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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대인 Jul 23. 2022

레퍼런스와 표절의 차이

얼마 전 오랜시간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아온 국내 대표 뮤지션 유희열의 표절 이슈가 여전히 뜨겁다. 여기에서 나까지 유희열이 표절이다 아니다를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이전 글에서 레퍼런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보니 레퍼런스와 표절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한 문의가 있었기도 했고, 이 기회에 내가 생각하는 레퍼런스와 표절의 차이를 정리해보고 싶었다.





#작곡에서 레퍼런스란 무엇인가?

이번 논란에서 갑자기 화두가 되고 있는 레퍼런스에 대해서 이것이 과연 무엇인가 싶은 경우가 많을 것이다. 나는 프로작곡가분으로부터 작곡을 배우며 레퍼런스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프로작곡가는 오로지 자신의 영감만으로 작곡을 시작하지 않고, 아이돌 그룹과 이번 앨범의 컨셉에 맞는 레퍼런스 곡을 먼저 찾은 다음 이를 기반으로 작곡을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먼저 참고하고자 하는 음악을 선정하여 표절이 아닌 수준에서 원곡의 장점을 가져오되, 우리나라 문화와 장르적 특성, 가수의 컨셉, 최신 트렌드 등에 맞춰 variation을 하는 작업이다. 일반적으로 원곡의 트랙(반주 부분)을 그대로 따온 후, 거기에서 그대로 가져올 부분과 버릴 부분을 결정한다. 노래 멜로디 라인을 가져올 경우 표절에 걸리기 쉽기 때문에 보통 코드 진행과 비트, 거기에 리프 멜로디를 차용하는 경우가 많다.


설명만 들었을 때, 이게 바로 표절아니야? 싶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식으로 작곡을 한다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할 것이다.(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variation한 부분이 많다면 일반인들이 들었을 때는 전혀 다른 음악처럼 들릴 것이고 실제 그런 음악들도 많다. 그리고 어느 부분에 variation을 하느냐에 따라 똑같은 음악을 레퍼런스로 활용했다고 하더라도 전혀 다른 음악이 나온다. 원곡과는 전혀 다르면서도 좋은 노래가 나오기도 하고, 원곡 발끝도 못 따라가는 엉망진창인 노래가 나오기도 한다. 똑같이 프로 작곡가들이 쓴 곡임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레퍼런스를 통한 작곡이라고 누구나 쉽게 히트곡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여기에는 결국 음악성과 센스 등 다양한 재능이 똑같이 필요하다.


예시 몇 가지를 들어본다면 레퍼런스 작곡 방식이 좀 더 쉽게 이해될 것이다.


예시) 원곡 : Eve - Let Me Blow Ya Mind

https://www.youtube.com/watch?v=Wt88GMJmVk0

노래가 시작하며 독특한 소리의 악기가 리프 멜로디를 연주하고 노래의 처음과 끝을 이끌고 간다. 이 노래가 발표된 시기는 2001년 1월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iKdr44yEBQU

다음은 2003년 8월에 발표된 이효리의 10minutes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첫 시작은 브라스 사운드가 나오지만 이내 원곡에서 나왔던 리프 멜로디 악기 사운드가 합쳐진다. 물론 원곡과 시기가 그리 차이나지 않아 원곡의 핵심인 리프 멜로디에서 variation을 많이 주고 코드 진행과 비트를 중심으로 차용했다. 이로 인해 원곡의 반주를 틀어놓고 이효리의 노래를 불러본다면 거의 완벽하게 맞아 떨어질 것이다. 힙합 장르에 속하는 원곡을 기반으로 한국의 비욘세를 컨셉으로 하는 이효리에 맞춰 기존 코드 진행과 비트는 활용하되 R&B적인 요소를 많이 가미했다고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3dezFzsNss

다음은 2013년에 발표된 EXO의 으르렁이다. 원곡과 10년 이상 시간 차이가 있다보니 원곡의 핵심이었던 리프 멜로디와 동일한 사운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고 가고 있다. 대신 아이돌 음악 장르와 트렌드에 맞춰 트랙 부분의 variation이 많이 되어 있다. 10년도 더 지난 곡을 레퍼런스로 활용한 이유는 리프 멜로디 사운드와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엑소 그룹이 추구하는 10대 고등학생들의 장난끼 있으면서도 자신감 있는 느낌을 잘 살리고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론된다.   


이를 통해 같은 노래가 레퍼런스라고 해도 전혀 다른 음악이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레퍼런스도 음악 실력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작업이고, 원곡을 기반으로 시작되었다는 점 이외에 나머지 요소에서는 작곡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렇다보니 히트곡을 레퍼런스로 기껏 곡을 만든다해도 그 곡은 히트곡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레퍼런스를 활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유독 레퍼런스를 활용한 작곡을 하는 경우가 많고, 이것이 이렇게 논의가 될 정도로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앞에서 얘기했듯, 우리나라 프로작곡가는 영감에서 작곡을 시작하지 않고, 레퍼런스를 먼저 선정하고 작곡 작업을 시작한다. 어느 날 문득 떠오른 영감으로 곡을 열심히 썼다한들, 그 노래의 장르, 컨셉, 멜로디 음역대 등에 매칭이 되는 가수를 찾지 못하면 결국 그 곡은 팔 수 없게 되어 생계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노래에 맞는 가수가 나올 때까지 막연히 기다리다가 음악 트렌드마저 변한다면 해당 노래는 세상에 빛을 볼 확률이 더욱 낮아질테니. 발라드와 같은 노래라면 반드시 한 명의 가수하고만 매칭이 되는 것도 아니고, 당장 발표하지 않고 몇년이 지난다 해도 그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지 않지만 아이돌 음악은 사정이 다른 것이다. 또는 기획사 A&R로부터 곡 의뢰가 들어올 때부터 어떤 노래를 레퍼런스로 해서 만들어 달라는 경우도 흔하다. 아이돌 수명이 있어 활동할 수 있는 시기가 정해져 있고, 또한 컨셉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전 앨범에서 선보인 컨셉과 연계되며 동시에 시대적 트랜드에 맞춰 신선함까지 갖춰 새로운 곡을 바로바로 발표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음악 산업의 대부분은 아이돌 음악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이돌 음악의 원조였던 일본조차도, 아무로 나미에, SPEED 등 일본 아이돌 음악이 전성기였던 시절조차 지금의 우리나라처럼 음악 시장에서 아이돌 음악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지 않았다. 하물며 이제는 우리나라 아이돌 음악은 아시아를 넘어 전세계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아이돌 음악은 트렌드가 무척 빠르며, 다층적인 콘텐츠를 지니고 있다.


일반인이 생각할 때, 아이돌 음악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죄다 비슷하게 들린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장르와 사운드, 비트 등 그 변화가 가장 빠른 것이 아이돌 음악이다. 음원 순위 변화만해도 빌보드 차트나 일본 오리콘 차트와 비교한다면 우리나라 음원 순위 변화가 유독 빠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작곡가는 기존에 만들어 놨던 곡으로 대응하기 무척 쉽지 않고,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에 맞춰 지속적으로 새롭게 곡을 써야 한다.  그리고 매번 변화하는 장르, 사운드, 비트의 트렌드를 학습하며 새로운 곡을 쓴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이로 인해 과거 수많은 아이돌 히트곡을 썼던 작곡가라 해도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히트곡을 만든 사례는 찾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아이돌 음악은 음악이라는 콘텐츠 하나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아이돌 그룹의 컨셉을 기반으로 비쥬얼, 퍼포먼스, IP 2차 콘텐츠 등이 결합되어 있으며, 이 모든 요소가 컨셉과 포지셔닝에 Align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작곡가의 영감이 아닌 전략과 기획을 바탕으로 정확한 컨셉 구현을 위한 작곡 작업이 진행되어야 하다보니 레퍼런스 선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만약 내가 만약 A&R이나 작곡가라고 가정하고, 다음 트와이스의 앨범으로 어떤 노래를 만들어야 할까를 떠올려본다면 좀 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트와이스가 기존에 어떤 컨셉과 장르의 음악을 해왔는지, 어떤 부분 때문에 사랑을 받았고, 최근에는 어떠한 이슈가 있는지. 멤버 구성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고 메인 보컬이 가장 예쁜 소리가 나오는 음역대는 어디인지. 그리고 최근 대중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장르나 사운드는 무엇인지 등을 고려해 상품이나 콘텐츠를 기획하듯 접근해야 한다. 아이돌 음악은 영감만을 통해 만들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다음은 좀 더 쉬운 이해를 위해 레퍼런스를 활용한 기존 노래들이 어떤 이유로 해당 노래를 레퍼런스로 활용한 것인지 추론해보자.


사례1) 원곡 : Serebro - Mi Mi Mi  

https://www.youtube.com/watch?v=Iv4x0TC-1Qg


https://www.youtube.com/watch?v=JQGRg8XBnB4


원곡의 어떤 부분을 레퍼런스로 활용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바로 이해될 것이다. 모모랜드를 기획하며 초반에 컨셉을 기획했을 것이다. 섹시나 걸크러쉬, 청순함은 아니었을테고. 이 때 당시, 아이돌 음악 시장에서 비어 있는 컨셉 영역으로 상큼하고 발랄하고 장난끼 있는 그룹 컨셉, 즉 오렌지카라멜이나 크래용팝과 유사한 포지셔닝을 노린 것 같다. 그리고 A&R이나 작곡가는 얼마 전에 히트했던 노래 mi mi mi가 이러한 컨셉과 매칭이 될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사례2) 원곡 : Fitz and the Tantrums - HandClap

https://www.youtube.com/watch?v=Y2V6yjjPbX0


https://www.youtube.com/watch?v=Q7sHwg2Z21U


지금은 다른 이슈로 더 유명해졌으나. 이 때 당시 승리는 나혼자산다에도 출연하며 사업가로 잘 나가고 클럽에서 여러 유명인사들과 즐기며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승리의 솔로곡 역시 이러한 기존 승리의 연상 이미지와 연계될 수 있어야 했다. 무조건 신나야 하고 자신감 넘치며 클럽과 어울리는 노래. 그러면서 승리 솔로 곡이기 때문에 뛰어난 가창력이나 랩 실력이 요구되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조건에 원곡은 레퍼런스로 최적이었을 것이다.



사례3) 원곡 : Ariana Grande ft. Iggy Azalea - Problem

https://www.youtube.com/watch?v=iS1g8G_njx8 


https://www.youtube.com/watch?v=hfXZ6ydgZyo


Exid 데뷔곡인 만큼 Intro부터 듣는 사람의 귀를 사로잡을  있으며 우리나라 사람들도 좋아할  있는 검증된 히트곡의 요소를 가져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해당 걸그룹이 지니고 있는 강점  하나인 멤버 솔지의 뛰어난 가창력을 선보일  있는 노래. 원곡 역시 아리아나 그란데의 가창력을 활용   있도록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원곡을 가져와 우리나라의 정서에 맞도록  감성만 충전하면  것으로 판단되지 않았을까.





#레퍼런스 자체가 문제인 것인가?


음악뿐만 아니라 사진, 미술, 영화, 소설 등 예술과 관련되어 전문적으로 창의적인 활동을 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온전히 자신의 영감만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할 것이다. 이번 유희열 논란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류이치 사카모토 역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모든 창작물은 기존 예술에 영향을 받는다. 자신의 독창성을 5~10% 정도만 가미한다면 훌륭하고 감사한 일이다."


따라서 레퍼런스  자체를 놓고 비난을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설명했듯 우리나라가 아이돌 산업이 중심이 되다보니 레퍼런스라는 것이 프로세스의 중심에서 운영되고 있는 것일 , 미국의 유명 뮤지션들 역시도 과거의 음악이나 해외의 다른 음악에서 모티브를 가져오거나 영향을 받는 일이 많다. 단지 일반적으로 variation 비율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는 것뿐. (그래서 나는 국내 음악을 들을  레퍼런스 곡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으나 팝송의 경우는 정말 가뭄콩나듯 찾게 되며, 찾게 되는 경우도 유명한 가수가 아닌 2 정도 되는 가수의 곡에서 주로 발견된다.)


그래서 결론은 레퍼런스 자체를 비난 하는 것이 아닌, 레퍼런스를 핑계로 거의 도용하듯 활용하는 경우를 비난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이제 우리나라 대중도 유튜브 등을 통해 해외 음악을 더 다양하고 빠르게 접하며 그 수준이 높아지고 있으나 아직 업계에서는 대중의 눈높이를 무시하고 있어 최근 이슈와 같은 일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밝혀진다고 해도 이에 따른 패널티가 너무 낮기도 하다. 위에서 봤던 사례 중 하나인 '으르렁'의 경우처럼, 레퍼런스를 활용했다 해도 원곡의 장점을 가져오되 전혀 다른 장르의 새로운 노래, 그리고 좋은 노래를 만들 수 있다. 누구도 이를 놓고 표절이라고 '으르렁'이라는 곡을 폄하할 수 없을 것이다. 원곡의 장점인 요소만 일부 차용하고 나머지 영역에는 본인의 영감과 음악적 역량을 발휘하여 전혀 새로우며 뛰어난 곡을 만든다면 그것은 인정 받아야 할 일이니. 이번 이슈로 레퍼런스 방식 자체를 비난하고 우리나라 음악 산업 자체를 폄하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업계의 전문가들 역시도 엄격해진 대중의 눈높이를 의식하며 원곡을 그대로 사용했다 싶을 정도의 레퍼런스가 아닌, 본인들의 자존심을 걸고 책임감 있는 음악 활동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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