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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민 NIRVANA Jun 26. 2018

조금 더 대중과 친숙해진 박훈정

영화 <마녀>


박훈정 감독의 네 번째 연출작 <마녀>가 개봉한다.

언더커버라는 소재를 영리하게 가져다 쓴 <신세계>라는 걸축한 데뷔작 이후로 박 감독은 갈짓자 행보를 이어왔다. 전래동화를 연상케 하는 <대호>는 10퍼센트쯤 모자란 느낌이었다면 직전 연출작인 <브이아이피>는 방향을 잘못 잪은 느낌이 컸다. 어떤 면에서는 박 감독은 대단히 실험적인 시도를 좋아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CG로 산군을 구현한 <대호>도 그랬고,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계획 망명이라는 소재를 활용한 <브이아이피>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그는 안주하기보단 매 연출작보다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 면에서는 제법 괜찮은 감독이 아닐까. 다만 <브이아이피>가 기대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해 의기소침해 지지 않았는지 염려되었는데 그 사이에 (매우 빠른 속도로) 새로운 연출작을 들고 나왔다. 

이번 작품 <마녀>는 이전의 그가 연출한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톤을 갖고 있다. 굳이 말하자면 대중에게 조금 더 친숙해진 태도로 바뀌었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영화 <마녀>는 서브컬쳐에선 자주 차용되는 이른바 '디자인 차일드'라는 소재를 가져다 쓴 SF와 액션, 그리고 미스터리 스릴러가 혼재하는 하이브리드 장르다. '디자인 차일드'는 어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과학기술과 유전자 조작을 통해 범인의 능력을 뛰어넘는 초인적인 신인류를 개발한다는 설정으로, 허리우드 영화나 일본의 만화/애니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단골 메뉴인 반면에 국내 창작물에서는 좀처러 활용되지 않았던 소재다. 기술적인 부분도 있겠고, 리얼리티를 선호하는 국내 관객의 정서를 감안하더라도 선뜻 도전하기 어려운 소재인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번에도 박 감독은 자신의 장기(?)를 살려 실험적인 시도를 했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사실 영화의 플롯은 그다지 새롭다고 느낄 요소는 거의 없다. 앞서 말했듯 온갖 서브컬쳐 계열 창작물에서 사골처럼 우려먹던 소재인 탓에, 오히려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찾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박 감독도 새로움보다는 클리셰를 적극 활용한 것 같다는 인상이다. 흔히들 클리셰를 나쁘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장르 영화는 클리셰를 떼어놓고는 만들기가 매우 어렵다. 그리고 클리셰는 잘만 활용하면 상당한 장점이 되기도 한다. 굳이 긴 설명을 하지 않아도 클리셰를 통해 관객들에게 빠르고 명확하게 정보 전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영화 <마녀>는 그런 면에서는 지나치게 친절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예측 가능한 전개인지라 사실 이야기 자체의 매력은 그다지 크지 않다. 하지만 이 영화의 장점은 꽤 개성이 강한 캐릭터들을 구축했다는 데 있다. 솔직히 한국의 장르 영화는 동어반복도 많아서 개성이 강한 캐릭터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물론 최우식이나 박희순이 연기한 인물들은 다소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이긴 하다. 그럼에도 영화 안에서 그들의 존재감은 꽤 묵직했다. 무엇보다 기존 한국영화들과는 달리 여성 캐릭터들의 활약이 남성 캐릭터 못지 않게, 아니 오히려 더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했다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다. 실제로 극을 끌고 가는 인물들은 모두 여성이다. 주인공인 자윤을 비롯해서 자윤의 인간성을 유지하는 데 바로미터가 되는 인물도 의붓어머니이고 대척점에 있는 악의 축 또한 여성(조민수)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와이어 액션을 최대한 배제했다는 것이다.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지만 그들이 펼치는 액션의 동선은 이전의 영화들과는 사뭇 다르다. (직접 극장에서 확인하시라) 특히 마지막 10여 분에 걸친 액션씬은 꽤 괜찮다.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김다미'라는 뉴 페이스를 발굴하여 성공적인 데뷔를 치르게 했다는 데 있다. 마치 김고운의 다른 버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김다미는 향후 출연작에서 어떤 활약을 펼칠지 사뭇 기대가 크다. 

정리하자면, 영화 <마녀>는 걸작은 아니지만 팝콘 무비로서의 기능을 훌륭하게 소화한 오락영화라는 점에선 이견의 여지가 없다. 개봉일은 내일, 액션 영화의 갈증을 느끼는 관객이라면 가까운 극장을 방문해보시라고 권한다. 우리도 이제 이런 영화를 만드는 날이 왔구나, 하는 감회를 느낄 것이다.



팝콘 무시지수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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