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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롱 May 28. 2020

원피스의 기쁨과 슬픔

만화 원피스 아닙니다.

쌀쌀했던 날씨가 풀릴 때 쯤이면 항상 치뤄야하는 연례의식같은 행위가 있다. 바로 그 계절의 옷을 정리하는 일이다. 이번에도 겨울의 옷들을 보내고 여름의 옷들을 맞이하면서 다시 한 번 깨달은 바가 있는데, 바로 내 취향이 지나치도록 확고하다는 것이다. 이번에 여름 옷을 다 꺼내고 종류별로 수를 세어보니 바지가 놀랍게도 한 벌, 블라우스가 두 벌, 티셔츠가 세 벌, 치마가 세 벌, 그리고 놀라지마라. 무려 원피스가 16벌이나 나왔다. 그게 뭐 많은 숫자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내 옷장에 있는 다른 옷들의 비율에 비하면 정말 어마무시하게 많은 숫자다. 16벌의 원피스 중에 꽃무늬 원피스가 13벌, 그 중에서도 롱 원피스가 10벌이었다.


매주 사람들을 만나던 커뮤니티에서도 사람들이 “선영님은 꽃무늬 원피스를 좋아하시나봐요.” 라고 말할정도면 말 다한거 아닐까? 오늘은 내가 언제부터 원피스를 좋아하게 됐는지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사실 나는 어린시절에 치마라면 치를 떨었던 사람이다. 언제나 바지 교복을 입고 싶었고, 대학교에 들어와서도 새내기 시절에는 치마를 멀리하고, 원피스는 너무 꾸미는 느낌이라 사고 싶지도 않았고, 꽃무늬는 데이트를 할 때만 입던 사람.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의 결혼식에 갈 일이 생겼고, 항상 편한 옷만 추구하던 나에게 결혼식에 입을 옷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때 급하게 옷집에 가서 사 온 옷이 바로 꽃무늬 원피스였다. 파란색 쉬폰 소재의 장미꽃이 그려져 있던 원피스. 나는 원피스를 입은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상당히 낯설었지만 청바지나 트레이닝복을 입고 결혼식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어색한 발걸음으로 결혼식에 갔다. 그리고 그 날 깨달았지. 아 원피스가 정말 편한 옷이었구나. 딱 달라붙어 많이 먹으면 힘들어지는 그런 느낌도 없고, 코디를 할 필요도 딱히 없고. 많은 사람들이 신경 쓴 옷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옷이 원피스였구나! 그 날 이후로 나는 다양한 원피스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원피스의 조건은

무조건 기장이 무릎 밑으로 내려올 것

너무 파인 원피스는 사지 말 것

내가 좋아하는 꽃무늬

너무 몸에 달라붙는 소재가 아닐 것


이렇게 원피스만 사들이다보니 계절할 것 없이 내 옷장엔 원피스들만 가득해졌다. 물론 지금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있지. 어떻게 보며 내 호크룩스 룩이 되었다고 할까? 항상 새롭게 집으로 오는 내 원피스들을 보면 매우 기쁘지만 어느 날 친구가 “너는 꽃무늬 원피스 말고 다른 옷은 없어?” 라고 말했을 때는 약간의 슬픔을 느꼈다. 어떤 사람의 옷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확고한 취향이라고 여겨지는데, 내가 입는 꽃무늬 원피스는 그저 유행에 치중하는, 쇼핑몰에서 편하게 살 수 있는 옷이라고 여겨지는걸까? 하는 그런 슬픔. 내게 꽃무늬 원피스가 주는 느낌은 편안함인데, 혹 다른 사람은 내가 꾸미기 위해 꽃무늬 원피스를 입는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이런 저런 걱정에 이번 여름에는 꽃무늬 원피스가 아닌 다른 옷을 구매해볼까도 했지만 여전히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꽃무늬 원피스일 뿐. 이 원피스가 주는 편안함과 눈을 끄는 화려한 패턴. 이걸 어떻게 포기할 수 있지? 패셔니스타들은 다양한 옷을 잘 소화한다고 하지만 나는 패셔니스타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닌 걸. 이런 저런 고민을 하던 중 어제 강연을 들었고, 거기서 나는 많은 영감을 받았다.


“내가 브랜드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모두 마이웨이가 있더라고요. 대중들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의 확고한 신념으로 밀어붙이면 그게 브랜드가 되는 것 같아요.”


아 그래 이거구나.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말해도 그냥 확고하게 지켜나가면 되는구나! 정말 뜬금없지만 나는 이 멘트에서 나의 확고한 패션 취향을 생각하게 됐고, 주변 친구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꿋꿋하게 이 꽃무늬 원피스를 고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티브잡스가 매일 폴라티와 뉴발란스 운동화를 신었던것처럼, 언젠가 사람들이 나를 생각하면 꽃무늬 원피스 바로 그 애! 라고 생각해주는 날이 있지 않을까? 꽃무늬 원피스가 언젠가 나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각인될 수 있을 때까지. 내일은 어떤 꽃무늬 원피스를 입을지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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