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숙영낭자 Jun 23. 2017

우리 가족의 탄생

남편, 아이와 함께 한 나의 자연주의 출산기

예정일을 6일 넘긴 2월 11일(토요일)로 가는 새벽, 드디어 기다리던 이슬이 비쳤다. 

가진통 간격을 수첩에 기록해본다. 1시 40분, 1시 50분... 10분 간격이던 진통이 8분, 7분, 5분, 4분 간격으로

줄어드는 동안 아침이 밝았고, 담당 조산사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설명을 듣던 조산사님은 둘째는 생각보다 빨리 나올 수 있으니 병원으로 바로 오라고 했다. 

우리 가족은 마치 소풍을 가는 것처럼 출산 가방과 카메라,  장난감, 수중 출산에 대비한 수영복, 진통하는 동안 나눠먹을 간식거리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이때만 해도 나는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아이가 나오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 반, 설렘 반의 기대를 가졌더랬다. (만약 이때, 병원에 도착해서 10시간 넘게 진통할 줄 알았더라면 나는 아이 낳을 엄두조차 못 냈을 거다. 인생은 예측불허라서 살만한 거다. 후후..)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간단한 검사를 하고 있으려니 밥이 나온다. 때마침 점심때였다.

그렇지, 이제 곧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하니 든든하게 먹고 힘을 내야지. 

자연주의 출산에선 이게 당연하다. 

진통하는 동안 충분히 먹고 마실 수 있는 자유!

큰 애를 낳았던 일반 산부인과에선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금식은 기본이요, 관장, 제모, 내진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임산부 3대 굴욕'을 겪어야 했다. 자연주의 출산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금식을 하는 건 제왕절개와 같은 수술에 대비하기 위해서란다. 첫 애 낳을 땐 금식이 당연한 것인 줄만 알았는데... 큰 애와 함께 밥을 나눠먹으면서 우리 둘 다 양껏 먹고 힘내자고 약속했다. 


우리 가족에게 배정된 자연출산실. 

입구에 걸린 그림은 아기의 머리가 나오려는 여성의 회음부를 꽃으로 표현한 것이다. 

아기의 머리가 나오기 직전, 거울로 그곳을 비춰주면 많은 산모들이 고통 속에서 기적 같은 뒷심을 발휘한다고 한다. 


아기가 아직 충분히 내려오지 않았단다. 양수가 터질 기미도 안 보여 

아이를 빨리 만나기 위해 짐볼을 이용해 아기가 내려오게끔 운동을 했다. 

녀석이 옆에 와서 나보다 더 큰 짐볼을 가지고 와서 장난친다. 이때만 해도 살 만했다. ^^; 


하지만 곧 가진통을 넘어 몸이 기억하는 그 고통이 날 찾아온다. 

큰 애를 처음 만나기 위해 견뎠던 그 고통 말이다. 5년이란 시간이 흘렀어도 그 고통은 너무나 익숙하게

내 몸과 마음을 지배했다. 나와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자연주의 출산에서는 유도분만을 위한 촉진제나 무통 주사를 지양한다. 

진통이 오면 우리 뇌에서는 진통을 견디기 위한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분비되는데 약물이 투입되면

뇌는 혼란을 느끼고 호르몬 생산을 중단한다고 한다.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산모는

출산을 하기에 충분히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다'는 믿음과

긍정적인 마음이라는 것을.


내가 둘째 임신과 동시에 메디플라워를 찾았을 때, 정환욱 원장님과 했던 짧은 대화.

"37살이면 노산이네?"

"요새 마흔 넘어서 낳는 엄마들도 얼마나 많은데 노산이라뇨. 저 노산 아니에요, 원장님.

 아기 낳기 딱 좋은 나이입니다."

그러자 원장님은 활짝 웃으며 그런 마음이라면 잘 낳을 거라고 격려해 주셨다. 

내가 진통하는 동안 큰 애와 남편은 장난도 치고 같이 퍼즐도 맞추며 여유롭게 보냈다. 

집에서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그런 모습이 오히려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큰 자녀를 출산 현장에 데리고 오는 것에 대해서 말들이 많았다. 

큰 애가 충격받으면 어떡하냐, 무서워하면 어떡하냐, 울면 어떡하냐... 

남편이야 그렇다 쳐도 큰 애도 아직 어린데 괜찮겠냐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엔 나도 그런 생각에 염려스럽긴 했었다. 하지만 정 원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바꿨다. 

큰 애가 동생이 태어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되면 자기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알 수 있고, 

동생과의 유대감이 생겨서 더 좋다는 거다. 생명 탄생의 순간을 지켜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성교육의 

시작이 될 수도 있고 말이다. 그리고 어른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아이들은 충격을 받지 않고 오히려 

호기심을 느낀다고 한다. 간혹 엄마가 진통할 때 내는 비명소리에 놀라서 우는 아이도 있지만 

결코 동생이 태어나는 게 무서워서 우는 건 아니라며... 


그래서 우리 부부는 큰 애를 출산에 함께 참여시키기로 했다. 

녀석은 동생 태어나는 날 같이 갈 거라는 말에 엄청 좋아했다. 

그 후론 시키지도 않았는데 뱃속의 동생에게 말도 걸어주고, 자기 전에 꼭 '딸기(태명)야, 사랑해. 태어나면 잘해줄게' 인사하곤 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출산에 같이 참여시키길 잘했구나 싶었고, 

실제로 병원에 와서도 녀석은 기대 이상으로 제 몫(?)을 해냈다. 

진통 중에 갑자기 오한이 들어 몸이 덜덜 떨릴 때, 허리에 뜨듯한 뭔가가 느껴져서 보니 녀석이 핫팩을 내 허리에 얹어준 거다. 

"엄마 힘내~" 

녀석의 응원 한 마디에 신기하게 오한이 가라앉았고 진통도 아주 잠깐 사라진 듯했다. 

그 순간의 감동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자연주의 출산에선 남편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출산 때만 함께 하는 게 아니라 출산하기 전부터 모유수유 교실, 호흡 및 운동법, 출산 리허설 등등 

아내와 함께 반드시 받아야 할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단순히 이론뿐만 아니라 진통 중 아내의 고통을 덜어줄 진통 경감 마사지 같은 실용적인 팁도 배울 수 있다. 배울 땐 이걸 써먹으면 정말 효과 있나? 싶었는데

정말 효과 만점이었다!

진통 중 꼬리뼈 주변을 꾹꾹 눌러주던 남편의 손길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그렇게 출산의 전 과정을 함께 하며 옆에서 격려해주는 남편이 더없이 사랑스럽고 든든했다. 

(진통이 너무 고통스러워 임신시킨 남편의 머리털을 죄 뽑아버리고 싶었다던 어느 엄마의 웃픈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나는 건 왜일까...ㅎㅎ)


하지만 옆에서 아무리 남편과 아이가 격려해줘도 출산의 고통은 오로지 엄마인 나만의 몫이다.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고통의 시간... 지금은 몇 시나 됐을까? 싶던 찰나에 저녁밥이 나왔다. 

어느새 반나절이 지났구나...

하지만 양수조차 터지지 않았다. 결국 지금보다 더 아파야 한다는 결론. 

둘째는 첫째보다 빨리 나온다던데 나는 왜 이럴까...? 

저절로 나오는 깊은 한숨을 재빨리 호흡으로 가다듬는다. 

부정적인 생각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둘째가 더 빨리 나온다는 건 일반적인 견해일 뿐, 

출산은 다 개인차가 있다. 조급해지지 말자, 지금은 호흡에 집중하자... 


진통이 심해질수록 호흡을 잘해야 한다고 배웠다. 숨만 잘 쉬어도 통증을 훨씬 가라앉힐 수 있다고 했다. 

더딘 진행에 걱정될수록 나는 '할 수 있다. 잘하고 있다' 셀프 주문을 외면서 호흡에 집중하려고 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아래쪽에 묵직한 느낌이 왔다. 일부러 힘을 줬다. 그러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양수가 터져 나왔다.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도 터지는 소리를 들었을 만큼...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이제부턴 정말 진진통이다. 하지만 나는 두려움보다 드디어 아이를 만날 시간이 가까웠다는 생각에 

오히려  힘이 나기 시작했다. 


"배가 아파... 너무 아파..."

숨쉬기도 힘들 정도의 고통이다. 참을 수 없는 진진통의 파도가 나를 덮쳤다가 떠나갔다를 반복한다. 

각오는 했지만 다시 겪어보니 정말 너무 힘들다. 진통을 겪어보니 인생을 살면서 웬만한 일엔 '힘들다'는 소리를 하면 안 되지 싶다. 그만큼 막바지 진통은 정말이지 너무나 힘들었다.

하지만 아직 좀 더 기다려야 한다는 조산사님의 말에 맥이 탁 풀렸다. 

아가, 널 언제 만날 수 있겠니? 제발 빨리 나와다오. 엄마 너무 힘들다. 


물속에 들어가면 이 고통이 조금은 상쇄되려나... 

아, 이래서 다들 제왕절개를 하나 보다....

욕실 변기에 앉아 마치 심한 변비 환자처럼 끙끙거리며 나의 로망인 수중 출산을 하려면 지금쯤 

물에 들어가야 하나 생각이 들 때쯤... 나는 본능적으로 일어섰다. 

나도 모르게 아래쪽으로 힘이 들어갔다. 임신 출산을 겪어본 엄마들 표현으로는 '밑이 빠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이대로 힘을 주면 정말 뭔가가 터질 것만 같은, 상상도 되지 않는 고통이 내게 닥칠 것을 직감하면서도 나는 아이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마지막 힘을 쥐어짜 냈다. 그리고 마침내... 아기 머리가 몸 밖으로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서 있던 나는 황급히 남편을 불렀고, 남편은 바로 조산사님을 호출했다. 


그렇게 나는 서서 아이를 낳았다. 

내가 꿈에 그리던, 욕조에 앉아 남편에게 의지한 채 큰 아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기를 낳으려 했던

수중 출산의 로망은 이루지 못했지만 20시간이 넘는 진통을 끝냈다는 것만으로도 홀가분해졌다. 

남편이 조산사님과 함께 아이를 받았고, 아빠 손에 들려졌다가 내 품에 안긴 아기는 신기하게 울지도 않았다. 

어라? 아기는 태어나면 자동으로 우는 줄 알았는데...? 

"왜 안 우는 거죠? 아기에게 이상이 있나요?"

나의 질문에 조산사님은 그저 미소로 답했다. 

태맥이 멈추길 기다렸다가 남편과 큰 아이가 함께 탯줄을 잘랐고,

탯줄을 자른 후에도 아기는 본능적으로 내 젖을 찾아 큼 큼 거릴 뿐, 쌕쌕 잠을 자는 듯했다.

그때 깨달았다. 평화롭게 태어난 아이는 울 이유가 없다는 것을. 

녀석이 태어나고서야 진통이 오래 걸린 이유를 알았다. 녀석은 4.18kg 였던 거다!



갓 태어난 동생을 캥거루 케어해주는 큰 녀석. 

제 손으로 탯줄을 자르고 아기를 안아보면서 녀석은 정말 뿌듯해했다. 

둘째를 출산하고서야 캥거루 케어라는 걸 처음으로 해본 남편.

"아! 정말 부드러워!"

감탄하듯 내지르는 남편의 목소리를 들으며 비로소 나는 무사히 둘째를 출산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잘했어, 수고했어, 고마워, 사랑해.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맞으며 다시 가족으로 태어났다. 

상투적인 표현이라 여겼던 '가족의 탄생'이 대체 불가한 표현으로, 온몸으로 와 닿던 순간. 

우리 가족은 평생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출산 내내 곁에서 친정엄마처럼 보살펴준 강정화 조산사님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자연주의 출산의 기쁨과 행복을 선물해주신 '메디플라워' 정환욱 원장님. 


* 덧붙이는 글

-둘째 출산 후기를 출산 100일이 훌쩍 넘은 오늘에야 올리게 되었네요. 그동안 쌓인 이야기들을 

 이제부턴 부지런히, 체력과 시간이 되는대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자연주의 출산에 대해서 더 궁금하신 분들은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자칭 문재인 대통령을 닮았다고 자랑하시는) 국내 최초, 최고의 자연주의 출산 전문의

 정환욱 원장님이 계시는 메디플라워를 방문해보시길 추천드려요. ^^

http://mediflower.co.kr/


매거진의 이전글 건강한 이기주의자가 되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