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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부름 지나 Mar 17. 2024

재필삼선 | 30세, 치과의사, 한진우

#야근식당 2편.  수능은 너무 간절했던 시험이야.

#야근식당 2편. 오글거리다라는 말이 감성을 위축시켜요.

안녕하세요.

식부름 지나입니다.




 inside this episode

평범하지 않은, 자기 길을 개척한 사람들이 있다면, 나같은 애들은 한트럭이거든.나는 하란대로 열심히 공부를 해왔어. 그게 좀 새로울 수 있지않을까. 치대입시는 사실 수능 성적으로만 정해지는 진로다 보니, 공부가 큰 밑걸음이었지.


직업: 치과의사

나이: 서른(빠른 94)

특징: 그는, 삼수한 시절과 인턴 1년차를 가장 힘든 시절로 꼽는다.


 


이번 #야근식당 에피소드는 강남 세브란스 병원에서 치과 의사로 일하며 자신의 열정을 실현하고 있는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번엔 직업과 그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그냥 한 사람의 삶과 선택, 그리고 그 선택을 뒷받침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춥니다. 


    




 


ch1. 직업 만족도



얼마나 일했어?

강남 세브란스에서 지금 5년차 일해. 만 4년째고.


직업에는 만족해?

안정하다는 사회적 인식보단, 그 자체로 감사한일들로 만족하며 다니고 있어.


세부 전공은 뭔데?

우리 병원 다섯개과가 있는데 그 중, 보철과에서 일하고 있어. 치아가 손실이 될때, 모양과 기능을 회복하는 과야. 보철과는 단기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경과 차이가 정말 큰 진료같아.  우리가 틀니, 임플란트를 하는데, 그런 건 환자분들께 이이가 없다 생기고, 세네번만에 바뀌는 거야. 그래서 고마움의 표현이 더 강한거 같아. 

 

가장 인상깊은 치료를 알려줘.

위아래 이가 하나도 없는 50대 암수술을 받고난 남성분의 치료사례인데, 사실 방사선 치료를 받고 나면, 임플란트를 못심어. 방사선치료를 하면, 방사선 골괴사라고 하는데, 뼈 괴사로 임플란트를 금기시하거든. 어쩔수 없이, 이분께는 틀니를 해드렸는데, 이분께 정말 딱 맞더라구. 완전 이처럼. 그런 경우에 인생이 확 달라지잖아. 그런것들에 환자분들이 크게 감사해하고, 그게 정말 보람찬거 같아.


의대 vs 치대에 대해 추천을 한다면,

내가 의대는 안다녀봐서 모르는데, 의대에는 환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은 과들이 있다고 알아. 영상의학과나 마취과. 그런데, 치대는 무조건 사람들을 대하는 걸 좋아해야, 힘들지 않은 거 같아.











ch2. 직업선택의 배경



개인적으로, 치과의사에 대해 만족도는?

80프로? 꽤 안정적으로 보수를 받지만, 일안하고 먹고살정도로 버는 직업은 아니야.


개원하고 싶어?

할거같아. 아빠 하시던 곳 지방내려가서 할 거 같기도 하고. 근데, 지금은 계획하진 않고 있어.

나는 지금 계속 배워야 하는 거 같아. 또 앞으로는, 건강한 노인들이 늘어나잖아. 그 분들은 이쁘고, 튼튼하고, 높은 수준의 결과를 원하기 때문에 그 면에서 심미적인 결과치를 올리는 것들도 굉장히 중요한 과제같아. 나오면 개원한 분들 사이에서 20, 30년 되신 분들이랑 경쟁하는 거잖아.   









ch3. 공부이야기 -재필삼선


입시는 몇번 했어?

총 세번. 삼수생이었지.


정시로 수시로 갔어?

결국 정시로. 


첫 입시는 어땠는데?

현역에는 수시로 갔어. 서울대 화생공이랑 단국대 치대, 연세대 원주 의대를 붙었어. 우리때는 수시 접수가 무제한이었거든. 그때 인서울 포함, 의대는 다썼지. 근데 저 세개가 된거야.


어디로 골랐어?

머리로는 치대, 전문직에 대한 안정성이 있는데, 가슴으로는 서울대가 있었어. 막상 때가 되니, 아버지 직업이 치과의사 셨는데 따라 쓴거지. 막상 버리려니까, 너무 힘들었어. 결국 3주 다니고 학교를 나왔거든.  그래서 재수를 한거야. 재필삼선이란 말이 있어.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 사수는 심장이 시키고, 오수는 운명이다. 


그래서 재수는 어땠어?

단국대 치대보다 다 상향으로 썼는데, 세 곳 다 떨어졌어. 다시 학교로 돌아가긴 그래서 수능을 한번 더 봤어. 

그때 가장 힘들었던 거 같아. 


어떤 각오였어? 수능공부를 다시 할 때, 불안하지는 않았어?

난 진인사 대천명을 이럴때 써. 사람이 노력하는 거지만, 뜻은 하늘이 이룬다.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는 거야. 그래도 안되는 건, 어쩔 수 없는거든. 그렇지만 5년정도 지나고봐도, 수능날이 되면 가슴이 아리고 그랬어. 한번에 인생을 걸기엔 너무 마음이 힘들잖아. 


그때, 100점이 아니라 120점을 맞을 각오로 시작했어. 내가 수능날 설사해서 망할 수도 있잖아. 그런 설사를 하든, 컨디션에 좌지우지 될 필요가 없을정도의 실력을 쌓으려고 했어. 

  

지금까지도 그 항상심이 유지가 되는 편이야?

맞아. 원래도 좀 차분하지만, 남들이 화내는것도 못봤다고 하거든. 실제 성격도 느긋하다 못해 여유있는 편이고, 그런데 그런 인격이 수험생활을 통해 이뤄지지 않았나 싶어. 그당시엔 수능에 자명종을 두고 가는 사건들도 있잖아. 그런 일이 일어나도 내가 잘할거라는, 마인드 컨트롤, 끊임없는 항상심이 늘 필요했던거 같아.









ch4. 공부이야기2 -공부는 뚝심?


 

공부는 뚝심이 가장 큰거 같아.

어릴때에도 그럴까? 난 재수때는 내 의지로 했지만, 어릴 땐 내 뚝심보다 엄마 뚝심이었어.


어릴때, 어디서 공부했는데?

학원을 지나가다보면, 집 근처에 강남세브란스가 있었거든. 학원갈때마다 지나갔고, 그때 목표가 저런 병원가기였는데, 지금 그 병원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신기한 거 같아.


대치 키드야?

그럴수도. 안성에 있다, 초5때 대치동으로 이사를 왔어. 어딜 가면, 책을 들고 다니던 아이였단 기억이 나. 근데 난 학원을 그렇게 많이 다니진 않았어. 재수랑 삼수때 강남대성을 다녔고, 또 고등학교때는 방학마다 올라와서 특강을 많이 듣긴했지.  




그게 왜 도움이 됐어?

처음에 안성에서 대치동으로 오고, 엄마가 집에 계시고, 나는 자연스럽게 공부를 했던 거 같아. 

엄마가 내 공부에 늘 관심을 가졌는데, 재밌는 게, 엄마는 하는 척하는 건지, 진짜 열심인지를 진짜 알았던 거 같아. 그때 딴짓을 하면, 옆에 있는 삼국지 보고, 그런 식이었는데, 시간만 떼우고, 별로 진심으로 하지 않는거지. 그러다 내가 친구들이랑 경쟁심도 슬슬 생긴 거 같아. 쟤는 이기겠다. 평균 몇점이 나와야겠다. 그런거.


엄마말 안들어본 적은 없어? 어릴때 첫번째로 한 거짓말은 뭐야?

중2때 처음 피씨방에 간거? 학원 다니면서 놀았다의 기억은 없는거 같애. 엄마가 매일 픽업을 해줬으니까, 아예 선택지에 없었어. 거기까지 생각이 안들었어.  신대륙 발견 전 유럽인들처럼 논다는 생각 자체를 아예 못해본거 같아애. 그러니까 불만도 없지. 피씨방도 대역죄인같았지. 중2때 처음 가봤는데, 이런데 와도 되나.











ch4. 공부이야기3 -특목형 자사고 이야기


인생에서 돌릴 선택이 있다면?

크게 많지는 않아. 돌린다면, 민사고 가지 않았을 거 같고, 원래 꿈이었던 화생공을 가는 정도인데,

화학생물공학과를 갔다면, 진로가 좀 더 열려있었겠지 싶어. 근데 그랬어도, 치전을 갔을 거 같아.


그시절을 가장 인생의 결정으로 꼽는구나.

그만큼 어려운게 없었나 싶기도 하다. 공부만 하게 도와준 부모님에 큰 감사하기도 하고.

평범하지 않은, 자기 길을 개척한 사람들이 있다면, 나같은 애들은 한트럭이거든.나는 하란대로 열심히 공부를 해왔어. 그게 좀 새로울 수 있지않을까. 치대입시는 사실 수능 성적으로만 정해지는 진로다 보니, 공부가 큰 밑걸음이었지.


근데 민사고, 기기 힘든 학교이지 않아?

민사고 입시를 하던 때가 좀 기억에 남는데, 서류로 2배수를 뽑고, 필기고사를 봤고. 면접도 봤어. 시험 이름이 <영재판별검사>이었어. 영판이라고 불렀는데, 엄청난 자신감이지. 

나도 중학교까지는, 잘난척을 한다던 이야기를 들었던 거 같아. 단대부중 전교 7등으로 졸업했어. 


민사고 서류에서는 뭘 봤어?

어릴 때 대치살면서, 영어는 어려움이 없었던 거 같다. 중학교때 토플 112점정도. 그리고 화학올림피아드 동상, 성대 경시란 수학시험 서울 1등, 전국 2등을 했어. 


가서도 계속 잘했겠네. 

아냐.  내가 엄마의 영향이 컸다고 했잖아. 민사고에 가고, 완전히 자기주도적인 공부를 해야하는 상황에 처음 놓인거야. 그때 처음 중하위권이 됐어.


방임해도 공부 잘하는 애들 있잖아.

 나는 그런 타입은 아니고, 누가 시켜야 한다는 걸 알았어. 


그럼, 어떤 사람들이 잘하는 거 같아?

잘하는 친구들 중엔 소위 말하는 천재형들도 있는 거 같은데, 내가 본 전교 1등은, 가장 열심히 하고, 가장 잘한 사람이었어. 노는 걸 본적이 없어. 그 친군 그 후에도 서울대 의대 수석졸업하더라. 2학년 때 그 친구랑 방을 쓰면서, 나도 도약을 했어. 한 상위 20프로까지 나오더라.


민사고에서는 공부가 제대로 안된거 같아. 어떻게 보면, 인생의 중요한 기로였던 때, 민사고 자체는 내 기질에 맞는 학교는 아니었던 거지. 사실 그 당시 좋은 인식 하나만으로 선택을 결정할 게 아니라, 내가 논리적 선택을 할 필요도 있는 거 같고. 일반계에 가도, 입시로 보면 결과적으로 잘 된 케이스가 정말 많거든. 






ch5. 마무리 이야기 -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인생에서 젤 힘든때가 언제야?

삼수때랑 병원 1년차가 힘들었는데, 그때는 오전 8시에 출근해서 밤 11시에 퇴근했어. 매일. 사실 평일에는 내 시간이 없는거야. 정말 힘들었는데, 이걸 힘들어서 관두면 내 역치가 낮아질거 같았고 그냥 하자는 쪽이야. 근데 모르는 거지. 나가서 더 행복할 수도 있는데.


그럼 뭘 믿고 가?

어딜가도 잘된다는 보장은 없어. 그냥 나는 주어진 일에 그냥 최선을 다하는 편인거 같아. 그럴 수록, 결과가 좋아지리라는 걸 느껴, 그리고 조금 더 마음이 편해지는 쪽같아. 지금 대학병원에는 응급한 환자들도 오는데, 그럴땐 사명감을 갖고, 하루하루 집중해야만 해.



그럼 고등학교나 대학교 입시가 아쉬워? 

혹은 선택을 하는 것보단, 노력을 하는 게 중요하다 생각하는 편?

물러날 곳이 없다는 생각으로 사는 거 같아. 선택을 되돌릴거 같기도 한데, 크게 인생을 놓고 보면 그렇게 후회하거나 특별히 잘한 선택도 없는 거 같아. 어찌보면, 어떻게 보면 너무 한가지 코스로 왔나?

 

그래서, 지금 목표라면, 환자들에 높은 결과치를 주는 치과의사 뿐 아니라, 교양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또, 높은 레벨에서 건강한 취미생활을 해보고 싶어. 특히 저녁이 있는 삶. 

에너지를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 집에 가면 유튜브를 보고 쉬게 되는데,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를 준비한다던가, 취미를 높은 레벨에서 열심히 하는, 그런 인생을 즐기는 모습이 있는 사람들처럼도 추구하고 싶고.



 


 


인터뷰이가 미국에 다녀오면서 보내준 직접 촬영한 사진들.





 

그는 제 인터뷰를 보며, 무언가 인생을 개척하는 자세가 아닌 인생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는데요.



제 인터뷰에서는 창업이나 개척같은 단어들이 굳어져 온거 같은데, 이번 #야근식당 에피소드는 강남 세브란스에서 치과 의사로 근무하는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을 개척하는 자세뿐만 아니라, 때로는 주어진 길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특별한 순간의 결정보다는 그 결정을 일상에서 꾸준히 실현해나가는 과정도 중요한데요. 그런데, 그게 그냥 저에게 지금 필요한 자세 같아 담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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