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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kpark Jul 17. 2023

친구/아버지가/돌아가셨다...

우리의 우정 그리고 삶.

알고는 있었다. 브런치 스토리. 항상 곁눈질로 대충 읽어 보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작가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았고, 왠지 나름 열심히 살아온 이 즈음.. 반백 년. ㅠㅠ

무언가 내 마음을 담담하게 기록하고 싶은 최근이다.

영어공부를 하면서, 첫 글로 무엇을 올릴까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그래, 첫 글은 오늘 있었던 일을 쓰는 게 맞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냥 일기 수준의 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내 맘이 닮긴 일기.



남자 셋

나/상법이/승민이 우리 셋은 어릴 때부터, 한동네에서 초중고를 같이 다녔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38년 전 국민학교부터였다.(수업 끝나고 운동장 흙바닥에서 축구하며 놀다가 오후 5시가 되면 갑자기 애국가가 흘러나오던 시절말이다.). 서울인데 신림동이라서 그런지, 동네 놀이터는 녹슨 그네와 시소 몇 가지였고, 놀이터 뒤에는 덜 자란 풀숲 떼기 공터가 큼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엄마가 "상법아! 밥 먹으러 들어와라. 금방 해진다~." 할 테까지 공 차고, 다방구도 하고...  

때로는 공터에서 감자/고구마까지 구워 먹고 그랬다. (지금도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우리를 모르는 다른 사람들은 뻥치지 말라고 하는데. ㅎㅎ 뻥은 대충 치는 거지 구체적으로 치기는 힘들다. 저만 그리 생각하나요? ^^;


아무튼 한동네에서 부모님들도 서로 알고, 부모님들이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는 집이 있으면 친구네 집에 가서 점심이던 저녁이던 얻어먹기 일쑤일 정도로 한동네에서 커온 뽕알(?) 친구들이었다.

특히, 우리 집이 그랬다. 겨울 저녁 6시 즈음 해가 질때즘에도 우리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 8시~9시쯤 되어야 중고등학교 누나들 그리고 부모님들이 들어오신 것으로 기억한다. 형광등도 기억력을 잃었는지 여러 번 깜빡깜빡하면서 켜졌던 우리 집. 그래서 그런지 아무도 없는 추운 집을 어린 나는 미리 들어가기 싫었던 것 같다. 더 하다 보면 내 이야기가 도배가 될까 봐 여기서 그만. ==333


우리는 국민학교 이후로 중학교, 고등학교는 각자의 성적/진로 등으로 예전만 치는 못했으나, 같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가끔 보고 안부 묻는 사이로 변했다. 마치 오랜 부부가 말수가 주는 것처럼. ㅎㅎ

그렇게 각자의 대학교 각자의 전공으로 대학 1년을 보내고, 우리는 우연한 기회에 다시금 예전처럼 친해지게 되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고자 한다.)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몇 달에 한 번 을 보더라도 불편하거나 어색함이 전혀 없는 사이, 이때부터 우린 암묵적 찐 친구가 되었다고 감히 선언할 수 있다 (나만 그런가? ㅎㅎ)


#7/11(화)


"아버지 돌아가셨다. 신촌세브란스에 빈소 아홉 시 반까지 마련할 거 같다. 오늘부터 삼일장이야"

저녁 7시 쯤 이었다. 진동이 울리며 열어본 카톡. 상범이의 문자다.
나를 포함한 소위 불X친구 3명의 단톡방 문자를 보고. "아...." 밖에 순간 할 말이 없었다.
"그래 니가 제일 착잡하겠다.수고하고, 어머니 너무 무리하시지 않게 니가 돌봐드려, 내일 오후에 가마". 잠깐이었지만, 가슴이 턱 막히는 느낌. 길지는 않지만, 먹먹한 느낌...그리고 생각나는 단 한 사람.

24년째 혼자 지내지는 우리 엄마가 더 생각이 나서였을까...

승민이와 카톡을 했다.
"야! 내일 몇시에 볼래? 장례식장 앞에서"

"글쎄 난 상관없다. 요사이 남는게 시간이다. ㅎㅎ"

갑자기 전화가 왔다. 카톡을 하다말고 온 승민이의 전화다.

"승민아 상법이 아버님 왜 돌아가셨니?"

"몇년전 폐 무슨 수술을 하고 괜찮으셨는데 최근에 않 좋아 지셨나봐"

(순간 허걱 하는 느낌 이었다. 내가 몇년간 이렇게 살았구나... 바쁘다는 핑계로 말이야..)

"아. 그랬고만...그래.그럼 4시에 장례식장 앞에서 보자"

"그려 알았어!"


#7/12(화)

오후 4시에 장례식장 앞에서 보기로 한 승민이가 갑자기

"야! 나 오늘 반차냈으니까 12:30분까지 델러 와라"

"야 미친X아! 병원앞에서 보기로 했잖아! 그리고 너 사무실 선릉까지 가면 엄청 막혀" 하면서,

난 이미 마음속으로 '알았다'라고 해버린거 같다. 항상 고맙고 속 깊은 내 친구니까..

"그래, 그럼! 우리 근처 드라이브나 하다가 병원에 가자" ....


인사동즈음 가니, 시간이 아직 한 참 남았다.

"야. 서촌한옥마을 갈래? 아니면? 팔각정?" 팔각정으로 내달렸다.

비오는 숲속 도로... 내 차의 지붕위로 떨어지는 투두둑 빗 소리가 작은 볼륨의 드럼소리처럼 들린다.

팔각정에서의 시간을 뒤로 하고, 장례식장에 3시에 도착했다.

..... (장례식장 앞에서 담배 한 대 피고... 후우~~).....

"아. 나 돈 찾아야되! 승민아. 넌 얼마하냐?"

"나? 삼십!"

그렇게 우리는 들어갔다. 밖에서 스윽 보니 조문객이라고 해봐야 아직은 낮이라 몇 분 안되는 듯 하였다. 조문을 하고, 아직은 많이 남은 아무 자리에 앉았다.

"와줘서 고맙다"는 상법이 어머님의 말씀.. 상법이 어머님의 목소리는 30년전 그대로 인데 약간 굽은 등 그리고 평생을 같이 해 오신 남편의 빈자리 때문이었는지 많이 수척해 보이셨고, 잠시 잡아본 어머님의 손에는 세월이 흔적 만큼이나 주름이 가득차 있었다......

나는 속이 더부룩 하여, 음식을 먹는둥 마는둥 하였다.

"승민아 술 마실래?난 운전해야해서 못마신다."

"그래! 그럼 나 이따 가다가 내려줘!"

~~~~ 그렇게 몇 시간 동안, 나는 물 승민이는 소주를 어느새 두병씩이나 먹고 있었다.

상주인 상법이는 바빠서 우리자리에 엉덩이를 붙이지 못하는 모양새다.

승민이와 옛날 어릴적 얘기, 지 대학 친구얘기, 서로간의 자식얘기, 요새 사는 꼴 이래저래

이야기 하다보니 그 자식은 혀가 조금씩 꼬이기 시작했고, 그렇지 않아도 잘 들리지 않는

말투에 약간의 취기가 더해져 나는 더 집중하여 들어야 했다. 마치 대입시험때 영어듣기 평가 하듯이 말이다...어느새 5시가 훌쩍 넘었다.
"승민아 이제 가자! 내일 운구도 하려면, 지금 가는게 나아!" 우리는 바쁜 상법이와 식구들께 간단하게

인사만 하고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신촌의 초저녁은 덥고 습했다. 거기에다 꽉 막힌 차량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까지 말이다..

"승민아! 집에 델따 줄께. 나 여기서 가면 1시간 40분이고, 니네집 거쳐가면 2시간20분이다."

"정말? 정말? 정말? 너 그럼 우리동네 가서 밥먹고 가라!"

참 이놈아가 툴툴거릴때도 있지만, 정이 그리운 놈이라 ㅎㅎㅎ

"야! 나 계속 메슥 거려서 밥 생각 없어!"

"아니야 우리동네 맛집 많아. 먹고가라"

"싫어!" "먹고가!" "싫어!" "먹고가!" "아 그럼 일단 니네 동네 가서 소화좀 되면.."

(이 놈 참 신기하다. 신촌에서 덕소까지 근 2시간 걸리던데 그 중 1시간50분을 떠든다. 늘 그랬듯이 ㅎㅎ)

덕소 인근이다. 방광이 빵빵하다. 여기저기 핸들을 돌리다 김치찌개집에 들어가서

우리는 또 이야기를 했다. 아니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내가 들었다. English listening 시간이 다가온거다. 이놈은 그새 또 한 병을 까 재꼈다. ㅎㅎ 오는중에 잠시 펴진 혀가 어느순간 오징어 비틀어 지듯이

꼬이기 시작했다.

"야 그만가자!" 그놈 집 앞 편의점에서 나는 껌을 그 놈은 맥주 두병을 사서, 알콜 중독자 마냥

지 가방에 넣고서는 우리는 내일 오전 9시에 보자 라고 하며 헤어졌다.

~~~~~

집으로 돌아오는 길... 혼자서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많은 걱정과 한숨이 오락가락 했다. 혼자 계신 엄마, 우리엄마도 건강이 좋지는 않으신데...에효....
그리고 나의 생활에 대한 나의 다짐 ㅠㅠ

~~~ 밤 늦게 돌아온 집은 아직 아무도 없었다. 와이프는 들어오는 중이란다.

빨래통에 입은 옷을 던지고, 이것저것 하다보니... 어느새 새벽1시30분.
전자담배 연기가 새벽 습기속으로 금새 빨려 들어간다.


#7/13(수)

새벽5시에 잠시깼다. 화장실을 다녀오고서 잠시 누웠다. 6시20분이다.

대충 씻고 시동을 걸었다. 이 놈이 어제 좀 뛰었는지 시동소리가 그리 신통치는 않다.

이 놈도 밤새 밖에서 비를 맞으면서 쉬어서 피곤한가? ㅎㅎ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 우리집 용인에서 신촌까지 생각보다 막히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 마음이 답답해서 차 안에서 전자담배를 3대나 뿜어댔다.

8시20분 장례식장 도착. 상법이를 마주쳤다. 잠을 잘 못잔 모양새다. 어느새 승민이도 도착하여

빈소로 내려갔다. "오늘 운구가 9시40분이다."

"그려 알았어" 나와 승민이는 1시간 동안 핸드폰을 만지막 거리고 있었다. 승민이는 어제 먹은 소주3병때문인지 속이 않 좋다고 하더만...그러다 시간이 되어 소천하신 아버님을 모시고 운구차로 이동했다.

~~ 신촌에서 용인화장장으로 ~~~

무지하게 막히고, 무지막지한 비가 왔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건 당연하고 땅에는 바닥에서 물을 뿜어내는것 같았다. 80km이상으로 달리다간 차가 획 돌아 갈수도 있겠다라고 생각되서 조심조심...

요 며칠은 와이프가 아니라, 와이퍼가 가장 고생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뽀드득뽀드득 앞뒤 유리에서

연신 빗물을 밀어내지만, 당할 재간이 없을 정도로 쏟아 붇는 빗물이 으마무시하더라.

나와 승민이는 화장장까지 거의 아무말이 없었다.

이놈아가 속이 않 좋기도 했고, 나도 배도 고프고, 무엇보다 누군가을 마지막으로 보내야 한다는

슬픔과 우울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잠시후 보내드려야 할 아버님을 말이다.

~~~ 운구차가 도착하고 우리가 20분후 헐레벌떡 도착했다. 5분후 하관 시작이란다.~

"운구조 앞으로 나와서 차량을 보고 서세요~ 잠시 묵념하겠습니다."

신촌에서 1시간 전에 들었던 아버님의 무게가 이상하리만큼 더 가벼워 진 것 같았다.

~~~ 화장장으로 아버님을 모신 관이 들어간다.
가족들의 슬픔과 눈물이 터져 나왔다. 멀리서 지켜본 나와 승민이도

마지막 가신는 길을 염원하며, 눈시울이 뜨거워 졌다. 어머님의 마지막 울음은 나의 고개를 뒤로 돌리게 만들었다. "하아...."

~~~ 가족 대기실에 있는 상법이와 어머님. 그리고 식구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나왔다.

밥 먹고 가라고 말씀 하시는 어머님께 여러번 괜찮다라고 말씀 드리고 말이다.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동안 우리는 서로 아무말도 없었다. 비는 아직도 세차게 내리고 있다.


"뭐 먹을텨? 승민아!"

"짜장면 먹을까?"
(우리는 아주 어린시절부터 주말에라도 짜장면 한 그릇 사준다면, 내가 살게 없어도 따라가주는..

그런 '짜장동맹? 아니 춘장동맹?'이 아주 굳건히 이루어진 사이였다.)

"그러자!" "아리야! 중국집 찾아줘!"

시골 국도를 서서히 바퀴를 달래가며 이리저리..."승민아! 저기 배춧국 맛집 저기저기.. 저기 가자!"

허겁지겁 먹고나서, 다시 길을 재촉했다.

"야!나 동천역에 내려줘!"

"그래 그럼 우리동네에서 커피나 한 잔 하고 가자. 담배 한 대 빨고!"

별말 없이 우리동네에 와서 커피 한 잔 후루릅 마시고...나는 동천역으로 승민이를 내려줬다.

"잘가라 승민아"

"그래"


돌아오는 길, 빗방울이 다시 거세진다...

하루 종일 집에 혼자 있었을 와이프가 생각 난다. 와이프는 요사이 좀 우울해 진 듯 하다.

그리고 2023년은 오랫동안 기억이 남을 것 같다. 꽤나 오랫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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