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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동이 Oct 20. 2019

#1 행란한 인생을 알리다

임신 4W, 설레였던 아침



일요일 아침, 아내가 침대로 뛰어올라 품안에 안겼다.


안기는 가속도, 파고드는 위치가 어제와 사뭇 다르다. 움직임의 방향과 속도가 정확히 계산되었다고 해야할까. '나 기분 좋아', '너에게 할 말이 있어' 무언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 의도된 행동이었다.



매주 주말 아침이면 아내는 늦잠 자는 나를 깨우기 위해 다방면으로 공격(고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한다. 옆에 누워 동영상을 크게 틀어놓기도 하고, 기다리다 화가 나는 날에는 청소기로 소음 공격을 한다. 언젠가는 그 청소기로 자고 있던 나의 옷을 빨아당겨 소중한 잠옷을 찢어먹기까지 했다.



암묵적이었다가, 이제는 서로 '약속'까지 한 기상 시간은 9시.

 

말이 약속이지 몇 번의 다툼 끝에 결국 내가 손을 들었다. 30 평생 아침 6시 반이면 눈이 저절로 번쩍 뜨인다는 그녀의 말에(나는 그 시간에 일어나 보지 않아서 그녀피셜이다) 10시에 일어나겠다고 한 내 의견은 방어 논리가 약했다. 

중간 타협 시간을 찾는 게 목적이었으면 11시로 외쳐볼껄, 후회했지만 오히려 2시간 반을 양보했다는 시간 깡패에 밀려 '주말 기상 시간은 늦어도 9시' 라는 타협점을 정했다. '차라리 낮잠을 자라'는 솔깃한 당근멘트에 덜컥 알았다고 했는데, 문제는 그 후로 주말 낮에 집에 있었던 적이 없어 자동으로 의미 없는 제안이 되었다.(분명 예상하고 던진 떡밥일게다)






본인이 불리한 약속을 안 해서 그렇지 약속은 꼭 지키는 아내의 우직함을 잘 알기에, 자고 있는 날 향해 침대로 돌진한 갑작스런 행동은 이변을 의미했다. 어렴풋이 보이는 시계(나는 안경잡이다)와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빛의 양은 아직 약속한 시간이 아니었다. 


아내가 방문을 벌컥 열며, 소리를 내며, 품에 안기기까지는 3초. 

찰나의 순간에 이 모든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며 눈곱조차 떼지 않은 뿌연 시야 위로 생명을 알리는 핑크색 막대기가 보였다.



. 오빠!!!!!!, 이번에 진짜 두줄이야. 아주 선명해!!

.. 오, 대박! 어쩜 좋아. 진짜 진짜 축하해 자기야. 고생했어 그동안 정말.

. 어떻게 할까, 지금 병원 가볼까? 아.. 오늘 일요일이구나. 내일 반차 내고 들러야겠다.

.. 응 그래, 내일 바로 들러서 확인해. 이제 진짜 조심해야겠다.

. 그래야겠네. 근데 우리 언제 낳는 거지? 지금이 4주니까, 대충 40주 하면, 잉? 2월?

.. 그러네^^ 축하해. 엄마와 딸이 생일이 같겠네. 2배 축하해 줄 수 있네 (ㅋㅋㅋㅋ)

. 아 그래서 내가 저번 달에 임신돼서 오빠 생일에 맞춰 낳자고 했자나! 오빠 일부러 제대로 안 했지! 내 생일에 맞출라고!(참고로, 내 생일은 1월 중순이다)

.. 설마 그럴리가. 그게 내 맘 대로 될리가 없지. 근데 엄마와 아가랑 생일이 같으면 얼마나 좋아!! 내가 너 생일 선물 이제 따로 안 사주고 아기랑 세트로 되어 있는 것만 사줄께.(ㅋㅋㅋㅋㅋㅋ)

. 아 몰라. 운동해서 빨리 낳을거야.

.. (응?)



갑자기 나타난 빨간 두 줄에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의 생일 선물 드립을 치며 깔깔 거렸지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뱃속 생명체가 아무 일 없이 무럭무럭 자라 10개월 후에 우리 앞에 짠- 하고 나타나기 전까지, 어쩌면 이 순간이 최고로 감격적인 순간이 아닐까 싶었다. 1년 전에도 아침에 부시시 일어나 두 줄을 확인하고 같이 기뻐했고 동일한 장면이 반복되어 내 앞에 나타났지만,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니 그 때가 있었기에 더 소중한 순간이 되어버렸다. 


한참을 그렇게 알콩달콩 울다 웃다 시간을 보내며 아내가 먼저 일어났고,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잘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임신을 기대하지만 정작 임신을 준비하진 않는다. 대학을 위해 죽어라 공부하지만, 대학 생활을 준비하지 않는 것처럼. 책과 지식으로 공부한다고 알 수 없는게 결혼이고 육아지만, 사전 정보 없이 덜컥 맞이하는 새로운 환경은 당사자들에게 많은 스트레스와 부담을 안겨준다. 그리고 선배들과 지인들의 끝 없이 내려가는 다크서클과 성토는 아직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준비가 안된 이들에게는 두려움으로 다가 온다. 



행복, 심란.

애매하면서도 미묘하게 어울리는 두 단어가 내 마음 속에 콕 박혔다. 


문득 오늘따라 넓은 천장의 네모난 윤곽이 뚜렷이 들어온다. 







welcome, ba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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