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HATEVER Jan 17. 2017

광고와 브랜딩 사이

얼마 전, 유명한 광고계 선배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광고는 무조건 크레이지해야 해." 그만의 광고관이었다. 일정 부분 동의했지만, 일정 부분 동의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듯 말한 그의 태도가 며칠을 두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불편함은 고민으로 이어졌다. '광고는 크레이지해야만 하는가.'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을 크레이지 한 크리에이티브로 자극해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 그 브랜드와 제품을 위한 최선일까. 그렇다면, 광고 없이도 사랑받는 수많은 제품들은 무엇인가. 자극적이지 않은 최소한의 커뮤니케이션으로도 인기가 높은 브랜드는 무엇인가. 소리 지르지 않고, 자극하지 않고 브랜드를 사랑받게 하는 것은 광고와는 다른 영역인 것인가.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딱 분리시켜 말할 수는 없겠지만, 자극을 동원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인위적으로 끌어당기는 것이 광고라면, 그것 자체로 매력이 있어 자극 없이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것이 브랜딩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갈수록 스마트해지고 수많은 정보들을 유연하게 다루는 현대인들에게는 외면이 화려한 광고보다는 내면부터 탄탄한 브랜딩이 더 본질적인 설득의 소구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브랜드의 기본이 탄탄하다면 브랜드의 맥락 아래에서 광고를 생각하면 될 것이고, 브랜드의 기본이 탄탄하지 않다면 광고가 브랜드의 철학부터 함께 고민하는 시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크레이지한 크리에이티브는 브랜드 맥락에 부합한다면 선택할 수 있는 길 중에 하나일 것이다. 물론 광고를 '대행'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톡톡 튀는 다른 관점의 시각을 끊임없이 어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고를 믿지 않는 이 시대에, 미친 크리에이티브가 높은 판매량으로 직결되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에, 미친 광고만을 고집하고 그것을 강요하는 것은 결코 세련되지 못하다. 


몇 년 전부터 광고계에 '디지털'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기술과 접목되어 새로이 시선을 끄는 광고들이 광고제에서 상을 받고 트렌드처럼 떠오르고 있다. 나는 이런 시대일수록 브랜딩과 브랜드의 맥락이 더 중요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체가 다원화되고 콘텐츠 소비가 마이크로화 될수록 브랜드의 기초철학은 더욱 탄탄해져야 하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노출되는 브랜드를 하나로 엮을 수 있는 맥락이 존재해야만 한다. 간혹, 대형 광고 에이전시에서 디지털 에이전시와의 협업을 추구하고 있는데, 나는 이보다는 디지털과 앱을 다룰 줄 아는 탄탄한 브랜딩 회사와의 협업이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정하고 로고와 앱을 만드는 브랜드의 기초공사부터 광고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고민이 함께 시작되면 좋겠다. 브랜드의 맥락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에서 비주얼과 카피도 함께 출발하는 것이다. 크레이지할 것이냐. 아니면 이성적일 것이냐. 는 이런 맥락 위에서 결정되는 문제일 뿐이다. 어떤 브랜드와 제품은 이미 그 자체로 광고가 될 만한 퀄리티를 갖고 있기도 하다. 이럴 경우, 소리 지르는 것이 역효과가 될 것이다. 소개하고, 조금 욕심을 부린다면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그 철학을 간결하고 분명하게 얘기해 주면 될 것이다.


"광고는 무조건 크레이지해야 해."라는 다소 편파적인 시각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그 불편함이 내 업에 대한 생각을 다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광고'라는 콘텐츠가 좋아 시작한 일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브랜드를 살리기 위함'이라는 목표점을 향해 매일매일 나아가고 있기도 하다. 그런 목표점까지 가는 수없이 많은 길들 중에 누군가는 하나의 길만을 고집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 길을 잘 아는 그에게 강력한 무기일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은 하나의 길뿐이고 그 길만을 고집하는 것은 이제는 위험하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길'을 택하기 전에, 브랜가 걸어온 과거의 맥락부터, 브랜드가 나아가야 할 목표점을 먼저 바라보고 싶다. 그가 이 글을 보지는 않겠지만, 생각을 다질 수 있는 태반을 제공했기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