 음악가가 많았는데, 마일스 개인이 아닌 밴드의 음악을 생각하면 아주 뛰어난 연주이기에 별로다, 못한다 라고 말을 할 수도 없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인지, 다른 재즈 팬의 이야기를 들어 보아도 솔로 연주자로서의 역량은 부족하지만 밴드 리더로서의 역량은 탁월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개인적인 선호야 어찌 되었든, 마일스가 현대 재즈의 전위에 서서 이뤄낸 어마어마한 업적 (그리고 그만큼이나 산더미 같은 그의 작품집)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밥의 선구자였던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의 밴드에서 연주했고, 전설적인 명반이 쏟아져 나왔던 1959년의 재즈 씬에서 [Kind of blue]와 같은 걸작을 발표했으며, 2020년 현재까지 재즈 씬에 영향을 미치는 거장이 젊은 시절 거쳐 간 관문이 되었던 그의 밴드를 생각해 보자. 과장을 조금 보태면,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과 인생은 현대 재즈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일스 데이비스 : 쿨의 탄생] 은 바로 마일스 데이비스의 인생과 재즈의 역사를 나란히 놓고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이다. 줄리어드에서 학업은 뒷전으로 하고 재즈의 세계에 뛰어들었던 젊은 마일스가, 생을 마감하는 그 날까지 모던 재즈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며 한 일과 남긴 말, 그의 발자취를 보여준다.  주변인의 증언과 역사적 자료, 그리고 마일스 대신 생을 회고하는 누군가의 목소리로 재구성된 그의 인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절대로 한 곳에 머무르지 않았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발걸음을 따라 재즈의 역사를 쫓아가면, 오만하고 최고만을 추구했으며 남들의 뒤를 따라가는 것을 절대로 견디지 못했던 고집쟁이가 그려낸 재즈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흑인이 중심이 되고, 흑인의 재능과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세계인 것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음악적 기교, 흥, 그들이 그려낼 수 있는 아득한 추상과 재능을 모두 쏟아부었던  '밥'의 시대를 지나, 마치 백인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쿨' 재즈의 역사에 남을 명반을 남기고, 빅밴드와 재즈의 조합을 통해 '감상용 재즈'를 만들어 낸 그는, 이후 재즈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하자 록 음악과 같은 일렉트릭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음악에 도입했다. 이렇게 그의 음악은 언제나 한 곳에 머무르지 않았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했다. 그렇기에 그의 음악은 항상 동시대에 가장 세련된 음악이었고, 그의 밴드를 거쳐간 이들은 모두 재즈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거장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마일스의 근간은 재즈에 있었다. 그는 흑인이었고, 흑인이 만들어 낸 음악을 했다.


물론 불행히도, 미국의 현실은 마일스의 기대와는 달랐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성공한 음악가였지만, 동시에 그저 '흑인'이었다. 20세기 중반의 미국은 흑인의 민권 운동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저항이 격렬하다는 것은 그만큼 억압도 거세다는 뜻이다. 그리고 마일스 역시 '흑인'이라는 인종의 굴레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그는 모든 성취에도 불구하고 흑인이기 때문에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좌절은 불행의 씨앗이 되어 마일스의 인생을 파고들었다. 마일스는 성공한 음악가이고, 인종차별에 신음하는 미국의 흑인이었지만, 동시에 가정폭력을 휘둘렀고 연인과 동료들에게 폭력적인 사람이었다. 무엇이 원인이 되었든 우리는 그의 명과 암을 분명히 응시해야만 한다.


마일스는 부부 사이였던 프랜시스 테일러 데이비스의 사진을 앨범 커버에 사용했지만, 가정폭력으로 인해 이혼하고 만다.


인간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마일스 데이비스는 언제나 '멋지고 힙하고 앞서 나가는' 아이콘과 같은 사람이었다. 마일스는 재즈라는 가장 앞서 나가는 음악 '운동'의 전위에 선 혁명가였다. 나아가 인종차별로 신음하는 흑인에게, 마일스와 그의 재즈, 그리고 언제나 당당하고 세련되었던 모습은 흑인은 결코 열등하지 않다는 증명과도 같았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은, 재즈가 노예와 식민지의 비참함에서 비롯된 음악이 아닌 흑인 스스로가 창조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추상적이며 수준 높은 예술임을 보여주었다. (그런 마일스가 사실은 흑인 민권 운동의 적극적 동조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역시 인간의 다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증거와도 같다. )


[쿨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이 제목은 마일스가 1957년에 발표한 음반의 제목이다. 여기서 쿨 (Cool) 이란 재즈의 하위 장르인 '쿨'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 영화와 마일스의 인생을 생각해보면, 마일스 데이비스라는 시대의 아이콘이 대표하던 어떤 '멋짐'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일스의 인생을 회고하는 모든 사람들은, 입을 모아서 그는 말쑥하게 옷을 입었고 좋은 차를 운전했다고 말한다. 마일스의 음악도 음악이지만 그의 삶의 모습 전체가 무언가를 상징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멋지고, 세련되었고, 정체되지도 뒤쳐지지도 않는 것. 그야말로 모든 사람이 상상하고 그리워하는, 존재한 적 없는 노스탤지어로서의 '재즈 같은 삶' 말이다.


https://www.netflix.com/title/80227122?s=i&trkid=13747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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