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던 아이에서 못 자는 아이로
그동안 아이를 울린 적이 없었다. 엄마인 나는 예민하고 민첩하게 행동했고, 아이는 세상 순하디 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복했던 시절은 잠시 멈췄다. 잘 지속되던 수면 프로세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가 생후 6주부터 수면교육을 했다. 되도록 빨리 시작하는 것이 아이를 울리지 않고, 나와 아이가 건강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2주 정도 고생 후 아이는 곧 수면 프로세스에 익숙해져서 잘 시간이 되면 바로 잠들었다. 2주간 고생할 때도 아이가 크게 울기보다 칭얼거리는 정도였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난 6개월간 수면문제는 거의 없었다. (거의라고 한 것은 아직 밤중 수유를 끊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연말에 남편이 긴 휴가를 받았고 우리는 지방에 계시는 시댁과 친정을 다녀왔다. 평소라면 부부와 아이가 다른 침대를 쓰는데 시댁과 친정에서는 아이와 내가 한 침대에, 남편이 다른 이부자리에 잤다. 이렇게 5일을 머무르고 서울을 돌아올 때는 아이가 약한 감기에 걸려있는 상태였다. 이때부터 수면 패턴이 완전히 망가졌다. 원래 아이는 한 시간 놀고 한 시간 잤다. 졸리면 침대에 눕혀 쪽쪽이를 주면 곧잘 잠들었다. 그런데 어른들이 아이가 졸려 떨어질 때까지 놀아주시던 게 익숙해진 아이는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놀려고 했고, 부모님 댁에서 처럼 내 옆에서만 잠자려고 했다. 좋아하던 쪽쪽이를 계속 뱉으며 혼자 자던 버릇을 잃어버린 듯했다.
집에 돌아온 지 2주쯤 되던 날 밤, 아이는 졸렸지만 쪽쪽이를 자꾸 뱉어내며 잠들지 못했다. 나는 아이를 울려서라도 다시 수면 패턴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획에도 없던 ‘퍼버법’을 갑자기 강행했다. 사실 아이가 매우 순했기 때문에 좀 칭얼거리다 말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생전 처음으로 아이가 온몸으로 울어대는 것을 봤다. 세상이 떠나가라, 온몸으로 소리를 지르며, 눈물 콧물 다 흘리고 얼굴은 빨개져가며 울었다. ‘퍼버법’에서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아이가 울다 지쳐 잠들 때까지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고집부려도 해결되지 않은구나를 깨닫고 혼자 잠드는 방법을 알게 된다고. 그러나 나는 15분도 참지 못했다. 문 앞에서 손톱을 뜯고 마른 세수를 수십번 하다가 아이를 안았다. 나에겐 15분이 억겁의 시간이었고 아이는 내가 안아 들은 이후로도 30분을 더 울었다. 그리고 침대 가까이에만 가도 자지러지게 울었다.
나도 같이 울고 싶었다. 순하디 순한 아기가 이 전에는 듣지 못했던 울음소리를 내며 광광 울어 재끼자 내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육아에 자신감이 사라졌다. 아이에게 무척이나 미안했다.
물론 지금은 알고 있다. 아이 우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일관’되고 ‘단호’하게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아이를 훈육하는데 미안해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수면 교육은 아이가 졸릴 때 혼자 힘으로 잠드는 것을 가르쳐 주는 행위이다. 이후에는 밥을 스스로 양껏 먹는 식사 교육, 화장실에 가서 소변과 대변을 보는 배변 교육이 잇따른다. 먹고, 자고, 싸고 이 세 가지를 교육하는 셈이다. 사실 아이는 잘할 수 있으므로 부모는 가이드를 잘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중요한 것이 일관되고 단호하게 가이드를 주는 것이다.
나는 그리 단호하지 못한 부모다. 더 정확하 말하자면 아직까지는 무언가를 단호하게 행동할 필요를 많이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우선은 아래와 같이 해보려고 한다.
아이가 칭얼거리면 3분 후에 반응한다.
그 이후에도 칭얼거리면 2분씩 연장하며 반응한다.
낮에 충분히, 잘 먹인다. 현재는 모유수유를 하므로 양쪽을 모두 먹이려고 시도해본다.
나는 아이에게 좋은 수면을 선물할 수 있을까. 오늘은 부모의 자질에 대해 생각하고 자책했으며 많이 슬펐다. 내일의 수면은 좀 더 나아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