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도 : 제발 또라이가 없는 회사에 다닐 수 있게 해 주세요..
수습 팀장 기간 3개월을 끝내며, 수습 기간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3개월 내내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며, 스스로 잘 적응하리라 믿었던 자신감은 훅 떨어진 상태로 이직 4개월째를 맞이했다.
수습 기간이 끝나면 바로 연봉 계약서를 쓸거라 기대했지만, 인사과 팀장은 정신이 없는지 계약서 사인을 하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불안해야 할 그 상태가 불안으로 다가오지 않고, 오히려 심리적 안정을 준다. 내 마음속의 갈등을 우선 덮어버리기에는 좋은 상태이다.
셰익스피어의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To be or not to be)'의 선택의 기로에서 오히려 선택의 순간을 지연시킴으로써, 현 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현재를 유지하여 오히려 생각할 시간을 벌어준다는 뜻이다.
3개월 동안 많은 것을 당연히 배웠고, 어느 정도는 적응한 나 자신을 발견하고, 반대로 여전히 적응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들이 있다. 모든 이직자들의 공통적인 애로사항이겠지만, 마흔이 넘어 이직한 워킹맘의 상태라... 여러 가지 면에서 고민스러운 마음이 있다.
<참을 수 없는 존재들의 무거움>
여러 회사를 다녀봤기에 또라이 상사를 많이 만났다고 자부했다.
최근에 다닌 회사에서는 가스라이팅을 하는 상사가 있어, 그 사람을 증오했지만(?) 그래서 잘 떠났다는 후회 없는 선택을 했다. 이직을 하는 모든 이들처럼 한 가지 이유에서 이직을 결정하지는 않지만, 이직을 하는 사유 중에 또라이같은 혹은 견딜 수 없는 회사의 가벼운 존재들이 주는 무거운 타격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존재들은 한없이 내 인생의 무의미한 존재들이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회사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실상, 그들이 능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 자리를 턱 하니 차지하고 있다. 이 덕분에 그들의 말과 평가는 듣는 이로 하여금 타격감을 느끼게 한다.
회의실에 불러 몇 시간씩 얘기하며, 정해진 답을 도출해 나가는 과정이라든가... 객관적 평가를 들먹이며 다소 주관적인 느낌을 주는 평가라든가... 그 과정에서 들었던 수많은 고민과 자아비판은 내 몫이었겠지만...
이직한 회사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또라이들은 존재하고 있었다. 어찌 그 존재들의 생력력은 그리도 긴지, 많은 정상인들이 떠나는 동안에 꾸준히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단, 이번에는 반전이 있었다. 상사가 아니라, 같이 일하는 팀원이 또라이라는 사실... 세상에 맙소사!!!
수많은(?) 또라이 상사들과 일해봤지만, 내 팀원들에 또라이가 존재하다니... 꽤 충격이 컸고, 여전히 충격을 받으며 견디고 있지만 매번 놀랍다.
가장 처음 그의 또라이를 발견했던 날은 출근 첫날이었다. 사실 그날은 팀원 모두와 회사에 대해 충격을 받은 날이기는 했다. 세상에 점심시간에 팀장을 혼자 내버려 두는 회사라니...? 회사를 이십 년 가까이 다니지만, 이런 회사는 처음이었다. 팀원뿐만 아니라, 회사 간부들도 새로 들어온 팀장의 점심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첫날은 보통 챙겨주는 거 아니니...?라고 묻고 싶었지만, 머... 외국계 회사(?)니, 개인플레이가 심한가 보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외국계 회사만 전전하던 나의 쓸쓸한 자기 위로였지만...
보통이 아닌 회사라는 이상 감지를 한 나지만, 첫날부터 편견을 갖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번 이직이야 말로, 포워딩을 넘어 업체로 가는 교두보가 될 회사이기 때문이다. 이 회사를 계속 다니든 다니지 않든 말이다. 내게는 신분 세탁(?)을 할 커리어적 전환이 필요했다. 해당 포지션에서 많이 배워야지만,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아가야 한다.... 와 나는 견뎌야 한다는 자기 암시로 첫날을 마무리했다.
...
To be continued...
<손가락과 눈이 있어도 인수인계서를 이해할 수 없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