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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동이 May 30. 2020

변함없는 그 사람을 떠올리세요

김달님의 '나의 두 사람' 서평



부모님을 생각하면 씁쓸함이 먼저 떠오르는 나이가 되었다. 부모님 앞에서는 아직 어린 아이이고 싶지만, 그들의 줄어드는 키와 손과 눈 옆의 자글한 주름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더 이상 ‘언제나’ 든든한 부모님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태어나고 그 부모님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었다. 누나에게 이미 조카들이 있어 내 부모님은 신생아가 그렇게 낯설지는 않지만, 아내는 맞딸이라 장인 어른과 장모님의 사랑이 가득하고도 넘쳐난다. 표정만 보더라도 배가 부를 정도다.



손주를 맞이하는 기분은 어떨까. 


자식은 내가 키워야 하기 때문에 사랑스러우면서도 양육에 대한 압박이 있지만 손자는 다르다고 한다. 일단 내 손으로 키워야 하는 부담이 없어서일까. 무엇을 해도 귀엽고, 챙겨주고 싶은 마음 뿐이란다. 몇 십년 만에 다시 만난 핏덩이 같은 아이를 보며 그들의 젊음을 추억하기도 하고, 못다한 아쉬움을 풀어내고 싶은 마음이 크리라 생각한다. 자식보다 더 애틋한 손주.


손주를 마주하는 특별한 에세이, '조손'을 소재로한 에세이를 읽었다.



 


 

조손 가정.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란 아이”



책의 도입부에서 밝히듯 저자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태어나면서부터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맡겨져 시골에서 자라게 되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태어났으니까 지금은 32살 정도 됐을 나이.


이 책은 유년기와 학창시절을 거쳐 직장을 다니는 지금까지 조부모와 있었던 일들을 세밀하면서도 덤덤하게 풀어내고 있다. 큰 이별과 아픔을 겪는 장면도, 다툼과 화해가 있는 드라마틱한 모습도 찾아 볼 수 없다. 지금도 정정하신 조부모님과의 오래된 추억과 기억들을 소소하고 담백하게 내 옆에서 이야기하듯 읊어주는 장면 묘사들이 대부분이며, 이런 디테일을 통해 가슴 깊이 담아 두었던 옛 추억을 불러 일으킨다.

   

특히 손녀와 주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주는 조부모님, 특히 할아버지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사랑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핸드폰이 고장나 친구의 폰으로 연락을 했던 손녀가 걱정되어 2시간이 넘게 떨어진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오셔서 새 스마트폰을 건네 주고 급하게 돌아가는 장면, 젊은 나이에 딸을 두고 떠난 아들에게 어렵사리 ‘고맙다’라는 메세지를 보내기 위해 밤늦도록 시도하는 모습, 다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하게 된 할머니를 위해 크고 작은 편의성 가구를 만드는 것 부터 집안 살림을 양분해서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모습까지.


연세가 들어 더 이상 공사장 일을 못하게 되는, 본인 자신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 마저 흔들리는 위태로운 상황 가운데에서도 할아버지가 보여준 이타적이고 헌신적인 사랑 덕분에 읽는 내내 눈시울을 붉히며 한 장 한 장 읽어내려갔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변함없는 사랑’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 막 태어난 귀염둥이에게 내 아버지가 있듯이, 나에게도 특별한 외할머니가 있다.

저자의 할머니처럼 아담한 체구에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 하는 것을 좋아하시고 곧 백세를 바라보는 연세에 자동차보다 대중교통을 선호하시는, ‘나의 한 사람’ 


설날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에 할머니를 찾아 뵈면 다른 어른들과 달리 할머니는 꼭 세뱃돈과 함께 적은 내용이여도 편지를 써서 봉투에 같이 넣어 주셨다. 무심코 부욱 찢은 듯한 종이 위에 옛날 분 답게 일본어와 한자가 잔뜩 섞여 있는 편지에는 항상 저의 건강과 학업 그리고 올바르게 자라라는 말씀을 적으셨다.


그에 반해 어렸던 나는 할머니의 사랑에 대한 감동보다 돈의 액수만 관심 가진 철부지였다. 그 때는 왜 그렇게 할머니의 마음을 알지 못했을까. 성인이 되고, 이제는 할머니께 용돈을 드릴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 더 이상 할머니의 손편지는 받지 못한 채, 편지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하지만 내 결혼식을 앞두고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할머니께서는 미리 준비하신 듯 조심스럽게 봉투 하나를 건내 주셨다. 


편지지에는 예전과 다름 없이 일본어와 한자가 섞여 장문의 편지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손자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할머니의 애틋한 감정과 어느 것 하나 잘 해드리지 못한 손자를 이유 없이 아껴주는 할머니의 깊은 마음을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으며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몰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명절에 처가를 가야 하기 때문에 매번 찾아 뵙지 못해 전화를 드리면, 전화기 너머로 '오지 않아도 괜찮다. 건강하게만 잘 있어라. 나는 무사히 잘 있다'라고 외치시는 할머니. 저자가 평생을 함께 했던 늙은 부모님에게 더 늦기 전에 고이 간직했던 마음을 표현한 것 처럼, 나도 이번 기회에 나의 한 사람, 할머니에게 그동안 꺼내지 못했던 감사와 사랑을 표현하고자 한다.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얼굴이 동시에 떠오르게 만드는 책, 가슴을 꽉 차게 도와주는 좋은 책을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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