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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ha Dec 23. 2021

모로코에 간 따따 소피아 Diary #7

어느 오후, 오지랖 커피숍

   


어느 오후, 오지랖 커피숍


여유로운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느즈막히 일어나 오랜만에 나를 위한 ‘까르보나라’를 해서 ‘아점’을 먹었다.

늘 맞이하는 혼밥이지만 아직까진 즐겁고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다.

아점을 먹고 나니 벌써 12시.

아프리카 모로코의 뜨거운 해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와있었다.


'오늘은 모처럼 쉬는 일요일인데, 동네 마실을 가볼까나'


큰 맘 먹고 모자하나 푹 눌러쓰고 얼마 전 모로코 수도 '라밧(rabat)' 시장에서 산 가죽 자켓을 걸치고는

터벅터벅 책 한권과 노트를 가지고 집 앞 5분 거리에 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3층 커피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커피숍에 가고 싶어도 대부분이 1층이고 아무리 내가 외국인이라고 해도 여자였고,

때문에 커피숍 1층에 앉아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신와(중국인)’라고 수근 대는 사람들 소리에 앉은 자리가 가시방석이 되곤 했다.


헌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만의 아지트인 이곳은 티플렛(Tiflet)에 유일하게 있는 3층 옥상 커피숍이다.

사실 1층, 2층은 식당이고 그저 옥상에 테이블과 파라솔 몇 개를 가져다 놓은 것이 전부지만 나에겐 여유롭게 혼자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마실 장소 이기도 했다.


이곳 모로코에선 커피숍이 대부분 1층에 있고 남자들, 특히 아저씨 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있고 여자들은 전혀 이용하지 않는다.  (물론 모로코도 대도시는 여성들이 카페나 외부 식당 이용이 일반적이지만, 내가 살았던 시골마을 티플렛(Tiflet)에서는 여성들이 카페에 앉아있는건 동네 흉?! 슈마*였다.)
*슈마 : 모로코에서 해서는 안되는 행동, 도덕적으로 금지된 행동, 주의를 줄 때 사용

 

나 혼자 독점해서 사용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조용한 장소 덕분에

난 사람들이 없는 이 곳에 종종 커피한잔을 마시러 오곤 한다.


티플렛(Tiflet)에 있는 유일한 나만의 여가장소라고나 할까.

오랜만에 나온 일요일의 외출.

따뜻한 햇볕에 앉으니 가죽잠바 속에 땀이 송송 맺힌다.

모로코의 겨울은 실내는 겨울이고, 실외는 뜨거운 햇볕에 여름이 따로 없다.

이거 원 집 안보다 집 밖이 더 따뜻한 겨울이라니 아이러니한 아프리카의 겨울이 아닌가.

어쨌든 따뜻한 햇볕아래 달달한 ‘카페오레’ 한 잔을 시키니 여유롭고 또 여유롭다.


아~ 행복해.


그런데 이 여유로움도 오래 가진 못했다.  

으악. 여유를 즐기려는 찰나, 카페 주인아저씨가 3층 까지 친히 올라와서 아는 체를 했기 때문이다.

가끔 커피 마시러 오는 나에게 데리자(현지어)와 불어로 매번 인사를 건네곤 하는 이 아저씨.

‘오늘은 좀 과하시네.’ 라고 생각하면서도 나 역시 오지랖 넓게 불어 말하기 연습도 할 겸,

이 아저씨에게 언제 봤다고 이 얘기, 저 얘기를 풀어 놓는다.


‘2주 후면 친구가 와서 여행을 할 거라는 둥, 이번 여름에는 가족들도 온다는 둥,

그래서 다 함께 이 카페에 올 거라는 둥, 내가 이 곳에 왜 왔고 무슨 일을 하는지,

난 이일을 얼마나 좋아하고, 가족과 친구들이 얼마나 보고 싶은지,

2년 뒤 한국에 돌아가면 무슨 일을 할 건지 등 등.  

참, 이 놈의 오지랖은 타고 난건지, 자라면서 학습된 건지 영 모를 일이다. 후후.

어쨌든 덕분에 오지랖 넓은 까페 아저씨와 오지랖 넓은 나는 일요일 오후,

뜨거운 태양 아래 앉아서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 했다.


이야기의 결론은 늘 ‘언제든지 이곳에 와라. 늘 환영한다. 그리고 결혼은 이곳에서 안 할 거냐’로 끝이 난다.

모로코 사람들은 외국인만 보면 왜 이곳에서 결혼해서 함께 살게 되기를 원하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때 마다 나의 대답은 ‘인샬라(하늘의 뜻)’다. 후후후.

아저씨가 가신 후 다시 혼자가 된 난 아저씨와의 대화를 생각해 본다.


‘넌 몇 살이니?’


‘27살이요. 나이 많죠?’


‘아니, 아직 어리네. 어리지만 넌 참 강한 여자야. 혼자 아프리카에 살고, 일도 하고 있잖아. 참 대단해.’


‘아니예요. 전 강하지 않아요. 나에겐 가족들과 친구들이 필요해요.’


‘그럼, 여기서 친구들 사귀면 되잖아.’


‘그럴 수 있죠, 하지만 의사소통이 잘 안 되잖아요.’


‘왜, 지금도 이렇게 나랑 대화하고 있잖아.’


‘그치만 전 더 깊은 대화를 하고 싶어요.’


그러자 내 등을 토닥이며 이 곳에 가끔이 아니라 매일 오란다.

자기가 이야기 동무가 되어주겠다면서.  

이렇게 모로코 사람들은 나에게 지나치리만큼 관심과 호의를 베풀어 준다.

마치, 우리나라 옛날의 시골 어른들이 이방인을 챙겨주던 ‘정’처럼. 순수함의 호의.


가끔은 그 호의와 관심에 짜증을 내기도 하고 부담스럽고 의심되기도 하지만,

지금은 어쩌면 그 모든 것이 내가 마음을 열지 않아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은 보지 않고

세상에 나 혼자인 것만 같다는 바보 같은 생각의 내 안의 문제 말이다.

문득, 이 순간도, 나만의 안식처였던 이 카페도, 오지랖 넓은 카페 아저씨도,

겨울 속 따뜻한 햇볕마저 무척이나 그리워질 것 같아 아쉬움마저 든다.


고이 접어 주머니 속에 넣어두는 옛 편지처럼, 미래의 나에게 이 일기가 지금 이 순간을 전해주기를.


 

                     - 어느 따뜻하고 포근한 일요일 오후에 까페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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