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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줴줴글로벌 Dec 01. 2023

[동남아투데이] 중국의 루쉰 그리고 필리핀의 호세 리잘

의학도에서 작가로 사람을 구하고자 한 두 사람





중국의 대문호로 일컬어지는 루쉰(Lu Xun, 1881~1936)은 중국을 비롯하여 전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인물로, 상해에는 그의 이름을 딴 공원이 있을 정도입니다. 루쉰의 일본 유학시절에 대한 이야기, 자세히 말해서 의학도에서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자신의 병든 아버지를 구하지 못하는 낙후된 중국의 의학을 뒤로 하고 현대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루쉰은 일본 유학길에 나섭니다. 수업시간에서 곧잘 일본의 선생들은 ‘환등기'라는 선진 기기로 사진들을 보여주곤 했는데, 어느 수업 날은 러일전쟁 당시에 러시아 스파이 혐의를 받은 중국인을 처형하는 사진을 보게 됩니다. 


사진에는 일본인 병사가 칼을 높게 치켜들고 있고, 처형을 기다리는 중국인은 무릎을 꿇고 있으며, 동족의 처형을 흥미로운 구경거리인 것 마냥 웃으며 빙 둘러싸서 구경하는 중국인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루쉰은 그 모습을 보고는 깊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동족이 살해됨에도 아무런 분노도 느끼지 않는 같은 중국인의 모습을 보고는, ‘몸은 온전하나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사람들'에 문제 의식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몸을 구하는 의사가 되기보다는 사람의 정신을 구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리하여 부지런히 자국민의 의식을 계몽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됩니다. 












중국의 루쉰과 같은 인물이 필리핀에도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호세 리잘(José Rizal, 1861~1896)입니다. 루쉰처럼 의학도의 길을 걸으러 스페인 유학길에 올랐지만 작가로서 사람들의 정신을 구하고자 한 인물로, 필리핀 내에서 통용되는 1페소 동전에 그려진 화폐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호세 리잘은 대지주의 아들이며 일루스트라도스(ilustrados) 출신입니다. 아마도 많은 이들에게 낯선 용어일 일루스트라도스라는 단어는 ‘개화된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들은 필리핀을 지배한 스페인 이민자 혹은 중국인 이민자들과 필리핀 현지인 사이의 혼혈을 일컫는 말로, 부의 획득과 함께 사회의 기득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근대적인 교육까지 받으면서 ‘깨어있는, 개화된 사람'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깨어있는 사람'이라는 멋진 뜻을 지닌 일루스트라도스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가 의식이 깨어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돈, 사치, 권력과 같은 세속적인 가치들을 추구했던 다른 일루스트라도스 출신의 자제들과는 다르게, 호세 리잘은 의학 공부는 물론, 22개국어에 달하는 외국어, 사회학, 경제학, 인류학 등 다방면에 걸쳐서 조예가 깊었고, 필리핀 식민 현실에 대해서도 문제 의식을 가졌습니다. 그 시작은 스페인에 체류하면서 필리핀의 동포들에게 쓴 글, 무지한 필리핀인에게 문명을 전해준 스페인의 식민통치가 정당하다고 안토티오 드 모르가(Antonio de Morga)가 쓴 <필리핀 제도에서의 일(Sucesos de las islas filipinas)>을 반박하는 글, 스페인 식민주의 현실을 폭로한 소설 <나를 만지지 마라(Noli Me Tangere)> 등의 다양한 장르의 글을 발표함으로써 글로 사람들을 감화하여 평화적으로 필리핀 독립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중국의 루쉰과, 필리핀의 호세 리잘과도 같은 인물은 오늘날에도 세계의 다양한 분쟁지대에서 펜으로 싸우는 기자들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어느 시대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이지만 그 어느 시대보다 사람들의 마음이 공허하고 병들어있는 시대에, 글쓴이도 사람들의 마음을 바른 방향으로 감화시키는 글들을 계속해서 발행해 나가고 싶습니다. 



조지혜(서강대 동남아시아학협동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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