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심은 수세미 모종이 자라서 암벽 등반을 하더니 울타리를 타고 노란 꽃을 피웠다. 모종 세 개를 심어 도깨비방망이만 한 수세미가 열다섯 개 정도 열렸으니 하나에 다섯 개의 수세미가 열렸다. 노르스름하게 익은 수세미가 하나 보이기에 잘라서 삶았다. 까만 씨가 백 개쯤 들어 있어 패대기를 쳐야만 했다.
빨랫줄에 널어 햇볕에 뽀얗게 말리니 까슬까슬한 천연수세미 다섯 개가 만들어졌다. 내구성은 좀 떨어져도 다 쓴 후에 버릴 때마음이 편하다. 자연식물식을 하는 딸이 원해서 심은 수세미인데 저 정도 양이면 딸이 몇 년을 써도 충분할 것이다.
올해 농사 중 수세미가 제일 풍년이다.
아래의 줄기가 잘렸는데도 자라는 신기한 수세미
옆밭의 주인이자 나의 예전 동료인 부부가 어제 전화를 했다. 건축박람회에서 돌아오는 길이라며 내년 봄에 집을 짓기로 상담 예약을 신청했다고 한다. 그들은 땅을 산 지 6년 만에 집을 짓기로 결정한 것인데 우리는 그동안 옆밭에 해마다 고구마, 감자, 옥수수, 땅콩, 호박을 심어 잘 먹었다.
수세미가 달려 있는 돌담도 옆밭에 있는 것인데 내년부터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작물들은 심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집 근처에 노는 밭이 없는 건 아니라서 이웃에게 부탁하면 땅을 빌려 농사를 지을 순 있다. 남편이 땅콩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적극적으로 알아볼 것이다. 우리 마당에 있는 작은 틀밭 다섯 개에는 쌈채소와 열무나 얼갈이를 심고 나면 고추 심을 자리 밖엔 없다.
그런데 옆밭의 잡초 때문에 남편은 이번 봄에 충전식 예초기를 사서 풀을 깎았다. 집을 지을까 말까 망설이는 옆밭주인의 결정을 기다리다 못해 샀더니 한 해 써보곤 끝이라며 남편은 쓴웃음을 지었다. 좁은 창고에 둘 데가 없다는 이유로 장비를 늘이는 것을 반대했던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주말 주택으로 사용할 집을 짓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결정인지 지어본 입장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건축비와 그 밖의 비용이 끊임없이 들어가고 완공해서 입주까지 수많은 결정과 어려움이 있을 텐데 마음이 급해진 옆밭 부부는 보름 뒤의 주말에 우리를 만나러 시골집으로 오기로 했다.
시공기술사인 남편의 자세한 조언을 듣기 위함인데 신중하고 꼼꼼한 남편은 아마도 옆밭에 새 집이 지어질 때까지 가장 충실한 현장 감독이 될 것이다. 나는 커피 마시러 슬리퍼를 신고 갈 수 있는 옆집이 생길 참이어서 심심하던 시골살이에 즐거움이 더해질 예정이다. 청소가 취미인 동료가 두 집 살림하려면 힘들 텐데 나처럼 벌레나 거미줄을 봐도 가끔 치우는 정도의 대범함이 시골에서는 필요하다고 말해주곤 한다.
호박 모종이 아까워서 옆밭에도 군데군데 심었더니 노랗게 늙은 호박이 열 개나 달려서 평상에 주르륵 늘어놓고 왔다. 호박 수프, 호박죽, 호박전으로 만들려면 품이 많이 드는 재료라 일단 한 개만 가져왔다.
팔이 아프도록 긁어야 맛볼 수 있는 맛있는 호박전
귀촌 카페에 나이가 드니 면역력이 떨어졌는데 뭘 먹으면 좋아지는지 질문이 올라왔다. 많은 댓글에서 흑염소나 홍삼 또는 종합비타민과 여러 가지 영양제를 추천하였다. 식습관과 운동으로 건강이 좋아진 나는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통곡물 위주의 건강한 채식과 적당한 운동의 생활화 그리고 충분한 휴식이면 피로를 이기는 체력과 더불어 면역력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암, 당뇨를 이겨낸 저의 건강 비결입니다.
비염과 햇빛 알레르기도 호전되었어요.
축축 처지던 무기력함과 뭘 해도 금방 지치는 저질 체력이었던 내가 이제는 활력 넘치는 몸으로 바뀌어 즐겁게 일상을 지낸다. 이렇게 변화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마음도 무척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완벽하게 식단과 운동에 적응하여 가볍고 산뜻한 몸과 마음으로 즐겁게 일상을 보낸다. 병이 코 앞에 닥쳐오니 어쩔 수 없이 좋아하던 탄수화물을 줄이고 그토록 싫어하던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여러 운동을 전전하다가 요즘은 헬스장에서 근력운동을 다섯 달째하고 있다. 주 2회 PT만 하는데도 다른 운동을 할 때보다 운동 효과는 가장 확실한 것 같다. 식후에 실내자전거를 타는데 텐션 레벨을 최고로 올려 페달을 돌릴 때면 다리 근력이 향상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그 외에도 집에서 유튜브를 보며 층간 소음 없는 운동으로 상체를 움직이는 맨손체조 영상이 있어서 관절과 발바닥에 무리 없이 가볍게 할 수 있다.
이제는 식후에 바로 운동을 하는 습관이 들어서 상황에 따라 걷거나 실내자전거를 타거나 가벼운 율동으로 움직이고 나면 소화가 되고 당이 떨어져서 산뜻한 컨디션으로 돌아오는 기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옆에 누가 있거나 말거나 식후엔 바로 운동을 한다. 이렇게 변하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