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지 말아요
요즘 내 금요일 저녁을 TV 앞에 꼭 붙들어 놓은 프로그램이 있다. 회사 생활에 지친 귀와 마음을 음악으로 정화시켜주는 '슈퍼 밴드'
(눈은 토요일 밤 굿피플이 책임지고 있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음악 천재들의 모임답게 재방송으로 시청한 첫 회부터 범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그간의 오디션 프로그램과는 차별화된 모습이 눈에 띄었는데, 우선 참가자들 특성이 달랐다. 조금 더 'Geek' 하고 'Super' 한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노래와 춤으로 무장했던 기존 지원자에서 클래식 악기와 음악적 완성도로 둔갑한 퍼포머에게 내 불금을 맡기기에는 충분했다.
이제까지 왜 이런 천재들이 조명되지 못했나 하는 의구심과 공연자들의 숨어 있는 니즈를 파악한 제작 의도에 감탄하며 매회 레전드 무대를 관람하고 있다.
시청자의 귀와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TMI 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오디션 음악 프로그램은 개인기를 뽐내거나 숨겨진 사람을 맞추는 형식이 아니다. 개취이긴 하나 그런 프로그램은 음악적인 완성도는 조금 떨어지는 듯 하다)에서 내가 눈여겨 보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얼굴은 당연히 보는 것 아닌가?! 하겠지만, 대부분은 잘생기고 이쁜 멋짐의 얼굴을 본다면 나는 만족하는 얼굴에 집중한다. 절정의 순간, 클라이막스에 몰입할 때 나오는 찰나의 표정을 보면 나도 모르게 음악 속으로 빠져 든다. 미소를 짓는 참가자도 있고 인상을 쓰는 참가자도 있다. 각자 자신만의 표현법으로, 얼굴로도 연주를 하는 것이다. 이런 참가자들은 음악적 실력은 이미 검증됐거니와 자신감도 뿜뿜이기 때문에 훌륭한 무대를 연출할 수밖에 없다. 흔히들 말하는 '레전드' 무대도 이런 경우에 더 많이 나온다.
이번에도 출연진 중 마법에 걸린 듯한 연주자를 발견했다. 이름도 현실에 충실한 '이나우'. 독일에서 피아노 공부를 하고 있는 클래식 연주자이다. 귀염상으로 순둥순둥하게 생기기도 했지만 첫 무대에서 연주한 인터스텔라의 'First Step'과 연주시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물아일체'라는 표현이 진부하다고 느낄 정도의 몰입감과 집중력이 관객을 압도했고 심사위원과 시청자들의 탄식을 자아냈다.
TV 앞에서 아내와 손을 잡고 숨겨져 있는 보석을 발견한 기쁨을 누렸다. 귀도 호강했겠다 기분 좋게 TV를 껐는데 동시에 왠지 모를 먹먹함이 찾아 왔다.
화려한 공연 뒤에 찾아오는 공허함이랄까, 괜히 뒤숭숭하고 불안한 감정이 엄습했는데 그 이름은 피하고 싶은 '부러움' 이었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라는 명언이 있듯이 나는 이나우를 순간 부러웠고 또 한번 지고 말았다. 이상한 감정이 뇌리에 꽂혔던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2014년에 방영했던 슈퍼스타k 6 에서도 임도혁의 공연을 보고 동일한 감정을 느꼈었다. 당시 중후한 음색과 뛰어난 프로듀싱력을 가진 곽진언, 감미로운 목소리로 인정 받는 김필과 함께 셋이서 '당신만이'를 불렀는데, 곡도 훌륭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보여준 (얼굴) 표현력은 당시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말도 안되는 비교일 수 있다. 하지만 묻고 싶다.
당신은 직장에서, 일할 때 어떤 표정을 짓는가?
...
세상 어느 누구도 '직장'에서 일을 하며 황홀감을 느낀 적은 없다. 일부 몰입은 할 수 있어도 표정은 살아 있지 못하다(있으면 신고해야 한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
같은 생업인데(음악으로 돈을 벌고 일해서 돈을 벌고) 저 사람은 음악을 하면서 흥분을 느끼고, 책상에 앉아 있는 나는 설레지 못하는가? 하는 본질적 질문이 계속해서 파고 들었다.
불공평했다.
어쩌면 나는 평생 살면서 '몰입'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음악이라는 매체, 더 크게는 예술이라는 장르를 떠나온지 오래됐고 '창작'과는 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몰입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몰입할 대상이 없는 슬픔을 더 이상 TV로만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그 기회를 만들고 찾아야 했다.
거창한 연주가 아닌 소소하게라도 내 음악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내 삶에서 황홀한 표정 한 번은 지을 수 있는 축복을 누려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