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와 남해바다의 절경이 흑백 필름으로 펼쳐서 한편의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영화 <<자산어보>>는 신유박해로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이 바다 생물에 매료되어 책을 쓰는 과정과 바다 생물에 관한 한 모르는 것이 없는 청년 어부 ‘장창대’가 성리학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을 펼치고자 바다가 아닌 뭍으로 나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조선 후기의 사회적 부조리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로 대변되는 기술 중심의 21세기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았음에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각자의 위치에서 발버둥치며 할 일을 해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음에 큰 위안을 얻는다.
코치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 작게 보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개인이나 조직이 스스로 방법을 찾도록 도와주는 일이며, 크게 보면 개인에게는 자아실현을, 조직에게는 조직의 미션 달성을 지원(support)하는 일이다. 코치의 눈으로 영화를 보면서, 두 주인공인 약전과 창대가 서로의 감정과 삶의 가치를 보다 일찍 알아주고 그것을 마음이 아닌 말로 표현해 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면 서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거래'의 동등한 주체로서 그야말로 훌륭한 파트너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영화의 두 주인공인 약전과 창대 외에도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에서 받아적고 싶을 만큼 울림이 큰 대사들이 많았지만, 라이프와 비즈니스 코치로서 특히 가슴 깊이 와 닿았던 대사를 짚어보며 코치로서 성찰을 기록해본다.
“주자의 말은 참으로 힘이 세구나”
영화에서는 서양의 문물과 사상을 배척하며 과거의 성리학에만 매몰되어 있는 사대부의 행태를 꼬집으며 “주자의 말은 참으로 힘이 세구나” 라는 대사가 나온다.
코칭을 하다 보면, 자신만의 신념이 강력하게 뿌리내려 있는 경우를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면,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나를 존중해 줘야 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면 나는 유능해야만 해” 라는 것들이다. 이와 같은 당위적 사고를 알버트 엘리스(Albert Ellis)라는 학자는 비합리적 신념이라고 했는데, 분노와 같은 부정적 감정은 이런 비합리적 신념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자신, 타인, 세상에 대한 당위적 사고에 사로 잡힌 나머지, 맹목적인 관념 속의 ‘주자’가 나를 지배하며 괴롭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만하다.
“호기심 많은 학자와 어부, 서로의 벗과 스승이 되다”
사실 두 사람은 양반과 천민이라는 신분, 노인과 청년의 나이, 글을 쓰는 학자와 몸을 쓰는 어부라는 직업 등 여러 면에서 극과 극에 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을 이어주는 것은 호기심이었다. 비록 그 대상이 바다생물과 성리학이라는 것이 달랐을 뿐.
국어사전에 보면 호기심은 ‘새롭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거나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 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고,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늘어갈수록 호기심은 줄어든다. 가족과 직장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이 너와 내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틀리다 라고 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그 밑바닥에는 상대방과 세상 일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 ‘내가 좀 알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호기심은 사라지고 선입견과 판단의 눈으로 상대를 보게 된다.
가족과 직원, 고객과 좋은 관계를 만들려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것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마치 처음 세상을 만난 어린 아이의 눈으로 말이다. 그러다 보면, 약전과 창대가 그랬듯이, 벗을 깊이 앎으로써 나 자신이 더 깊어진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까.
“질문이 공부야”
질문은 호기심으로 이어진다. 한 평생 물고기를 먹기만 했지, 자세히 본 적도, 잡아본 적도 없는 선비는 수많은 질문을 어부에게 쏟아낸다. 무슨 질문이 그렇게 많아요? 하는 창대의 하소연에 약전은 “질문하지 않고 받아 외우는 공부만 해서 성리학이 그 모양이 된 거야” 라고 대답한다.
팀 쿡 애플의 CEO는 “인간 같은 AI보다 컴퓨터처럼 생각하는 인간이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검색엔진과 인공지능 스피커에게 궁금한 것을 묻고, 컴퓨터는 맞든 틀리든 결과값을 내놓는다. 이처럼 컴퓨터는 여전히 답을 내놓는 기계이다(아직까지는 그렇다). 컴퓨터처럼 생각하는 인간이란 아마도 질문하는 능력을 상실한 인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 코칭 1세대인 박창규 코치는 코칭은 사람에 대해 물어보는 ‘인문(人問)학’이고, 서로 묻고 배우고 성장해가는 학문(學問)이라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질문은 내가 궁금한 것을 묻지만, 코칭에서 질문은 코치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함이 아니라 클라이언트가 자신의 가치, 강점, 잠재력과 같은 자신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는 것을 묻는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과정에서 클라이언트는 이슈에 대한 관점이 전환되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질문과 대답은 꼭 코치와 같은 상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니, 지금이라도 셀프코칭을 통해 나에게 의미있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면서 진짜 공부를 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