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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롱 May 14. 2020

독립이라는 것에 대하여

혼자 살기 시작한 지 1년, 그간의 독립생활을 돌아본다

2019년 5월 24일, 나는 처음으로 '독립'이라는 것을 했다.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부모님과 쭉 떨어져 살았었지만 이전에는 친언니와 함께 살았으며, 부모님과 따로 산다고 해도 경제적으로는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고, 부모님이 정해준 집에서 그냥 정해준 대로 살았기 때문에 물질적 독립은 맞다고 쳐도 정신적인 독립은 아니었다. 그러다 언니와 살던 집과 먼 곳으로 취직을 했고, 회사 분들이 좋은 기회를 주셔서 회사에서 두어 정거장 떨어진 곳에서 독립을 시작했다. 이번 주에 갑자기 통장에서 보증료가 빠져나가 그제야 벌써 1년째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 그렇다면 나는 혼자 사는 1년 동안, 무엇을 했고 무엇을 깨달았을까?


1. '가구'라는 것을 알게 되다.

독립 전 24년 동안 나의 취향에 대해서 탐구할 시간이 없었다. 2년에 한 번씩 옮기는 자취방에서 취향의 가구를 찾기란 힘들었고. (더더욱 친언니와 함께 사는 좁은 원룸에서는) 부모님의 생각으로는 결혼하기 전 까지는 그냥 국민 자취 템이라는 가구들로 싸게 싸게 살다가 결혼할 때 비싼 가구를 사는 것이 합리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을 하기 전까지 내가 살아야 하는 공간에 대해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독립을 시작하면서 계약부터 이사까지 오롯이 나 혼자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가구를 고르는 재미를 알게 됐다. 이왕 합판보다 원목, 원목이 비싸다면 라왕 합판으로, 라이트 우드보다는 티크 우드 색의 가구를 해야지. 책상은 무조건 넓은 걸 쓸 거야. 이사를 준비하는 동안 다양한 가구를 살펴보고 나의 가구 취향을 확립할 수 있었다. 지금도 커다란 화이트 테이블에 원목 수납함이 널브러진 곳에서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2. 생각보다 많은 걸 신경 써야 한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신경을 쓸 일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친언니와 둘이 살 때도 나는 그저 몸만 그곳에 뉘이는 것이었지, 월세며 관리비며 기타 등등 모든 걸 언니가 관리했었다. 참 그때 속도 편했지. 지금은 매 달 월세가 나가는 날 전 통장잔고를 지키기 급급하고 조금이라도 가스비와 전기세, 대출이자가 밀릴까 봐 설정해놓은 알람만 매 달 다섯 개 이상 울린다. 자취를 하면 자유만 있을 줄 알았는데, 경제적으로 나를 구속하는 것이 많아졌다.


3. 집이라는 공간에 애정을 가지게 되다.

나는 내 주변 대부분의 사람이 알 정도로 지나치게 '밖'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매일 같이 친구들과 새로운 공간에 가기 바빴고, 한 번 나왔다 하면 최대한 늦게 집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밖 돌이었다. 어쩌면 다른 사람과 함께 셰어 해야 하는 집에 오래 있는 게 싫었을 수도 있다.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없으니까. 하지만 자취를 시작하면서 '집'이라는 공간의 매력을 알게 됐다. 내 취향으로 채운 가구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내리 마시는 오롯이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시간. 집에서 아무도 의식하지 않고 지낼 수 있음에 감사하며 집에 점점 사랑을 쏟게 됐다.


독립 1년 차 이곳에서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친구들과 파티도 하고 혼자 조용히 영화도 보고, 1년 전에 비해 샐 들인 가구나 전자제품도 정말 많다. 혼자 살면서 느낀 것은, 생각보다 '집'이라는 공간은 나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 내가 애정을 쏟는 만큼 그 결과가 오롯이 보인다는 것. (남들은 보지 않지만) 남은 계약기간은 1년, 1년 동안 이 동네에 많이 정이 들어 최대한 이 곳에 오래 살고 싶다. 내가 오롯이 꾸민 이 첫 번째 공간에서.


+ 다음 글은 집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내가 산 물건 베스트 & 워스트를 뽑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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