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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 Tak Lee Aug 13. 2016

역사 왜곡? 그 이유 있는 변명

콘텐츠의 역사 왜곡 논란에 대한 본질은 따로 있습니다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


인천 상륙작전, 덕혜옹주, 고산자 대동여지도... 구르미 그린 달빛


    최근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는 콘텐츠들이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fact + fiction의 합성어인 faction 장르의 유행은 비단 최근의 일은 아닙니다. 역사적 이야기를 소재로 삼는 콘텐츠는 오랜 과거부터 있어왔고, 대중의 공감과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유용한 전략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대두되는 논란이 있었습니다. 바로 역사왜곡 논란입니다.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이야기 속 캐릭터를 통해 메시지 전달합니다. 캐릭터에 집중하다 보면, 역사에는 자세히 기록되지 않았던 사랑, 좌절, 극복 등의 구체적이고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캐릭터의 입체성을 위해 필요합니다. 그리고 단순히 디테일한 극적 사건을 추가하는 것을 넘어, 엔딩마저도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수정되곤 합니다.


 역사적 사실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다는 것은 누구에겐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자칫 대중에게 잘못된 역사적 사실과 관점을 심어 줄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그래서 어떤 역사적 배경의 콘텐츠가 사회에서 회자될 때 '잘못된 역사적 사실 혹은 진실'이란 지적은 항상 언론에 등장합니다.



천한 지도꾼과 조선의 국모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 포스터, 김정호는 정말 천민이었을까요?


 얼마 전 예고편이 공개된 대동여지도란 영화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동여지도의 제작자 고산자 김정호의 일생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의 주된 줄거리는 '자신의 미천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신념으로 백두산을 8번이나 오르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대동여지도를 제작하게 되고, 이는 나라의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건드려 호된 옥고를 치르게 된다'입니다.  

 그러나  '개인이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대동여지도를 제작하였고, 국가는 그런 위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박해하였다'는 역사적으로 틀린 내용입니다. 이미 역사학계에서 대동여지도는 나라의 지원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또한 대동여지도는 한 명이 직접 발로 뛰어 만든 게 아니고, 기존에 나온 지도들의 취합, 개량하여 여기에 실사 측정을 더한 집단 창작물이라는 설이 정설입니다. 김정호의 신분 역시 여러 고관대작들과 교류를 하였다는 사료를 보면 천출이 아닌 나름 양반가의 자제로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미연씨의 미모만 눈에 들어오던, 드라마 명성황후 


 좀 예전 일이긴 하지만 한때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유행어를 낳은 명성황후라는 드라마 그리고 이어진 뮤지컬은 어떤가요? 명성황후의 지혜로움과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일제 앞에서의 굳센 기개는 많은 대중들에게 감동과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료를 토대로 한 명성황후의 실제 모습은 우리의 통념과 다릅니다. 명성황후가 조선의 실력자가 되자 그녀의 외척들은 득세하여 조정의 기강과 나라의 재정을 어지렵혔고, 명성황후 본인 역시 막대한 국고를 사치와 세자의 건강을 비는 무속행위에 탕진합니다. 마지막 죽음 역시 영화처럼 당당한 국모로써의 모습이 아닌, 궁녀들 속에 숨어 도망가다 일본 낭인들에게 잡혀 최후를 맞이합니다.



콘텐츠 제작자는 국사 선생님?... 정작 중요한 본질은


 앞서 사례로 언급한 것처럼 콘텐츠의 역사왜곡 논란이 왜 생길 수밖에 없는지 일정 부분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역사왜곡의 사전적 정의는 역사를 사실과 다르게 해석하거나 그릇되게 함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저는 반론하고 싶습니다.  콘텐츠가 왜 역사를 사실과 부합하게 해석해야 할 의무를 져야 할까요? 콘텐츠 창작의 근원은 인간의 상상력입니다.  창작의 자유가 특정 소재의 다룰 때 제약받는다면, 창작자가 기획하고 의도한 창작물이 제대로 나오기 어렵습니다. 분명 대중에게 영향을 끼치는 콘텐츠 파급력을 고려할 안 할 수도 없지만, 대중들의 올바른 역사 교육과 역사의식 확립은 콘텐츠가 아닌 국가의 역사교육 정책입안자와 실행자들의 책임과 몫이 아니던가요? 


 최근 콘텐츠의 역사왜곡 논란의 본질은 콘텐츠가 대중에게 그릇된 역사 지식을 심어 줄 수 있다는 논의 자체가 아니라 , 대중들이 역사 콘텐츠를 필터링 없이 무 비판적으로 수용할 만큼, 우리 사회 역사교육의 체계와 역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적 배경에서 영감을 얻어 자유롭게 창작이 가능했기에 서구의 판타지 장르가 가능했고, 이는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최근에는 왕좌의 게임 등으로도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 누군가 중세 유럽의 봉건 제도과 기사도의 왜곡을 논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요? 콘텐츠는 콘텐츠로써 받아들여야지 교과서가 아닙니다. 대중들의 역사교육 책임을 콘텐츠로 전가하는 행위는 결국 창작산업과 교육정책 모두에게 해악입니다.


중세시대를 모티브로한 다양한 콘텐츠는 결국 서양 판타지 세계관을 완성합니다 




역사, 하드코어 암기과목을 넘어 고 부가가치 콘텐츠로  


 많은 학생들 그리고 수험생들에게 역사는 하드코어 암기과목으로 불립니다.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시기와 배경 그리고 결과를 요약하여 외우는 것이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과목입니다. 하지만 역사는 그런 사건의 총집합으로 쉽게 이해될 수 없습니다. 역사는 결국 인간들의 상호작용과 관계이며, 사람 즉 캐릭터의 중심으로 봐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빠진 무미건조한 사건 중심의 역사 교육에 실증을 느낀 대중들이 역사 배경의 콘텐츠에 더 쉽게 빠지고 열광하는 이유는, 그간 이뤄진 역사교육 시스템이 대중의 니즈와 관심을 충족하는데 실패했다는 반증일 수도 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픈 '반도의 흔한 역사 시험 문제'


 바야흐로 콘텐츠 시대입니다. 디바이스와 플랫폼의 발전과 진보 속에서 콘텐츠는 더욱더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콘텐츠 영감의 공급원으로써 역사적 자산 역시 그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역사와 콘텐츠 이 둘의 상호작용은 앞으로도 더욱더 빈번할 것이고, 강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둘은 사람의 욕망, 감정 그리고 통찰을 기본으로 하는 그 공통된 속성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율적 창작의 결과물인 콘텐츠가 사회에서 요구되는 기본적 역사 소양 교육을 대체할 순 없습니다. 콘텐츠는 역사 교육의 보조적 역할을 할 뿐, 올바른 대중의 역사 인식과 소양은 시대의 흐름에 맞는 올바른 역사 교육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습니다.


 콘텐츠가 역사왜곡의 논란을 넘어서 창작자의 역사적 상상력으로만 온전히 평가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를 만드는 출발이 기출문제 암기가 아닌 흥미롭고, 입체적인 우리의 새로운 역사교육 시스템이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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