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브리스>
여기 이별을 준비하는 한 부부가 있다. 이미 그들에겐 따로 만나는 내연 상대도 있다. 한 가지 걸림돌이 있다면 둘 사이에 낳은 아들 알로샤. 애틋한 감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남아있지 않은 두 사람은 히루 빨리 갈라서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아들 알료샤의 거취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어느 날 제나와 보리스, 두 사람은 알로샤의 양육을 서로에게 미루며 설전을 벌인다. 공교롭게도 그 광경을 아들 알로샤가 목격하게 되고 다음날 알로샤는 홀연히 모습을 감춘다. 자발적인 가출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유괴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화제작 <리바이어던>의 감독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의 신작 <러브리스>는 이렇게 시작한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현대 사회의 어두운 민낯을 가감없이 드러내보이는 그의 스타일은 이번 작품에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작중에서 제나가 내연남 안톤에게 불우했던 성장기를 고백하면서 자신은 '사랑'을 알지 못했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제나는 과거 자신의 엄마가 그랬듯이 하나뿐인 아들 알료샤에게 따듯한 모성을 베풀지 않는다. 다그치고 억압하며. 어쩌면 남편 보리스의 모습을 아들에게서 발견하고 더욱더 매몰차게 대하늕지도 모른다. 그것은 알료샤의 잘못이 아님에도 그 혹독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인가, 제나가 안톤에게 담담히 고백하는 그 대목은 마치 냉담했던 엄마를 비난하지만 한편으로 자신 또한 그런 엄마를 닮을 수밖에 없음을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둣한 인상을 준다.
이후에, 알료사가 사리지고 등장하는 구조전문기 이반의 역할은 자못 흥미롭다. 그는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전혀 감정이입을 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에만 집중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은 지점이기도 한데, 알료샤의 행방을 찾기 위해 참고사항을 묻는 장면이 나오는데 제나의 애매한 대답이 나올 때마다 그는 조소어린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말을 따라한다. "~같습니다." "~같습니다." 이러한 대답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제나는 자신의 아들에 대해 명확히 말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앞서 안톤에게 성장기를 고백하며 비난했던 자기 엄마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대목이다. 남편이자 알로샤의 부친 또한 거기서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어쩌면 이들 부부는 갑작스러운 알료샤의 부재로 이혼이 늦쳐지는 것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현대 사회에서 사랑은 사전에만 등재되어 있는 신기루 같은 단어인지도 모른다. 서로와 서로, 많은 사람들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지만 그 안에는 사랑이나 호감 같은 감정적인 부분보다 실리를 따지는 이해관계가 더 우선시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 그것은 연인 관계나 동료 사이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손에 잡히지도 눈으로 볼 수도 없는 환상종이 되어가고 있다. 야속한 현실이지만 사랑이 부재하더라도 관계를 견고히 유지하기란 그렇게 어렵지 않은 세상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동료란 이름으로, 친구라는 이름으로, 부부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관게를 맺고 있지만 그것을 지탱하는 힘은 사랑이나 우애 따위가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이해관계라는 점을 감독은 날카롭게 질타하며 관객들에게 물음을 던진다. "당신은 사라을 본 적이 있는가? 우리 삶에서 정말로 사랑은 필요한 것인가?" 한순간에 타오르는 감정은 아련한 추억의 대상으로 남아버리는 게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아닌 다른 많은 사유로 관계를 유지하고 커뮤니티를 지탱할 수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사랑은 남아있는가? 사랑은 이제 사치스러운 감정으로 전락해버린 것일까.
감독은 지나칠 정도로 사실적인 전개로 영화를 끝맺음으로써 그 질문의 답을 하는 것 같다.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라고. 너무 잔인한 결말이라서거 아니라 딱히 그것을 부정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굉장히 아리게 다가온다.
반감을 갖고 반론을 내놓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영화를 보고 그 질문에 답해보기를.
#브런치 #무비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