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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e Sep 06. 2023

런던 회사원 일상, 갑작스런 30% 해고

올 것이 왔다. 경기가 안 좋다 안 좋다 했었고, 마침 대주주가 회사의 남은 지분을 모두 현금을 주고 인수를 했다. 그 후에는 마치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했을 때와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때도 트위터에 일했던 같은 팀 동료들은 아마 구조 조정이 있을 거라고 걱정했는데 곧 내가 있었던 팀의 80%가량이 사라졌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다들 ‘새로운 오너의 밑에서 더 혁신적이고 더 효율적이며 더 빠르게 일을 할 수 있고 많은 희망과 변화가 있을 거다’라는 이메일을 받았지만 누구도 믿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구조 조정이 있을 거라며 불안해했고, 워낙 분위기가 좋은 회사였기에 우리가 갖고 있던 좋은 문화와 분위기가 망쳐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던 딱 한 달 전, 화요일 아침이었다. 런던 시간 아침 8시에 갑자기 비즈니스 업데이트라는 이름으로 미팅 인바이트를 받았다. 홍콩 및 싱가포르 사무실에게는 오후 시간, 런던 및 유럽 사무실에게는 오전 시간에 아무 예고도 없이 잡힌 미팅이었다. 심지어 미팅 디스크립션에는 ‘사무실에 있더라도 미팅룸에서 말고 개인적으로 혼자서 참석해 달라’는 수상쩍은 말이 적혀있었다. 쿵쾅거리는 마음으로 시작한 비디오콜에는 처음 보는 남자 두 명이 있었다. 본인들이 누구라고 소개조차 하지 않은 그들은 "무겁고 힘든 마음으로" 회사의 구조조정을 위해 지금부터 HR의 이메일을 받는 사람은 해고 대상자라고 통보를 했다. 


우리는 그들이 누군지도 모른 채, 당황스럽고 두려운 마음으로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슬랙 메시지를 보내며 서로의 일에 대한 생존여부를 체크해야 했다. 당시 나는 세명의 친한 동료들과 메시지를 주고받던 중이었는데 그중 두 명이 동시에 HR에게 이메일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들도 마음이 내려앉았겠지만 전해 듣는 나도 마음이 철렁 내려앉고 손끝이 차가워지는 느낌이었다. 이윽고 계속해서 들려오는 ‘A가 메시지를 받았대.. 나도 들었어 B도 명단에 있다고 했어’ 등의 소식에 너무 긴장이 되어서 손이 약간 떨릴 지경이었다. 우리 팀에서도 두 명, 친하게 지냈던 동료들, 몇 팀 전체가 잘려나가고 그날 결국 전체 회사의 30%가 구조 조정의 대상이 되었다.




구조 조정이 있기 2주 전 우리는 로마니아에 일주일 출장을 갔었다. 다들 너무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앞으로도 이런 워크숍이 매년 있었으면 너무 좋겠다, 각자 다른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이렇게 만나니까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 등등 웃으면서 다음에 볼 날을 기약하면서 헤어졌는데 2주 뒤에 이런 일들이 있으니 더욱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해고 대상자가 된 우리 팀 A는 1월에도 구조 조정을 당했었다고 했다. 회사에 입사한 지 겨우 3개월, 프로베이션을 통과한 지 겨우 이주일 가량이었는데 또 구조 조정을 당했다. 입사 즈음에 우리 회사 말고 다른 곳에서도 오퍼를 받았었는데 우리 팀 매니저 둘 인상이 너무 좋아서 이 회사를 택했다고 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 말을 전하는 매니저들 표정이 좋지 않았다.


또 다른 대상자 B는 나와 로마니아에서 꽤나 절친이 된 동료였다. 둘 다 매주 월요일 돌아오던 미팅의 발표가 너무 싫다고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친해졌었고, 실제로 만나서도 케미가 꽤나 좋았다. 그랬던 그녀에게 메시지를 했을 때 그녀 역시 12월에 정리 해고를 당했었다고 말을 해줬다. 8개월 안에 이런 일이 두 번이나 있다니 하고 마음이 안 좋았는데 곧 그녀는 아파트를 팔아야 할 것 같다고 말해서 더욱 마음이 안 좋았다. 곧 마지막 삼진아웃으로 사실 자기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그녀. 그날은 내가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음에 뭔가 마음이 무너졌던 기억이 있다.


물론 기업 입장에서 보면 인수 후에 구조 조정은 당연한 절차라는 걸 알고 있다. 기업 경영 입장에서 직원 하나하나의 입장보다 숫자로 따지는 게 이득이고 당연한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이러한 대규모 해고가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런던, 런던뿐만 아니라 영국 전체,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도 경기가 안 좋으니 많이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남아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렇게 잔인하고 예고 없는 구조 조정과 영향을 받은 직원들에 대한 그 어떤 배려도 없는 모습에 정말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 기업 사냥꾼들의 냉담한 태도와 큰 자본 앞에서 우리가 그동안 일궈왔던 문화나 신뢰나 그 모든 게 쓸모없어지는 무력감도 많이 느꼈다.


그렇게 대량 해고가 이뤄지고 이틀 내에 새로운 경연진은 해고한 몇 명의 직원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그들이 없으면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모르고 잘랐던 모양이었고 재취업 제안을 받은 직원들은 꺼림칙한 마음으로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그 일이 있은 후 벌써 몇 명의 직원들이 일을 그만뒀고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구직 중에 있다. 


남아있는 사람들도 어떤 의욕도, 일에 대한 흥미도 많이 떨어진 상태다. 물론 나를 포함. 이번 일의 교훈은 결국은 사람이 싫어서 사람이 떠나고 사람 때문에 사람이 남는다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을 무시하지 못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내 첫 직장은 내가 들어갔을 때 인수의 단계에 있었고 2년 차쯤에 인수가 되어서 3년 차쯤에는 내 매니저가 잘리고 나도 정리 해고를 당했다. 그때는 세상이 끝난 것 같았고 내가 부족해서 정리해고가 된 것 같아서 부끄러웠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지? 하는 걱정이 가득했다. 당시에는 주변에 정리해고나 권고사직을 당한 친구들이 없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그 후 몇 년 뒤, 샌프란시스코에서 트위터에 다녔을 때는 판데믹이 터지면서 비자도 없고 퇴사를 하고 곧 회사가 일론 머스크에게 인수를 당했다. 그리고 플랫폼 유지에 꼭 필요했지만 돈을 벌어오는 팀은 아니었던 내가 속했던 팀은 전 동료의 80%가 해고를 당했다. 모두 사연 없는 사람 하나 없었다. 


그리고 또 몇 년 뒤, 런던에서 마음에 드는 회사를 찾아서 적어도 5년은 다녀야지 하고 정착을 했는데 또 이런 일이 생기다니. 친한 동료들은 아무래도 네가 이런 걸 몰고 오는 것 같다며 농담을 하고 어이가 없었던 나도 너희들 이직하면 나 그 회사 따라갈 거야 라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해보기도 했다.


아직 그래도 트위터에 일하는 동료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해주니 그녀는 씁쓸하게 웃으며 아무래도 이게 뉴노멀인가 봐라고 말해주었다. 그러게. 회사는 내 미래를 책임져 주지 않아. 나는걸 잘 알고 있었는데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더욱이 나도 내 미래를 위해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 나만의 일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영국으로 이민을 온 내 매니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상부의 칭찬이 딱히 필요하지는 않아. 내게는 반드시 계속 나아가야만 하는 큰 이유가 있거든. 그 이유는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자기들 엄마를 닮은 금발머리 아이들이야. 제이미 너도 반드시 너를 나아가게 만드는 이유를 한 번 찾아보는 게 좋을 거야.” 나를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은 뭘까 이제부터 열심히 찾아보려고 한다. 인생은 길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아직 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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