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모로코의 사하브(Friends) - 06. 위기의 새 생명
티플렛에서 살면서 평생 잊지 못할 끔찍한 장면 중 하나를 보고야 말았다. 5월의 어느 날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우리 반 아이 하나가 아빠와 함께 어느 한 곳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곳엔 쓰레기더미와 나뭇가지가 뒤덮여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모로코 사람들이 쓰레기를 모아 놓는 쓰레기더미였다. 하지만 그곳에 놀랍게도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듯한 강아지 3마리가 있었다. 겨우 눈을 뜬 강아지는 그 쓰레기더미 속에서 엄마를 찾는 듯 꼬물꼬물 움직이며 낑낑대고 있었다. 이를 어쩐다. 데리고 가서 씻기고 밥을 주고 싶었지만 1년 뒤 내가 떠나고 나면 주인 잃은 개가 될까봐 선뜻 데려가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그렇게 발만 동동 구르다가 결국 혼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에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쏟아졌다.
다음날, 난 너무나 미안하고 걱정스런 마음에 다시 그곳을 찾았다. 다행히 누군가 비닐을 쓰레기더미 위에 올려주어 조금이나마 비를 피할 수 있게 해놓았었다. 그런데 그곳을 살피던 나는 강아지 3마리 뒤쪽에 갓 태어난 고양이 새끼 두 마리가 더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강아지, 고양이 새끼들을 버린 것인지, 길 고양이가 이곳에서 새끼를 낳은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원인을 따지기도 전에 강아지와 고양이 새끼 주변에 모여든 벌레들과 날파리는 녀석들이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난 다급해졌다. 늘 동물들이 나오는 다큐멘터리와 동물농장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내가 이렇게 눈앞에 있는 동물들의 위험을 모른척한다는 것은 내 자신을 너무 부끄럽게 하는 것이었다. 녀석들은 분명 도움이 필요했고, 난 행동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기관에 달려가 경비원 아저씨와 유치원 원장에게 강아지와 고양이 새끼의 위급함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들은 나의 이런 모습을 허허 웃어넘길 뿐이었다. 모로코에서 고양이와 강아지는 모두 그렇게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먹고, 길에서 사는 것이라면서 말이다. 그래서 난 함께 구조를 하자고 더 간절히 그들에게 부탁을 했고, 마침내 나와 친하게 지내던 경비원 아저씨 모하메드가 그곳에 함께 가보자며 나서주었다.
난 그를 데리고 가서 강아지와 고양이 새끼를 보여주었고, 우리가 깨끗이 목욕시킨 후 키우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분양하자고 이야기했다. 착한 경비원 아저씨 모하메드는 알았다며 강아지와 고양이를 기관에 데리고 가면서 나보고는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어서 퇴근하란다.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모하메드 아저씨를 믿고, 그에게 강아지 3마리와 고양이 2마리를 맡기고는 조금 안심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날, 난 기관에 도착하자마자 경비원 아저씨 모하메드에게 가서 고양이와 강아지의 행방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웃으며 강아지 3마리는 자신의 시골집으로 보내서 자신이 키울 것이고, 고양이는 기관 화단에 데려다 놓았단다. 화단에는 정말 주먹만 한 고양이 두 마리가 서로 의지한 채 잠이 들어 있었다.
난 경비원 아저씨에게 강아지를 잘 부탁한다고 연신 이야기하며 방학 때 강아지들이 잘 크는지 같이 가보자고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그러고는 얼른 뛰어가 동네를 뒤져 고양이 사료와 우유, 밥그릇을 사왔다. 하지만 어디를 가도 고양이 집은 찾을 수가 없어 겨우 작은 바구니와 천을 구해올 수 있을 뿐이었다.
어렵게 구한 밥그릇에 우유를 조금 따라 주자 녀석들은 정신없이 우유를 먹기 시작했다. 정말 며칠을 굶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검은색 점이 박힌 녀석은 배가 빵빵해질 때까지 우유를 먹는데, 하얀색 점이 있는 녀석은 그 힘마저 없는지 눈을 감고 힘겨운 숨을 내쉴 뿐이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쓰다듬어 주려고 손을 가까이 하자 검은색 점이 있는 녀석이 팔로 다른 한 녀석을 감싸며 보호하려 들었다. 주먹만 한 녀석이 자신도 힘들 텐데 아픈 형제를 보호하려는 모습에 내 가슴까지 먹먹해졌다.
아직은 사람이 어색한 두 고양이 녀석들에게도 시간이 필요할 듯해 조금 거리를 두고 고양이를 관찰하고 있을 때였다. 하얀색 점이 있는 고양이 녀석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온 몸이 얼룩덜룩하며 힘이 하나도 없어 당장이라도 그 작은 숨이 꺼질 것만 같았다.
또다시 다급해진 나는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그러다 문득 녀석이 쓰레기 더미에 있었기 때문에 벌레에 물려 아픈 게 아닌가 싶어 따뜻한 물에 목욕을 시켜보기로 했다. 어떤 것이 더 적절한 조치인지 모르지만 우선은 경비원 아저씨 모하메드에게 고양이 목욕을 시키기 위한 따뜻한 물을 준비해달라고 했다. 착한 경비원 아저씨는 알았다며 고양이 목욕을 할 수 있게 따뜻한 물을 데워 준비해주었다.
하지만 기관에서 딱히 고양이 목욕을 시킬만한 곳이 없었던 지라 나는 그냥 교실 옆 작은 화단에서 목욕을 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러고는 따뜻한 물과 차가운 물을 통에 알맞게 섞어 목욕물을 만들었고, 주먹만 한 고양이를 한 마리씩 목욕물에 넣었다. 녀석들을 조심스레 물에 담그는 순간! 나는 또다시 충격적인 장면을 보고야 말았고, 그만 왈칵 쏟아지는 눈물에 고양이를 떨어뜨릴 뻔했다.
하얀 점이 있던 힘없던 녀석의 온 몸이 수십 마리의 벼룩과 함께 벼룩에 물린 피로 범벅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털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벼룩들이 물에 닿자 모두 드러난 것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수십 마리의 벼룩 떼에 너무 놀라고 무서웠다.
고양이가 가여워 눈물을 흘리며 목욕을 시키고 있는데, 다른 현지인 교사들과 기관의 직원들, 60명의 아이들은 내가 신기한 듯 모여들어 내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직 고양이나 강아지를 애완용으로 기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모로코 사람들에겐 쓰레기더미에서 고양이 새끼를 데려와 목욕을 시키는 내 모습이 신기하고도 이상하게 보였던 것이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나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어깨에 쓰윽 닦고는 손으로 벼룩들을 떼어내며 고양이 두 마리의 목욕을 겨우겨우 마쳤다. 하지만 동물의 피를 빨아먹는 벼룩들은 아주 강해 손으로 모두 떼어내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이런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경비원 아저씨 모하메드는 약국에 벼룩을 없애는 약이 있다고 알려주면서 나보고도 벼룩에 물릴 수 있으니 집에 가서 얼른 옷을 빨고 씻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이 말에 덜컥 겁이 나 집에 가자마자 옷을 빨고 샤워를 했지만 강력한 벼룩들은 옷 구석구석에 붙어 우리 집까지 따라왔다. 그리고 그날 밤, 침대로 몇 미터씩 점프하며 나에게 달려들던 벼룩들에 놀라 사방에 약을 뿌려가며 밤을 지새웠다.
처음으로 벼룩을 보고 놀랐던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경비원 모하메드 아저씨의 도움으로 약국에서 벼룩 약을 사왔다. 그러고는 다시 경비원 아저씨에게 부탁해서 물을 데워 고양이 약물 목욕을 준비했다. 약을 물에 조금 타니 물이 뿌옇게 변했고, 그 약물에 고양이를 조심스럽게 넣었다. 그러자 이번엔 벼룩들이 약에 놀라 모두 고양이 얼굴로 모여들었다.
고양이는 귀에 물이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얼굴을 빼고 목욕을 시켰는데, 이 때문에 벼룩들이 고양이 얼굴에 몰린 것이었다. 고양이 눈, 코, 귓속을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수십 마리 벼룩들의 모습은 보기 힘들 정도로 너무나 끔찍했다.
고통스러운지 고양이도 눈을 꼭 감고 작은 소리로 ‘야옹’거리며 울부짖고 있었다. 그래도 자신들을 도와주려는 손길을 아는 것인지 따뜻한 약물에 몸을 담그고 한참을 얌전히 있어주었다. 이렇게 고양이 얼굴에 모인 벼룩들을 하나하나 약물로 닦아내며 첫 번째 약물 목욕을 마쳤다.
그 후에도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약물 목욕을 해주었고 3주가 지나자 고양이들을 괴롭히던 수십 마리의 벼룩들은 거짓말처럼 모두 사라졌다. 벼룩과의 한판에서 고양이 녀석들과 함께 시원하게 승리 한 것이었다.
약물 목욕 후 깨끗해진 고양이들을 수업시간에 소개하기도 했는데, 아이들에게 소개하기 전에 이미 ‘따따 소피아가 길 고양이 새끼를 목욕시키고 보살피고 있다’는 소문으로 시민의 집 직원들과 현지인 선생님들 그리고 아이들 모두 알고 있었다.
심지어 아이들이 집에 가서 부모님에게 이야기하면서 학부모들과 그 이웃들에게까지 입소문이 퍼져나갔다. 옛날 우리나라처럼 모로코 사람들에게는 동물을 목욕시키고, 밥을 주고 돌보는 모습이 놀랍고도 신기한 일이었기에 소문은 소문을 타고 나비효과처럼 퍼져나갔다.
이후 길에서 만난 학부모들과 이웃들은
“선생님, 길에서 고양이 새끼를 구해서 키우고 계신다면서요?
너무 좋은 일 하시네요.
고양이들은 건강해요?
잘 자라고 있나요? 많이 컸어요?
이름이 뭐예요?”
등의 질문을 하며 고양이들의 소식을 물어 오곤 했으니 나비효과의 파장은 꽤 크고도 길게 이어졌다. 고양이들도 이런 나비효과 사랑에 힘입어 점점 건강을 회복해 나갔고, 드디어 반짝이는 눈빛의 사랑스러운 새끼 고양이의 모습을 되찾았다.
나비효과에 힘입어 이번기회에 아이들과 티플렛 주민들에게 동물을 돌보는 방법과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모로코 사람들도 발음하기 쉬운 이름으로 고양이들을 나비(검은 점), 코비(하얀 점)로 이름 짓고는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고양이를 안는 법, 쓰다듬는 법 등을 알려주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게임을 할 때도 나비 팀, 코비 팀으로 나누었고, 아이들과 함께 고양이들을 관찰하고 함께 보살피며 지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도 고양이를 조심스럽게 예뻐하는 법을 알게 되었고, 나비와 코비도 점점 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밥 달라고 내 뒤를 열심히 따라다니던 나비와 코비. 야옹거리며 끊임없이 사랑해달라던 나비와 코비의 모습은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녀석들이 마치 내 자식이라도 된 것 같이 소중했다. 나비와 코비 덕분에 난 늘 출근하는 길이 기다려졌고, 마음 한 구석이 포근해졌었다.
그렇게 하루하루의 시간이 지났고, 나비와 코비도 어느덧 햇볕 아래에서 장난을 치고 나에게 애교를 부리며 기관의 식구가 되어가고 있을 때였다. 나비와 코비가 건강하게 자라자 천둥번개가 치던 날 쓰레기더미에서의 첫 만남 그리고 눈물을 쏟았던 벼룩과의 싸움, 우유를 겨우 먹던 녀석들이 사료, 고기를 먹기까지의 두 달이라는 시간이 마치 꿈 속이야기 같았다.
물론 그러는 동안 정이 많이 들어 나비와 코비를 집에 데려가 키우고 싶은 생각도 종종 들었었다. 하지만 정이 들고 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무책임한 나이기에 내가 떠나고 나면 나비와 코비가 더 상처를 받을 것 같아 그러지 못했다. 단지 내가 외롭다는 이유로 고양이를 키우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내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이 있었지만 기관 강당의 창고 한 구석에서 매일 먹을 것을 가져다주고, 약 목욕을 시키며 사랑해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물론 아이들과 현지인 선생님, 학부모들, 기관의 다른 직원들 모두 나의 이런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았고, 함께 고양이를 사랑해주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 모두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특히 기관의 경비실에서 가족들과 이사해 살고 있던 기관장 하미드는 내가 강당 옆 창고에서 새끼 고양이를 보살피는 모습이 자신의 집을 더럽힌다고 생각이 들었나보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몰랐던 나는 6월 학기가 끝난 후 방학이 시작되면서 기관에 매일 나가지 못했다. 그렇게 내가 없는 며칠 사이 나비와 코비는 결국 기관에서 매정하게 쫓겨나게 되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기관에 찾아갔지만 이미 나비와 코비는 어디론가 떠나버린 후였고, 내가 사준 집과 밥그릇은 저 멀리 버려진 후였다.
너무나 속상하고 화가 났지만 언젠가 헤어질 것을 미리 헤어진 것이라며 분하고 속상한 마음을 스스로 달랠 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두 달 동안 벼룩도 없어지고, 건강도 많이 회복하여 주먹만 하던 몸이 주먹 두 개만 해졌다는 것이다. 이제는 길 고양이들과 겨뤄도 뒤지지 않을 것이라며, 나비와 코비가 잘해내리라 굳게 믿기로 했다.
비록 2달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잊을 수 없는 생명의 힘과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와 우리 아이들, 학부모들에게 따뜻함과 감동을 주었던 나비와 코비. 힘든 고비를 넘긴 행운의 녀석들인 만큼 지금도 티플렛의 길거리를 누비며 서로 도와주며, 따뜻한 형제애 속에서 건강히 잘 지낼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