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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드라운기린아 Sep 20. 2023

녹색방랑, 이미지 여행기 2023

<Magnolia, 신이화 꺾이던 날>

혹독한 추위 속에 붉게 피어나는 겨울의 꽃들, 동백과 매화 다음으로 봄을 먼저 맞이하는 꽃, 목련의 계절을 기억한다. 목련은 한겨울에도 앙상한 가지마다 콩알만 한 봉우리들의 모양을 잡으면서 부지런히 봄을 준비한다. 그 모양새가 겨우내 눈에 밟혔다.

신이화(목련) 채화 작업 중, 나주 2023

신이화는 목련의 옛 이름인데 약재로 쓰일 때 불리는 이름으로 차로 마시면 살짝 화-하게 느껴지는 매운맛과 함께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성질을 뜻한다. 나는 목련이 매그놀리아 Magnolia, 신이화 辛夷花, 그리고 목련까지 각각 불릴 때마다 조금씩 다른 결의 옷을 입는다고 느꼈다.

신이화로 꽃차를 만드려면 봉우리를 터트리기 바로 직전의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 나주 2023

나무에 핀 연꽃(목련)이라는 이름은 어딘가 연꽃의 아류이자 남성적인 묵직함이 느껴지고, 매그놀리아 역시 Magnus라는 어원에서 느껴지는 강인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신이화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목련의 맛과 향이 떠오르면서 하얗고 우아하여 마냥 고결해 보이는 그 꽃이 겨우내 추위를 독하게 견딘 그 봉우리의 알싸함을 결국 표현해 내는구나 했다.

직접 만들어본 신이화 꽃차

관조하던 대상물이 내 입 안으로 들어와 나의 일부가 된다. 시각에서 후각과 미각으로 전이되며 이제껏 경험한 적 없는 (공식이 없는) 새로운 감각관념의 정의가 이루어진다. 그 전이는 직접적이고 폭력적이며, 흰색이 청량한 알싸함이 되는 난데없는 연결이다. 나는 그 난데없음이 더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키가 큰 신이화를 따려면 조금은 위험을 무릎서야한다.

사다리를 타고 목련나무만큼 키가 커져서 봉우리를 툭툭 꺾어내며 봄을 맞이했던 날들이었다. 자연 속에서 피어나지 못하고 꽃물이 될 봉우리들을 누군가는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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