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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동이 Jun 02. 2019

피아노가 좋은가요?

잊을 수 없는 첫 인상




가슴벅찬 희망을 안고 피아노를 다시 시작했지만, 피아노에 대한 첫인상은 썩 좋지 않다.

1편: 슈퍼밴드가 쏘아올린 작은 공 참고 )






어린 시절, 나는 피아노가 너어어어무 싫었다.

엄마가 들으면 ‘네가 어쩜...’과 '배부른 소리하고 자빠졌..' 같은 핀잔이 날라올 독백이지만, 누나 따라 시작한 피아노는 (대부분의 동생들이 그렇듯) 받아들어야만 하는 서글픈 운명이었다.


싫은 이유도 여러 개로 점칠 수 있는데, 우선 기억나는 단어가 '무섭지' 이다.



무섭지...

얼마나 피아노가 싫었으면 어린 아이가 무서웠을까? 하고 걱정할 수 있겠지만(감사하다), 사실 무섭지는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로 시작하는, 악보가 있는 어엿한 국민 동요이다.


국민동요 악보



"도미솔 도미솔 라라라솔 파파파 미미미 레레레도"로 끝나는 초 간단 멜로디의 동요. 첫 시간에 콩나물 악보 보는 방법만 가르쳐도 바로 칠 수 있을 것 같은 이 단순한 동요를 나는 몇개월을 쳤다고 한다. 



피아노를 한번이라도 쳐본 사람은 알겠지만, 계이름이 틀리면 그 다음으로 넘어가는 게 쉽지 않다. 똑같은 부분을 치고 또 치면서 자연스럽게 칠 수 있을 때 까지 반복하는데, 자연스럽게 치지 못할 경우 그야말로 '무한루프' 속으로 빠지게 된다. 틀리고 또 틀리는 무한루프로. 


음악은 잘치면 달콤한 선율지만, 반복적으로 틀리기 시작하면 정말 듣기 싫은 소음이 따로 없다. 

분명 엄마는 방에서 들려오는 최악의 무한루프에 지쳤을 것이고, 나를 다그쳤을 것이고(혼이라는 표현이 적합하지 않을까 합리적 의심을) 주늑 든 어린 아이는 '무엇이'를 '무섭지'로 개사해서 부를 만큼 멘탈이 나갔으리라 미루어 짐작해 본다.



하지만 대단하지 않은가

(나름 항변해 본다면)


한창 밖에서 공놀이에 환장했을 소년이 

2평도 채 안되는 좁은 공간에 매일 같이 출석하는 성실함이 있었고

주어진 곡에 안주하지 않고 개사까지 하는 진취적 센스를 타고 났으며

피아노만 치기에도 버거웠을 나이에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까지 부르는 멀티력까지 가졌을 줄이야.

:)



내 선에서는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린 시절이라 엄마피셜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사실 아무리 어려도 저 쉬운 음계를 몇 개월을 쳤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며느리 앞이라고 MSG를 너무 많이 치는 것 아니냐고 항변을 하지만 나도 저 멜로디를 "무섭지(도미솔), 무섭지(도미솔), 무서운가(라라라솔)' 라고 부를 때 원곡을 부르는 것 보다 입에 착 감긴다는 사실에 입가에 미소가 싹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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