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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영낭자 Feb 01. 2017

아이에게 집안일을 가르쳐라

'내 남편은 집안일을 돕지 않는다' 후기 

어제 '내 남편은 집안일을 돕지 않는다' 글을 올리고 하루 종일 폰의 알람이 울렸다. 

'조회수가 1,000건을 돌파했습니다'

오옷~ 신기하다! 내 글을 이렇게 많이 읽다니, 어찌 된 일이지?

그러더니 2,000건, 3,000건이 넘어가고 급기야 오늘 아침엔 조회수가 1만 건을 돌파했다는 알람이 뙇! 

내게도 이런 기적(?!)이 생길 줄이야. 

(제목에 낚이신(?) 분들도 계시겠으나 어쨌든 많이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소재를 제공해준 남편에게 공을 돌리며 우리끼리 자축하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정말 이 남자는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인해 

집안일은 돕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거라는 바람직한 마인드를 갖게 되었을까? 

"어렸을 때 엄마가 콩나물 500원어치 사다가 대가리 떼놓으라고 하고 일 나가셨는데

엄마 오실 때까지 안 해놓으면 아작 났지."


버섯손질은 녀석이 3살 때부터 즐겨한 일이다


어려운 형편 때문에 공장에서 밤늦게까지 일하셔야 했던 우리 시어머니. 

주말에 어쩌다 시간이 날 때는 어머니가 집안일을 하시긴 했지만 평일엔 어림없는 일이라 

온갖 잔심부름에 밥 차려먹기, 설거지, 청소, 빨래 등 집안일은 자연스럽게 

우리 남편과 아주버님의 몫이었단다. 

'남자는 부엌에 들어오면 불알 떨어진다'라고 못 들어오게 했던 그 시절,

우리 시어머니는 두 아들에게 집안일을 아주 당연하게 시키셨고, 그 결과... 

"부엌에 들어가서 떨어질 불알이면 떨어지라 그래. 그런 건 뭐하러 달고 다녀?"

우리 남편은 이렇게 사이다 돌직구를 날리는 '개념남'이 되었다. 


사실 우리 시어머니가 엄청 진보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분이셔서 

일찌감치 아들들에게 집안일을 시키신 건 아니다. 

같이 사는 큰며느리가 제 남편 아침밥도 안 차려준다고 가끔 혀를 차시는 걸 보면

'그래도 집안일은 여자 몫'이요, '남편 끼니 잘 챙기는 아내가 현모양처'라고 

생각하시는 '옛날 분'이시다. 

다만 그 옛날엔 먹고살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다 보니 당신이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어린 아들들에게 집안일을 시키셨던 것 같고, 

다행히 착한 아들들은 그걸 잘 따라주었고 지금  그 혜택(?)을 우리 며느리들이 받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시엄니, 아들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우리나라 남자들이 직장에 너무 오래 매여있다 보니까 집안일을 할 시간이 없는 게 아닐까?"

왜 유독 우리나라 남편들이 집안일을 적게 하는지에 대한 나의 조심스러운 추측에 

남편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할 의지가 없는 거야. "

어릴 적부터 자꾸 하다 보니 특별한 계기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집안일이 체화된 

남편의 결론은 이거였다. 

"결국은 엄마 아빠들이 아이들 교육을 잘 시켜야 돼."

지금 아내와 집안일을 제대로 분담하지 않는 남편들은 대부분 어릴 때 집안일을 해본 경험이 없거나 

주로 어머니가 집안일을 하는 것을 보고 자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건 딸들도 마찬가지다. 

딸의 역할 모델은 주로 엄마이고, 딸들은 엄마를 보면서 삶의 태도를 배운다. 

엄마가 종일 집안일에 매달리고 자신보다 가족들을 먼저 챙기는 모습을 보고 자란 딸들은 

나중에 커서도 자기가 집안일과 가족을 챙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무의식적인 강박증을 갖게 되고,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경우 쓸데없는 죄책감에 시달리기 쉽다. 

(물론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고 반면교사로 삼는 딸들도 있겠지만)


만약 내 딸이 이다음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울 때, 

집안일과 육아를 거의 혼자서 전담하며 하루하루 힘겹게 살길 원하는가? 

아니면 일과 육아를 남편과 함께 하고, 자신만의 여가도 즐기며 행복하게 살길 원하는가?


만약 내 아들이 집안일과 육아를 거의 아내에게만 전가하는 이기적인 놈으로 자라 

아내의 원망을 들으며 언제라도 이혼당할 수 있는 처지에 놓이길 바라는가?

아니면 아내와 자녀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당당한 남편이자 아빠로서 행복하게 살길 원하는가?

내 사랑하는 아들 딸이 나중에 후자의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면

지금 엄마이자 아빠로서 우리가 해야 할 행동은 분명하다. 


나는 나중에 내 두 아들이 며느리들에게 미움받아 이혼당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

홀아비 된 아들들의 자식까지 키워주는 '황혼 육아'의 희생자가 될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희운이가 어릴 적부터 스스로 해야 하는 일부터 온갖 집안일을 가르쳐왔다. 



커서 독립할 때까지 같이 살아야 하는 가족인데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집안일을 나눠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걸 끊임없이 세뇌하듯 가르치고 있다.

지금은 밥상 차리고, 제가 먹은 빈그릇을 싱크대에 담가놓는 수준이지만 

조금만 더 크면 밥 짓기, 설거지, 빨래, 청소하는 법을 체계적으로(?) 가르칠 생각이다. 


요즘 녀석이 즐겨하는 집안일은 수건 개기다. 

종이 접기나 딱지 접는 거랑 비슷한 거라고 가르쳤더니 꽤 재미있어한다. 

그래서 빨래 갤 때 일부러 수건은 녀석 몫으로 남겨둔다. 

다 갠 수건을 들고 욕실 찬장에 차곡차곡 넣으러 가는 녀석의 뒷모습이 참으로 의젓하다. 

아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집안일을 하고 칭찬받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는 듯하고.


아이에게 집안일을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아빠 엄마 둘 다 집안일을 같이 하지 않고 너만 하라는 식으로 잔소리하면 아이가 따를 리 없다. 

온 가족이 함께 집안일을 나눠하고, 그로 인해 여유시간이 생긴다면 

그 시간에 함께 잠을 자든 TV를 보든 놀러 가든 뭐든  같이 해보자. 

그러면 일과 삶이 조화된 바람직하고 행복한 삶의 모델을 

자연스럽게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남편과 아내가 집안일을 '함께' 해야 하는 이유이자 

아이에게 집안일을 가르쳐야 하는 진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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